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프리고진 사망의 배후보다 배경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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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사고처럼 보이는 일은 대개 정말로 우연한 사고일 때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믿기 힘들 때도 있다. 러시아 바그너 용병단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프리고진의 암살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일설에 따르면, 프리고진이 탄 비행기가 격추된 것은 지난 6월 잠깐 동안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로 행군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군용기를 격추하여 승무원들이 사망한 것에 원한을 품고 누군가 복수를 감행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푸틴이 거느린 정보 기관들은 얼마든지 그 음모를 알아내고 푸틴은 원한다면 그것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전직 러시아 고위 관료”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들이 분명 프리고진을 제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푸틴에게는 프리고진이 죽기를 바랄 만한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 반란의 대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푸틴이 그저 공포로 러시아를 다스린다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과장이다. 푸틴은 2000년대에 러시아의 안정을 회복시켰다. 러시아 올리가르히[소수 대부호들 — 역자]가 축재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그들 사이에서 보상과 처벌이 적절한 곳에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그런 안정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푸틴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군대와 보안기관을 장악하고 언제든 필요하다면 그것을 무자비하게 이용할 태세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그러한 외양에 균열을 냈고, 푸틴은 그 대가를 치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 푸틴은 자신이 통제력을 확실하게 되찾았음을 보여 줄 필요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리고진 사망 배후에 푸틴이 있다고 볼 만한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프리고진이 죽은 시점에 있다. 프리고진의 죽음은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분열된 억압 기구들에 대한 통제력을 서서히 되찾는 과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벌어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 병력의 상당 부분을 넘겨받았다. 원래 바그너 그룹이 활약하던 중동과 아프리카의 보호국 정부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특사들이 파견됐다. 바그너 그룹에 호의적이었던 고위 장성 세르게이 수로비킨도 프리고진 사망 직전 해임됐다.
프리고진과 함께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흉악한 파시스트인 드미트리 웃킨이 있다. 러시아 정보총국(GRU) 중령 출신인 웃킨은 2014년 바그너 그룹을 설립했다. 그 이름은 유대인을 혐오한 독일인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프리고진이 그 용병단의 대표였다면 웃킨은 작전 사령관이었다. 처음에 그 용병단은 푸틴과 러시아 정보총국이 “책임을 부인할 수 있는” 해외 작전을 벌이는 데 활용됐다.
독일 외교협의회의 안드라스 라츠는 이렇게 평했다. “비행기를 추락시킨 게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럼으로써 바그너 그룹의 재정적 지도자와 군사적 지도자를 한 방에 제거해 버렸다. 프리고진과 웃킨을 한꺼번에 무력화시킬 일석이조의 기회였던 것이다.”
바그너 그룹의 머리를 베어 버린 것은 좌와 우 모두를 겨냥한 더 광범한 단속의 일환일 수도 있다. 일명 “스트렐코프”라고 하는 이고르 기르킨도 최근 체포됐다. 기르킨은 러시아연방보안국(FSB) 출신으로 원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친러 분리주의 지역에서 활약했던 자다.
오랜 세월 동안 스탈린주의에 반대하고 전쟁에도 반대해 온 저명한 사회주의자인 보리스 카갈리츠키도 “테러를 정당화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수감됐다.
프리고진이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국수주의적 극우와 중·하급 장교들 사이에서 그의 제거에 대한 만만찮은 반발이 일어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더 큰 상황을 보면 푸틴이 아마도 극우의 불만을 억누를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하는 요인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현재까지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는 러시아군이 참호를 파고 구축해 놓은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부의 전략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비판이 갈수록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고 있다.
둘째, 최근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의 전반적 의미가 무엇이건 간에, 그 회의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 줬다.
중동에서 미국에 가장 가까운 세 국가 —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이집트 — 가 중동 지역 미국의 최대 숙적인 이란과 나란히 브릭스에 가입한 것은 실로 괄목할 만한 변화다.
따라서 푸틴의 입지는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켰던] 지난 6월에 보였던 것보다 더 강력해졌다. 이로써 푸틴은 바그너 용병단의 반란이 촉발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제국주의가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응집력이 약화됐다는 것은 여전히 참말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닫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