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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문제에서 독일은 일본과 다르다?: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일 뿐

과거 청산 문제에서 일본은 종종 독일과 대조된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커녕 교과서에서 역사 왜곡이나 일삼는 일본 지배자들의 행태에 견주면, 독일의 행보는 훨씬 나아 보인다. 독일의 교과서는 나치의 전쟁 범죄를 소상히 서술하고, 독일 지도자들은 사죄의 목소리를 낸다.

여기에는 일본과 달리, 과거 나치 정권을 운영했던 세력이 더는 현재 독일 지배계급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이 작용한다. 독일 지배자들은 과거 나치 범죄를 사과하는 데서 부담이 훨씬 적은 것이다. 오히려 나치 과거 사과로 독일 지배계급은 자신들을 평화와 민주주의 이미지로 분칠할 수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전쟁 전과 후 지배계급의 연속성이 크다. 현재 일본 지배계급의 다수는 전쟁과 식민 지배 책임자들의 정치적·생물학적 후계자들이다.

특히, ‘천황’이 (옛 일본 제국 때의 권력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지배계급의 핵심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사 문제는 현재 일본 지배계급의 정치적 정당성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그러나 독일 지배자들의 행보는 일본에 견줘 약간 나은 것에 불과하다. 독일의 과거 청산은 알려진 바처럼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둘의 차이는 질적이지 않고 양의 차이다.

전후 나치 청산은 불충분했다. 유럽에서도 미-소 냉전이라는 새로운 제국주의 경쟁 질서 형성이 전후 처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유럽에서도 대소련 견제를 위해 독일이 빠르게 재건돼야 했다. 그래서 국가 복구 과정에서 나치에 부역한 행정 관료들이 대거 원상 회복됐다. 가령 헤센주의 경우 공공기관 근무자 34퍼센트가 종전 직후 나치 경력을 이유로 해고됐는데, 1948년 전원 복직됐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은 도쿄 재판과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많다. 주요 나치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은 전혀 철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유대인과 소련 측 전쟁 포로에 대한 대량 학살을 명령한 독일의 육군 원수 에리히 폰 만슈타인은 18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냉전 시작과 함께 4년 만에 석방돼 서독 정부의 군사 고문으로 발탁됐다.

연합국이 서독과 전후 배상 문제를 일괄 타결한 1953년 ‘런던채무협약’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대일 강화조약)의 유럽판이라 할 만했다!

미국은 서독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고 전쟁 배상금을 대폭 감면해 줬다. 수백만 명이 동원된 강제노동 문제는 아예 다뤄지지 않았고, 심지어 이후의 배상 제기를 가로막는 규정이 포함됐다. 덕분에 독일 정부와 기업들은 오늘날까지도 강제노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독일은 1904~1908년 나미비아 부족 학살에 대해 100여 년이 지나도록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다. 당시 독일군에 항의하다 억류된 나미비아 사람들

소련과의 경쟁에 써먹을 수만 있다면 미국에게 나치 전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종전 직후 미국은 나치 전력의 독일 로켓 과학자들 수백 명을 미국으로 영입했다. 나치 친위대(SS) 대위로서 독일의 로켓 개발을 지휘한 폰 브라운은 괜찮은 보수와 대우는 물론, 미국 시민권도 부여받았다.

당시 서독 정부의 배상은 선택적이었다. 가령 1952년 이스라엘에는 배상액을 지급했지만 나치 학살과 강제노동 피해자의 압도 다수가 있는 동유럽 나라들에 대한 배상은 외면했다.

냉전의 논리에 따라 소련 영향권 국가들은 제외한 것이다. 동유럽 피해자 배상 문제는 1970년대까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동방 정책

독일 국가의 사과와 보상이 좀 더 진전된 것은 독일 통일 논의와 맞물리면서였다.

1970년 당시 서독 사민당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를 방문해 유대인 추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한 일은 독일 통일을 염두에 둔 동방 정책의 일환이었다. 거대 독일이 재출현하는 것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독일 통일에 대한 지지를 얻어 내려는 정치적 행보였다.

이렇듯 독일은 유럽의 맹주로 떠오르려면, 주변국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과거 나치의 만행을 거듭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과거 국가의 범죄 인정도 지도자들의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다.

반면, 일본은 1990년대까지 ‘탈아입구(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다)’를 추구하며 아시아 국가들보다 서방과의 관계를 더 중시했다.

독일에서 강제노동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시작된 것은 동유럽 스탈린주의 체제 붕괴 직후인 1990년 들어서였다. 그리고 실제로 보상이 이뤄진 것은 전후 반세기가 지난(다수의 피해자가 이미 사망한 뒤인) 2000년 이후였다.

이때조차도 독일 정부와 기업들은 법적 책임에 따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1인당 평균 보상 액수는 2005년 기준 약 3372유로(약 440만 원)로 상징적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보상받은 사람은 독일 기업들에 대한 소송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각서를 제출하게 해 향후 문제 제기 가능성도 차단해 버렸다.

더욱이 이 모든 논의에서 독일의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 독일은 제1차세계대전 전에 식민지로 삼았던 탄자니아와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완전히 무시해 왔다.

독일은 1904~1908년 나미비아에서 식민 통치에 항의하는 부족 수만 명을 학살했다. 하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다. 2021년에야 비로소 도의적 차원의 사과와 기만적 수준의 지원금을 지급했을 뿐이다.

한국의 우파는 독일도 제대로 식민지 배상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에 매여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윤석열의 한일 합의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사례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과거사 문제가 단지 역사 해석을 둘러싼 다툼에 국한된 게 아니라 오늘날의 제국주의와 연동된 문제임을 보여 준다. 현재 국가의 제국주의적 필요에 따라 과거사를 인정하거나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정할 때조차 그 한계가 명백한 것이다.

과거사 문제 해결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과제와 결코 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친제국주의적 자국 정부에 반대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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