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금융 위기

최근의 금융 위기는 세계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중앙은행들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다.

지난 2007~2008년 금융 위기 때 중앙은행들은 금융 시스템에 막대한 돈을 푸는 것으로 대응했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채권을 대거 사들이는 방식으로 통화를 창출해 은행에 공급하는 양적완화로 중앙은행들은 2009년의 큰 불황이 1930년대의 대불황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당시 세계 금융 위기의 궁극적 원인은 낮은 이윤율이었다. 낮은 이윤율이 생산적 투자를 둔화시키고 금융 투기를 부추긴 것이다. 구제 조처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본들의 대규모 파괴를 피하는 것으로, 건전한 상태로 이윤율이 회복되는 것을 가로막았다.

그래서 세계경제 시스템은 계속 저금리와 양적완화에 의존했다. 2013년과 2018년에 금융을 “정상 상태”로 돌려 놓으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시도는 실패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에 2007~2008년보다 더 큰 규모로 금융 시장이 경색되자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를 확대했다. 중앙은행들은 정부가 소득과 일자리를 보전하는 데 쓸 돈을 찍어 내기도 했다. 극성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지난 15년 내내 이 추가적인 통화가 물가 상승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러나 2021~2022년 실제로 물가가 급등했을 때 그것의 주된 원인은 생산 시스템에 있었다.

팬데믹은 오늘날 세계경제를 엮어 주는 공급 사슬을 교란시켰다. 가구들이 록다운에 대응해 소비를 늘린 것도 물가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동아시아 나라들이 석탄에서 벗어나면서 천연가스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은 신자유주의 정설에 따라, 즉 물가 상승이 마치 지금껏 경제에 풀린 돈 때문인 것으로 취급해 물가 상승에 대응했다. 그에 따라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금리를 급격하게 올렸다.

이것은 가차없는 계급 정치[지배계급 측의 계급 정치 — 역자]를 실천한 것이었다. 실업률을 높이고 임금을 억제해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약화시키고 이윤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금융 시스템의 여러 부문들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는 지난가을 당시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와 그의 재무장관 쿼지 콰텡이 감세 정책에 판돈을 걸자 영국 국채의 가격이 급격히 떨어진 것에서 처음 드러났다. 당시 영국 국채에 큰 돈을 투자한 많은 연기금이 붕괴 위기에 빠졌다.

10일 실리콘밸리뱅크(SVB)의 파산도 그런 사례다. SVB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IT 기업들을 상대로 한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은행이었다. 신생 스타트업 기업들은 수익을 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들은 초기에 벤처 자본에게서 받은 대출에 의존한다.

스타트업 기업들은 그렇게 대출받은 자금을 SVB에 예치했다. SVB는 이를 미국 정부가 발행한 장기 채권에 대거 투자했다. 그 채권은 금리가 아주 낮을 때는 그보다 약간 높은 이자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자 채권 가격이 떨어졌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예금자들은 예치한 돈을 회수했다.

영화 〈멋진 인생〉[2020년 12월 말에 미국에서 재개봉돼 흥행한 1946년작 영화 — 역자]에서 묘사된 1930년대 불황기의 뱅크런이 디지털 시대에 재현된 셈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SVB가 무너지자 예금주들은 민주당 국회의원들, 부유한 정치 자금 기부자들과 함께 자신들을 구제해 달라고 미국 정부에 로비하는 데 광분했고, 미국 정부는 13일 구제에 나섰다. 그러나 사태는 계속 악화됐다.

투기꾼들이 시스템의 약한 곳을 탐색해서 득을 보려고 하면서 사태가 악화된 면도 있었다. 그런 표적의 하나가 지난 몇 년 동안 웃지 못할 스캔들로 곤욕을 치러 온 스위스의 크레디스위스 은행이었다. 크레디스위스는 스위스 중앙은행에게서 54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은 뒤, 경쟁사인 UBS에 인수됐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속도위반 결혼”으로 묘사한 이 인수 조처에도 금융 시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크레디스위스가 발행한 17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됐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은행 채권의 보유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미국에서 SVB의 구제는 가장 큰 은행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투자자들과 예금주들은 중소 은행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소 은행들은 자신들도 보호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시스템의 관리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만일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낮추기 시작하면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패닉을 자아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 금리를 높이면 금융 시스템에 더 큰 타격을 줄지도 모른다.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