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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지음):
한국전쟁에 대한 주류적 설명을 반박한 역작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글항아리, 1984쪽, 110,000원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이 완역돼 나왔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1981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판됐고, 국내에도 그중 1권이 일찌감치 번역됐다. 그러나 2권까지 포함한 책 전체가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는 한국전쟁 종전 70년이 되는 해다. 정확히 73년 전 이맘때 한반도는 냉전의 격전장이 돼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 여파는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전쟁의 성격이 무엇인가?’는 여전히 살아 있는 논쟁이다. 윤석열 같은 우파에게 이 전쟁은 “공산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미·중 갈등이 커지면서 두 나라가 적으로 상대했던 한국전쟁의 의미도 재조명되는 듯하다. 5월 윤석열이 미 의회 연설에서 장진호 전투 당시 중국군에 맞선 미해병의 “기적 같은 성과”를 칭찬하자, 다음 날 중국 외교부가 정면 반박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은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가?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은 바로 한국전쟁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역작이다.

화약통

1945년 8월 한국인들은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브루스 커밍스는 당시 한국에서 수십 년간의 억눌림에서 벗어나 “대중 참여의 거대한 변화”가 진행됐다고 썼다. 대중의 변화 열망이 반영돼 정당, 인민위원회, 노동조합 같은 조직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그러나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됐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대중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을 펼쳤다.

완전한 독립과 해방이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그만큼 컸음을 미국도 알고 있었다. 미군정 사령관 하지의 정치고문 메릴 베닝호프는 당시 남한을 “불꽃을 대면 즉시 폭발할 준비가 돼 있는 화약통”에 비유했다.

하지만 미국은 전후 미국 안보 정책에 한국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적대국(소련)에게 완전히 장악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그래서 미군은 한국에서 소련과 ‘공산주의’의 영향을 막는 “방벽”을 쌓는 데 주력했다.

미군은 경찰 같은 일제 관료 기구를 존속시켰고, 일제에 협력했던 “보수주의자들”을 등용했다. 남한에서 대중운동을 파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지방 인민위원회 등이 강력한 탄압으로 파괴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대중의 열망을 꺾는 과정은 피로 물들었다. 일례로 1946년 10월 대구 봉기를 진압하면서, 적어도 1000명 넘는 사람이 숨지고 3만 명 이상이 체포됐다. 1948년 4·3 항쟁 당시 제주도에서는 미국 자료에서만 1만 5000~2만 명의 도민이 숨졌다고 기록됐다.

그렇게 건국된 국가는 자유와 민주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커밍스는 남한 국가가 “경찰국가”였고, 대중적 지지 기반이 취약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이승만을 비롯한 남한 통치자들은 소련과 북한을 향해 적의를 한껏 드러냈다.

폭격으로 벽만 남은 집 커밍스는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한다 ⓒ출처 국가기록원

냉전

한반도의 갈등은 세계적 차원의 냉전 고착과 맞물려 돌아갔다.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이 나오고 마셜 플랜이 시작됐다. 냉전이 본격화되자 이는 한반도 상황에 악영향을 줬다.

특히 1949년 중국 혁명의 승리와 소련의 핵실험으로 미국이 아시아에서 “단호한 정책”을 펼 필요가 커졌다. 미국 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공산 세력을 봉쇄하고 실행 가능한 모든 지역에서 위축시키는 것”을 목표로 정한 까닭이었다. 이 결정은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다.

결국 1950년 6월 한반도는 열전에 휩싸였다. 브루스 커밍스가 보기에, 이 전쟁은 1950년에 갑자기 터진 게 아니라 일제 시대에서 기원한 한반도의 내부 갈등과 냉전이 맞물린 결과였다. 또한 미국의 세계 전략이 한반도에 일으킨 비극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전쟁이 내전의 성격을 띤 국제전이라고 본다.

전쟁으로 한반도는 초토화되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커밍스는 여기서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일례로 미국은 대대적인 폭격으로 민간인 수십만 명을 살상했다. 당시 미 전략공군사령관 커티스 르메이는 이렇게 말했다. “3년 넘게 우리는 북한과 남한의 모든 마을을 불태웠다.”

한국전쟁은 냉전 속 열전이었고, 또한 냉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커밍스는 이 전쟁이 미국에게 “자국의 패권을 구축하고 재편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한국전쟁은 미국이 소련과의 경쟁에 필요한 “거액의 국방 지출을 가능하게 만든 위기”였다. 일본도 한국전쟁을 기회로 산업을 재건하고 부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한국전쟁에 대한 전통적(우파적) 설명에 대해 지금도 유용한 반박을 제공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미국·소련·중국이라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힘을 겨룬 전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1945년 소련군이 북한에서 한국인들에게 “큰 행동의 자유”를 줬다고 보거나, 소련의 전쟁 관여를 실제보다 과소평가하기도 한다.(이번 한국어판 서문에서 브루스 커밍스는 자신의 전반적인 의견은 변함없으나, 애초에 생각한 것보다 소련이 전쟁에 더 강력하게 개입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국전쟁의 진정한 교훈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서가에 둘 만한 고전이다. 국내에서 여전히 우파 정부가 민간인 학살 등 전쟁의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