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대폭 인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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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퍼센트이지만 실생활 물가는 이보다 더 높다. 올해 1월 MB물가(이명박 정부가 52개 생활필수품을 구성해 만듦)는 9.2퍼센트에 달했다. 이제는 웬만한 한 끼 식사비가 1만 원대라, 올해 최저임금 시급 9620원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난방비 폭탄에서 보듯 가스·전기·수도·교통 등 공공요금 인상도 노동자 등 서민층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고물가, 고금리, 공공요금 인상 탓에 실질임금이 줄어든 노동계급의 생활고가 심각하다. 최근 고용노동부의 발표를 보면, 2023년 1월 실질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5.5퍼센트 삭감됐다.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 연속 감소한 것이다.
올해 초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에게 새해 소원을 물었더니, ‘임금 인상’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10명 중 9명은 물가 인상으로 임금이 줄었다고 답했다.
정말이지 월급 빼고 다 올라 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는 ‘텅장(텅 빈 통장)’에 가슴 졸이고 있다. 노동자 등 서민층의 생계를 위해 대폭의 임금 인상이 절실하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올라야 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의 조사(2월 27일~3월 2일 월 평균 300만 원 이하 조합원 1056명 대상)에서, 응답자 10명 중 4명은 “물가 상승 이후 가계 대출이 늘었다”고 답했다. 당장의 생계비 때문에 금리가 올랐는데도 울며 겨자먹기로 대출을 받았을 것이다. 투잡을 뛰는 노동자도 11.7퍼센트나 됐다.
올해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첫 회의(4월 18일)를 앞두고 양대 노총은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 시급으로 1만 2000원(월 209시간 노동기준 250만 8000원)을 요구했다. 올해보다 24.7퍼센트 오른 금액이다.
친사용자 언론들은 벌써부터 양대 노총의 요구안이 (금액과 상승률 모두) 사상 최대 규모라며 호들갑이다. 전경련 기관지 〈한국경제〉는 가뜩이나 안 좋은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을] 올릴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양대 노총의 내년도 최저임금 요구액은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시한 비혼 단신 월 생계비보다 30만 원 많은 정도다. 최저임금을 받는 가구의 상당수가 비혼 단신 가구가 아니므로 결코 충분한 수준이 아니다(최저임금을 받는 가구의 평균 가구원수는 2.48명으로 그에 따라 계산한 가구 생계비는 월 284만 원).
사실, 그간 최저임금 자체가 낮아서 저소득 노동자의 생계 ‘최저선 보장’이라는 취지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었다.
사용자들과 보수 언론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를 더 높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사실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율이 16.4퍼센트로 제일 높았던 2018년 물가 상승률은 1.4퍼센트였다. 2019년에도 최저임금은 10.9퍼센트가 올랐지만 물가 인상률은 0.4퍼센트에 불과했다.
최근의 물가 인상은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 부족과 에너지 가격 상승 탓이 크다. 여기에 기업주들이 이윤 보장을 위해 물건 값을 올린 것도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도 한몫했다.
최근 2년간 물가 인상률(7.7퍼센트)이 최저임금 인상률(6.6퍼센트)을 앞질러 실질임금이 저하됐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시절 최저임금제도가 개악돼, 내년부터 최저임금 산입범위(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임금)에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복리후생비 전액이 포함된다.
이번에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다 해도 그 효과가 크게 상쇄되는 것이다. 양대 노총은 산입범위를 개악 이전으로 되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질임금 저하
한편, 윤석열은 대선 후보 시절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주한 업종별 차등 적용 관련 연구용역 보고서가 최근 최저임금위원회로 넘어갔다. 이제 차등 적용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
사용자 단체들과 우파들은 수년 동안 업종별 차등 적용을 제기해 왔다. 얼마 전 경총은 최저임금 미만율이 농림어업에서 36.6퍼센트, 숙박음식업에서 31.2퍼센트에 달한다며,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주장했다. 3월 20일엔 시대전환 국회의원 조정훈이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철회했다.
그런데 숙박음식업 등에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가 밀집돼 있다. 농림어업에는 수년 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진출했다.
이런 업종들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다.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악용해 최저임금 지급 의무조차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이제 아예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게끔 해달라는 것이다.
저들의 속셈은 일부 업종을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시켜 최저임금 수준을 평균적으로 낮추고, 전반적인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팽배해진 상황에 찬물을 끼얹고자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효과도 낼 것이다.
업종별 차등 적용 도입 시도를 좌절시켜야 한다.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등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와 사용자들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 전가하려고 혈안이 돼있다. 화물 운송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제인 안전운임제도 무력화하고 있다.
임금을 대폭 인상시키려면, 지금부터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으로 생계비 위기에 저항해야 한다.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고 4월 5일 재보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패배한 것에는 윤석열의 노동 개악 시도에 대한 반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우리의 삶을 위해 투쟁에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