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한일 강제동원 합의:
미국 주도 대중국 전선 구축에 참여하겠다는 의지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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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제동원 전범 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무효화하는 한일 합의가 발표된 다음 날(7일), 윤석열은 이번 합의가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과 미래 발전에 부합하는 방안을 모색해 온 결과”라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은 무엇일까?
윤석열은 한일 양국의 경제적 긴밀성을 언급했다.
한국 자본주의는 실제로 (미국과) 일본 경제와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 왔다. 그런데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놓고 벌어진 한일 갈등 국면에서 일본은 한국 기업들에 수출 규제를 가했다. 이것은 강제동원 합의의 결과로 조만간 해제될 듯하다.
그러나 윤석열이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실은 더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다. 대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동맹, 즉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전선을 강화하는 데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2010년대 초 이래로 미·중 갈등이 고조돼 왔다. 대만해협 문제, 반도체 경쟁 등 지정학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 모두 그랬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갈등을 더 자극했다.
중국과의 갈등에 대응해 미국 바이든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포위하기 위해 일본과 호주를 중심으로 한국, 인도, 동남아 국가들을 결속시키려 해 왔다.(인도와 대다수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의 구상을 적극 지지하기보다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윤석열이 이번 한일 합의를 발표하면서 거듭 언급했던 “보편적 가치 연대”는 미국이 중국 ‘권위주의’에 맞서는 자국 중심의 ‘민주주의’ 동맹을 가리켜 사용해 온 표현이다.(관련 기사: 393호, ‘민주주의와 상관없는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이 중요하다.
일본은 대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전략에서 중추 구실을 하는 동맹국인 동시에, 일본 자체도 중국과 패권 경쟁을 하는 세계 경제 3위의 제국주의 국가이다.
최근 일본은 엄청난 군비 증강, 적 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 선언 등 재무장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일본이 과거의 침략 역사를 집요하게 미화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 속에 있다. 특히, 일본(과 미국)은 일본의 침략적 과거사가 중국이 아시아 주변국을 포섭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
이런 고려 때문에 미국은 과거사 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갈등을 빚을 때 처음에는 중재하는 듯하다가도 결국은 한국이 양보하게끔 압박을 가했다.
이번 강제동원 합의에도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한국 정부의 합의안 수용을 “미국의 외교적 성과”로 규정하면서, 지난 1년간 한미일 외교관들이 40차례 이상 만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한일 관계의 강화 움직임을 중국에 대항하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전례 없는 속도의 전략적 재편성”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언론 〈CNN〉도 이렇게 지적했다. “이번 합의로 미국이 태평양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가 더 쉬워졌다.”
〈블룸버그〉 뉴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한미일이 중국에 맞서 더욱 단합된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합의 발표 직후 바이든이 이례적으로 한밤중에 입장을 내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한일 양국이 협력과 파트너십의 신기원을 열었다”며 극찬한 이유다.
굴욕 외교라기보다는 서방 제국주의 편에 서기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합의를 두고 민주당은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부분의 좌파들도 그런 주장을 한다.
그러나 윤석열은 단지 미·일의 압력에 굴종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은 지난 1년 동안 나토 정상회의, 유엔 총회, 아세안 정상회의 등에서 일본 기시다 총리에게 “현안에 대한 조속한 해결”을 추진하자고 요청했을 만큼 한일 관계 개선에 능동적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지지하고 한미일 동맹 강화에 적극 임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 지배계급에 이익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삶과 이익은 완전히 내동댕이쳐졌다.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 됨으로써 그 자신의 국제적 위상을 올리고자 한다. 특히, 안전 보장은 한국 지배계급이 미국과의 동맹을 바라는 전통적인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미국은 이 점을 간파하고는 중국 견제가 한국의 안보 이익과 합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한국 지배계급은 미중 갈등 사이에서 선택이 쉽지만은 않은 처지에 놓여 왔다. 최대 교역국으로서 중국의 중요성이 증대해 온 현실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지난해 말 한미일 동맹 강화 방향을 담아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도 노골적인 중국 배제 표현은 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미·중 갈등이 더 첨예해지고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조금씩 확전되면서, 한국이 두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여지가 좁아지고 있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불안정성이 커진 상황도 윤석열 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윤석열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제국주의에 능동적으로 협조해 한국 자본주의의 살 길을 찾는 방향으로 더 기울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한미동맹 일변도가 아니라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동시에, ‘국익’(실은 한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한미동맹 자체는 발전·강화돼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이런 균형 잡기 식 입장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현실에서 갈수록 모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주당 정부들은 군사·지정학적으로는 한미일 동맹을 중시했다.
그 결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결정, 사드 배치 강행 등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하에서 벌어졌다.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도 계속 외면당했다.
특히, 반일 정서를 데마고기처럼 활용했던 문재인 정부는 결국 임기 말에는(2021년) 박근혜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두고 “양국 간 공식 합의”이므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서는 문재인이 직접 “옳지 않고 곤혹스럽다”며 반대해 법원의 배상 강제집행을 중단시켰다.
이번 강제동원 합의에서 윤석열·기시다 정부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관련 기사: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대해 말해야 할 점들’)을 내세운 것도 그 선언의 주된 내용이 북한에 맞서 한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선언에 언급된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는 이후 완전히 공문구가 됐다.
역대 민주당 정부들의 이러한 실천은 이번 강제동원 합의가 단지 윤석열 정부의 친일·굴욕 외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선택한, 서방 제국주의 지원의 문제임을 보여 준다.
정부의 ‘굴욕적’ 자세를 강조하는 좌파적 민족주의 관점은 민주당 개혁파 같은 일부 자본주의 정치인들에 대한 환상과 착각을 일으킬 위험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