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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폐지하라 –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는 법》 서평:
가족을 넘어선 미래를 진지하게 열망하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가족을 폐지하라”니, 초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겠다.

《가족을 폐지하라》 소피 루이스 지음, 서해문집, 2023년, 184쪽, 14800원

하지만 ‘가정의 달’에도 생활고로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아 “엄벌” 요구에 직면한 부모에 대한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다. 가족은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으로 자주 묘사되지만, 누군가에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다.

소피 루이스의 《가족을 폐지하라》(서해문집)는 자본주의와 가족의 상호 의존관계와 자본주의 가족제도의 독성을 폭로하고, “아래로부터 가족 폐지론”에 대한 다양한 사상과 운동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와 가족 둘 다 없는 세계를 향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에세이다.

저자는 사회주의 사상, 페미니즘, 퀴어 이론을 수용해, 가족의 대안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가능함을 피력한다. 자신의 사상을 가리켜 “마르크스주의적 트랜스 페미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본주의와 가족제도

먼저, 저자는 현재 가족제도가 전혀 자연스럽지도, 합리적이지 않음을 폭로한다.

“어린 사람들이 이런 보호자들[부모]에게 전적일 정도로 의존하는 건 가혹한 도박임이 분명한데도, 오히려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본성에 따른” 현상으로, 심지어는 관련 있는 모두에게 아름다운 일로 그려진다.

“심신이 완전 탈탈 털린 부모들의 지옥도가 끊임없이 언급되는데도, 부모라는 조건은 한없이 감상적인 취급만 받는다.”(17쪽)

또, 자본주의하에서 가족제도가 하는 구실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한편,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가족 안의 사람들을 숨막히게 죄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가족이 없으면 부르주아 국가도 없다. 가족의 기능은 복지를 대신 수행하고 채무자의 보증을 서는 것이다. … 국가의 노동력 재생산을 저렴하게 관장하고 빚을 확실하게 갚게 하는 수단이다.”(19쪽)

“오늘날에 가족은 허울을 걷어내고 보면 국가와의 경제적 계약 또는 노동자 교육 프로그램일 뿐이다.”(39쪽)

그럼에도 국가들이 추진하는 “긴축정책은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의 자녀 출산을 뼛골 빠지는 부담으로 만들고 있다. 가사노동은 성별화되고, 인종화되고, (부유한 집에서 일하는 게 아니고서야) 임금도 못 받는다. 이런 전 지구적인 조건에서 숱한 이들이 가족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13쪽)

숨겨진 역사

아메리카 선주민 사회의 '두 영혼의 사람들' 이들은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성으로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출처 University of California Libraries

저자는 간략하지만 숨겨진 역사를 발굴하며, 현재의 가족제도가 인간의 본성이거나 영원불변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식민지 이전의 아메리카 선주민 전통도 그중 하나다.

“그들은 아이들을 공동으로 양육했고, 두 가지 이상의 젠더를 존중했으며, 성적 쾌락에 대해서는 느슨한 사회적 제한만 두었고, 때로는 (수유 같은) 모성수행을 모든 젠더를 포괄하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행위로 개념화했다.”(78쪽)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것이 다소 의아하지만, 19세기 후반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선구적인 연구와 1970년대 엘리너 리콕 등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를 보면, 이런 모습은 계급 이전 사회에서는 일반적이었다.(관련 기사: 본지 344호, [엥겔스 탄생 200주년] 엥겔스가 파헤친 여성 차별의 기원)

식민 통치자들은 사유재산과 일부일처제와 결혼 제도를 강요하며 선주민 사회의 평등주의를 무너뜨리려고 갖은 애를 썼다. 칼라일인디언산업학교(1879~1918)에 인디언 아이들을 수감시키고 “정착민 섹슈얼리티”를 주입시킨 것도 한 사례다.

저자가 소개하는 미국 노예들의 역사도 흥미롭다. 노예 제도는 흑인 가족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지만 흑인 노예들은 대안적인 ‘친족’ 구조를 형성했다. 해방 이후에도 이들은 “국가 관점에서 보자면 여전히 지나치게 많은 해방노예들이 문란한 동거 생활을 하고, 일처일부제의 관행 밖에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결혼을 경악스러울 정도로 느슨하게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다.(84쪽)

재건시대 미국 정부 역시 일부일처제와 법적 결혼을 의무화하고, 이에 벗어나는 흑인들을 기소하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언급하는 현실, 오늘날 국가와 우파가 나서서 난민들의 가족을 찢어발기는 동시에, 여성과 트랜스젠더의 신체적 자율성을 제약하면서 성별 역할을 강요하는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 외에도 저자는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조제프 푸리에, 마르크스와 엥겔스, 러시아의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혁명적 페미니즘, 게이 해방 운동 등 여러 사상가와 운동을 다루며 “가족 폐지”의 이상을 그려 나간다.

전략의 부재

저자는 “폐지”를 뜻하는 독일어 Aufhebung를 언어학적으로 파고들며 그것이 변증법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Aufhebung는 단지 없앤다는 의미뿐 아니라 보전과 연장의 의미도 있다.

그에 따라 “가족 폐지”에는 “가족 중심의 사회라는 거대한 비참함 속에 파묻힌, 이상적인 혈연관계에서 나타나는 해방적인 부분” 즉, “상호 돌봄, 상호 의존, 소속감”을 지키는 것이 포함된다. 저자는 가족을 “동지적 관계”와 같은 완전히 새로운 관계로 대체하자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이상에 공감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자본주의와 가족의 숨 막히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방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가족을 넘어선 대안을 향한 진지한 열망을 보여 주지만, 저자가 이 중요한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은 이 질문에 노동계급의 혁명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자본주의에서 처한 객관적 위치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평등주의적이고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할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근본적 변화 속에서 (현재와 같은) 가족 제도가 사멸할 물질적 토대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저자와는 달리 “가족의 폐지”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가족에 각종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대중의 필요에 기초해 운영되는 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이런 가능성을 얼핏 보여 줬다. 노동계급이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뒤엎었을 때, 비로소 가족에게 떠넘겨져 있던 양육과 돌봄을 대규모로 사회화할 가능성이 생겨났고 성적 자유가 폭넓게 보장됐다. 저자가 우호적으로 다룬 콜론타이 역시 이런 역사의 선두에 있었던 인물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얼마 못 가 좌절을 겪게 된 것은, 저자가 얼핏 암시하는 것처럼 “대단히 형편없는 당의 지원” 때문이 아니라, 혁명의 고립과 반혁명 때문이었다. 노동계급 혁명의 숨이 죄이고 마침내 끊어졌을 때 이제 막 첫발을 뗀, 가족을 넘어선 사회에 대한 진지하고 실현 가능한 실험도 시궁창에 처박혔다.

러시아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1917년 혁명 러시아는 가족에게 떠넘겨진 각종 부담을 사회화하고 성적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는 대안적 사회를 힐끗 보여 줬다.

노동계급 투쟁과 혁명이라는 대안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가족 폐지”의 이상은 아무리 대담하더라도 (대대적으로) 실현되기는 어렵다. 기껏해야 소규모 사람들의 공동체적 실험에 그치고 말 것이다.

가족을 떠나면 더 열악한 복지시설로 들어가야 하는 청소년들, 나이 들거나 장애를 얻어 더는 돈을 벌지 못해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 무정한 세계에서 (비록 매일같이 좌절하더라도) 마음의 안식처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서 가족 외에 주어진 선택지가 얼마나 될까?

이런 사람들에게 “혈연 중심의 사고와 관행과 언어를 헐겁게 하고, 몰아내고, 털어버리려는 우리 모두의 비상한 노력”을 촉구하는 게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전략의 부재 때문에 저자는 공허하면서도 때로 엘리트주의적인 의식 변화 촉구에 그치는 것이다.

자본주의 폐지를 실현할 수 있는 노동계급 혁명의 전망을 가져야만 “가족 폐지”의 이상도 진정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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