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크레디스위스…:
계속되는 금융 위기, 연준(미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은 더 큰 위기 부를 것
〈노동자 연대〉 구독
3월 10일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한 후에도 은행 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 시그니처 은행이 파산했고,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1달 전보다 주가가 90퍼센트 하락했다.
설립된 지 167년이나 된 대형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는 파산 위기를 겪다가 불과 며칠 만에 스위스의 경쟁 은행인 UBS에 합병됐다. 크레디스위스가 파산할 경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라더스 파산보다 큰 파장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 때문에 스위스 중앙은행은 UBS에 1000억 스위스프랑(141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며 합병을 추진했다.
합병 과정에서 크레디스위스 주주들은 자산을 일부 회수할 수 있게 됐지만, 크레디스위스가 발행한 고위험 채권(코코본드) 23조 원어치가 휴지조각이 됐다. 그래서 이 채권을 많이 보유한 금융기관들의 주식이 하락하며 후폭풍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400조 원에 달하는 코코본드 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하면 은행 위기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처럼 세계 금융 시장의 불안정이 심각한데도 3월 22일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은 기준금리를 또다시 0.25퍼센트포인트 인상했다. 이로써 미국의 기준금리는 5퍼센트에 이른다. 연준 의장 파월은 올해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리려 하고, 연내에 금리 인하는 없다고 밝혔다. 유럽 중앙은행도 얼마 전 금리를 0.5퍼센트포인트 인상했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겠다는 잘못된 정책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같은 통화량 증가 정책 때문에 물가 인상이 벌어졌다고 보면서, 금리를 인상해 통화 공급을 줄이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물가 인상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 차질과 비용 증가의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떠넘기며 이윤을 추구한 기업주들 때문에 벌어졌다. 올해는 경기 침체의 여파 속에 원자재 가격은 다소 떨어졌지만, 그간의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한 손실을 소비자들에게 떠넘기려는 정부와 기업들의 시도는 계속되며 물가 인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공공요금 인상이 올해 물가 인상의 주요 요인인 것처럼 말이다.
특히, 지배자들은 물가 상승이 임금 인상 투쟁을 촉발하고 이게 다시 물가를 끌어올릴까 봐 걱정한다. 그래서 금리 인상으로 경제를 어느 정도 침체시켜서라도 임금 상승을 억제하려 한다.
그러나 물가 인상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실질임금은 오히려 삭감돼 왔다. 미국에서도 올해 2월 실질임금은 지난해 대비 2퍼센트가량 깎였다.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의 원인이라고 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물가를 잡기보다는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증폭시키며 은행 위기를 키우고 있다.
예외적인 사례?
이번에 금리를 인상하면서 파월은 SVB 붕괴는 시스템 전반의 문제가 아니라 “예외적인 사례”라고 했다. 그러나 SVB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금융기관은 한두 곳이 아니다.
SVB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금리 인상으로 인해 미국 국채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SVB는 ‘안전 자산’이라고 여겨지는 미국 국채에 자산의 상당 부분을 투자했지만, 국채 가격이 하락하며 위기에 빠졌다.
미국 국채 가격 하락으로 인한 은행들의 자산 손실은 6200억 달러(약 821조 원)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7퍼센트에 이른다. 미국 은행 중 10퍼센트가 SVB보다 더 큰 자산 손실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위기는 단지 중소형 은행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JP모건체이스의 조사를 보면, 미국 주요 은행 중 하나인 뱅크오브아메리카도 국채 가격 하락으로 인한 자산 손실이 2022년에 16퍼센트에 달했다. 이는 SVB와 같은 수치이다(마이클 로버츠, ‘Bank busts and regulation’).
미국의 금리 인상은 국채 가격의 추가 하락으로 이어져 이와 같은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게다가 금리 인상은 부동산 가격 하락, 신흥국으로 투자됐던 자금 회수 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기업들의 이윤율이 낮은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저금리로 경기를 부양해 왔다. 그러는 동안 커진 금융 거품이 지난해부터 이어진 금리 인상으로 꺼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곳곳이 지뢰밭인 것이다.
지금 지배자들은 금리를 올리면서도,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 은행들에 막대한 지원을 하며 구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고액 자산가들의 예금도 보장해 주고 은행들에 대한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스위스 정부도 크레디스위스를 인수한 UBS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고금리로 서민층을 빚더미에 앉게 만들고 있다. 은행 구제자금도 파산 위기에서 노동자들을 구제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다. UBS는 엄청난 자금을 지원받고도 크레디스위스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할 계획이다.
지배자들은 이전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고장난 금융 시스템을 지키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그 고통은 노동자 등 서민층에 떠넘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