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뱅크 파산 후폭풍:
한국 금융권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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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이 전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SVB의 예금을 전액 보장하겠다며 진화를 시도했지만, 제2의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없애지는 못하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바 있다.
금융권은 SVB 사태가 국내에 직접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제부총리 추경호도 3월 14일에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국내 금융기관이 SVB와 관련된 투자도 거의 없고 상태도 양호하다며 “국내 금융시장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SVB 파산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어 그 후폭풍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SVB 파산 직후 유럽의 주요 은행인 크레디스위스가 파산 위험에 처한 것은 세계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을 보여 줬다.
미국 정부가 급히 SVB 예금 전액 보장 대책을 내놓은 것이 오히려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지방은행들의 추가 파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SVB는 벤처기업들에서 예금을 끌어모으고 이 돈을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가 금리 인상으로 큰 손해를 봤다. 고위험 벤처기업과 미국 국채 투자에 기반을 둔 SVB의 사례는 국내 금융기업들의 상황과 같지는 않다.
하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자산 가격 하락과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타격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많다.
제2금융권
미국 SVB 파산의 충격은 한국에서 제2금융권(보험사·증권사·저축은행 등)을 중심으로 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를 다시 키우고 있다. 지난해 ‘레고 랜드’ 사태로 드러난 제2금융권의 부실 위험성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국내 보험사·증권사·저축은행 등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건설기업에 대거 대출했다가 금리 인상에 따른 집값 하락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3월 9일 발표한 ‘3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PF 대출잔액은 은행권이 30조 8000억 원, 비은행권이 85조 8000억 원이다. 증권사(27조 4000억 원)와 보험사(44조 6000억 원)처럼 은행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제2금융권의 PF 대출이 상당한 것이다. 특히 저축은행의 PF 대출은 위기가 계속된 지난해에도 증가해 저축은행 상위 10곳의 PF 대출이 4조 5357억 원에 달했다.
게다가 제2금융권 PF 대출의 위험도는 은행보다 더 크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고위험 PF 대출 비중은 은행이 7.9퍼센트인데 반해, 보험사 17.4퍼센트, 증권사 24.2퍼센트, 저축은행 29.4퍼센트로 추산됐다.
경기 침체 심화는 제2금융권에서 회수되는 자금도 늘리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금리가 급등하며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은행들이 금리를 올리자, 저축성보험 해지가 늘어나며 생명보험사들의 자금 상황을 악화시켰다.
생보협회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11월까지 보험 해약환급금은 38조 5299억 원으로, 연간 기준으론 40조 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보험 계약액은 23조 2284억 원에 그쳐, 보험사들에서 십 수조 원이 빠져나갔다.
카드사나 저축은행 등 다른 제2금융권도 경기 침체의 타격을 받고 있다. 카드사와 저축은행의 연체율이 계속 오르고, 금리도 치솟아 이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에 고금리에 따른 경기 침체는 금융 시스템 전반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1월 경상수지·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중국의 경기 침체도 타격을 주고 있어 한국 기업들이 수익성을 높일 다른 방법도 마땅찮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노동·연금 개악을 추진해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여 주려고 혈안이 돼 있다. 경기 침체와 기업 부채 위기가 심화될수록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 확대될 공산이 크다.
고물가·고금리로 벌어진 생계비 위기에 맞서 실질임금을 방어하기 위한 저항이 일어나야 한다.
금융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자고?
한편,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이 국내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경향신문〉은 3월 13일 자 사설에서 “현재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1.25퍼센트포인트”라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자금 유출이 발생하고 환율이 폭등”해 “한국 경제는 회복 불능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말이다.
물론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신흥국과 한국 같은 나라들에서 금융·외환 위기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단지 환율을 방어하려고 금리를 올린 것만은 아니다. 한국은행도 다른 중앙은행들처럼 ‘임금-물가 악순환’을 우려하며, 경기를 침체시켜서라도 실업률을 높여 노동자들이 실질임금을 지키려 투쟁하는 것을 막으려고 해 왔다.
이 때문에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은 고금리·고물가로 이미 심각한 생계비 위기를 겪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금리를 올리자고 요구하는 것은 서민들의 삶을 더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는 일이다.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일인 것도 아니다.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이런 금리 인하로 외화 유출이 벌어지면 정부가 나서 자본을 통제하는 조처를 취할 수도 있다.
물론 기업과 부유층은 이런 자본 통제에 반발하며 여러 방안들(수출대금의 해외 보유, 대량 해고와 기업 폐쇄 등)을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런 자본 통제에 나서도록 만들고 기업과 부유층의 반발을 제압하려면 십중팔구 더 큰 투쟁의 필요성이 제기될 것이다. 이 투쟁을 근본적 사회 변화를 위한 투쟁의 일부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