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프리고진 쿠데타의 실패에도 푸틴의 통제력이 약화되다
〈노동자 연대〉 구독
2년 반 전, 세계 제일의 핵무장 국가인 미국에서 극우가 국회의사당을 점거했다. 이번에는 세계 제2의 핵무장 국가에서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모스크바를 향해 “정의를 위한 진격”을 했다가 중단한 과정에 관해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들도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 국가 핵심부에 있는 억압 기구들이 심각하게 분열해 있다는 것이다.
프리고진은 잡범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핫도그 장사를 하다 푸틴의 요리사가 된 뒤 그 지위를 이용해 러시아의 주요 인물로 부상한 자다. 프리고진의 전력은 러시아 정치체제가 얼마나 사적인 연줄 위주로 돌아가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프리고진의 용병 집단인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할 때 처음 활약한 바그너 그룹은 푸틴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할 때에도 투입됐다. 바그너 그룹은 극악무도한 행위로 악명을 떨쳤다. 더 최근에 바그너 그룹은 아프리카에서 러시아 정부가 벌이는 신식민주의적 확장 노력의 중심에 있었다. 바그너 그룹은 취약한 현지 정부들을 지원하고 그곳의 자원을 통제했다.
바그너 그룹의 활동은 특히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에서 톡톡히 성과를 냈다.
이런 과정이 가장 진척된 곳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러시아인들에게 말 그대로 노다지다. 국가도 없고 국경도 없고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 곳이다.” 한 번은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관리들이 러시아행 항공기를 검사했더니, 쿠키가 담겨 있다고 적힌 상자에 금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로 돌아와야 했다. 키예프
바그너 그룹은 전투에서 능력을 보여 줬다. 치열한 전투 끝에 우크라이나의 도시 바흐무트를 결국 장악한 것이다. 프리고진은 한 인터뷰에서 바그너 그룹이 그 전투에서 1만 명의 전사자를 냈고, 우크라이나군 전사자는 그 세 배였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은 군 수뇌부인 세르게이 쇼이구와 발레리 게라시모프를 비난했다. 그들이 무능하고 바그너 그룹을 물자 부족에 허덕이게 했다는 것이다.
미국 정보 기관에서 나오는 얘기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 용병 같은 “자원자”들을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하도록 결정한 것이 이번 반란의 계기가 됐다. 그 결정을 보고 프리고진은 푸틴이 쇼이구와 게라시모프를 편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프리고진의 단명한 반란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 반란이 거둔 성공이다. 반란이 시작된 로스토프나도누 지역에서 그 반란은 꽤 지지를 받았던 듯하다.
반란
이를 저지하려는 러시아군의 시도가 일부 있기는 했다. 프랑스 일간지
그러나 공군력 등을 동원해 바그너 용병들을 제거하려는 만만찮은 시도는 없었던 듯하다. 그랬다가는 군대 내 반란이 확산될지도 모른다고 푸틴이 우려했을 수 있다.
프리고진이 어떤 주요 정치 세력에게서도 쿠데타 지지를 받지 못해 진격을 멈추고 벨라루스 망명에 동의했다는 추측이 있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언론인 벤 주다는
이것은 과장이다.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의 샘 그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지배층이 자신들의 미래에 열광하고 푸틴의 성공에 계속 투자하게 하기에 충분한 축재의 기회를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푸틴은 분명 크게 약화됐다. 푸틴은 바그너 그룹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바그너 그룹은 이제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더는 믿을 만한 도구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푸틴은 자기 군대의 충성도 믿을 수 없게 됐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위험한 도박의 판돈을 키우는 것으로 대응할 공산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