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자본주의 비판은 좋아도 그 대안은 부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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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으로 임승수 작가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저자는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소탈하고 재치 있게 써내려 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로 골치가 아프고, ‘빨갱이가 뭐냐’는 초3 딸아이의 질문에 적잖이 당황하면서 사회주의자임을 ‘커밍아웃’하고,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썼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사건과 얽히고, 강연 중에 “그럼 우리 아버지가 직원을 착취하고 있는 건가요?” 하는 질문을 받고 뭐라 현명하게 답할지 고민한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도 없고 때로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저자는 사회주의자로 사는 자신의 삶이 가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저자는 자기 삶이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문턱을 낮추자는 의미 같다.
저자가 와인을 즐길 뿐 아니라 그에 관한 책을 쓰는 것도 그런 일일 테다. 최근 저자는 와인 주제로 초대 받은 강연에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책을 판매용으로 들고 간 일을 페이스북에 소개하기도 했다.
오해와 편견
저자가 이 책에서 단지 사는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가 왜 문제인지 드러내고, 사회주의에 대한 흔한 오해와 편견을 반박하며, 사회주의가 필요할 뿐 아니라 가능함을 주장한다. 이 책은 띠지 문안처럼 임승수 작가가 말하는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라고도 할 수 있다.
에세이집이라 대중적으로 쓰였음에도, 《자본론》 해설서 저작으로 인기 있는 작가답게 자본주의 비판이 신랄하고 깊이도 꽤 있다.
저자는 극심한 빈부격차, 만연한 실업, 무분별한 환경 파괴 등이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은폐된 “착취”와 “생산 활동 일체가 이윤 극대화라는 지상 목표에 종속”됐기 때문이다. “이윤은 … 타인의 노동이 축적된 결과물”인데 “그것이 사적 소유권이라는 현대판 신분제를 통해 자본가에게 ‘합법적으로’ 귀속”됐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자가 내세우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에 진정한 자유도, 민주주의도 없다는 비판도 신랄하다. “초등학교 반장도 투표로 뽑는 세상이지만 사장을 노동자의 투표로 뽑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가”, “자본주의란 결국 대다수 노동자를 소수 자본가의 지배하에 두는 경제적 독재 시스템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이 보유한 화폐 크기만큼 자유를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생산 수단을 사회 구성원 공동의 소유로 전환”하는 사회주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분단 구조로 인해 ‘사회주의’라는 단어의 의미가 악마화”돼 있다.
저자는 이 나라에서 시행 중인 국민건강보험, 국공립 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등도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사회주의가 악마가 아님을 말한다. 또, 20년 전 한 탈북 여성과 한 대화를 소개하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도 장점과 단점 둘 다 있는 사회라고 평한다.
대통령 윤석열이 종전 선언조차도 “반국가 세력”의 행위로 규정할 만큼 공식정치가 우경화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자임을 공공연히 내세우며 사회주의가 옳고 필요하다는 저자의 외침은 더 의미가 있다.
세계를 조금만 둘러봐도 오늘날 사회주의가 정말이지 절실하다.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죽음을 낳는 체제다.
요 일주일간의 소식만 봐도 그렇다. 아프리카 난민선이 실종돼 또다시 수백 명이 죽었다. 미국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악마의 무기’라 불리는 집속탄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일본 지배자들은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고 하고, 이 와중에도 윤석열은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야만을 비판하며 사회주의를 대안 삼아 보자고 주장하는 책이 많이 팔린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저자가 자기 경험에 비춰서 사회주의가 대중에게 더 많이 공감받고 있다고 말한 점도 인상적이다.
물론 저자가 얘기하고, 대중이 공감하는 ‘사회주의’의 내용은 대체로 개혁주의적 사회주의와 복지 정책들이겠지만 말이다.
자본주의 국가
임승수 저자는 ‘자본주의=사적 소유, 사회주의=국가 소유’로 본다. 이 관점에 따라 북한을 사회주의 사회로 보고,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나라들의 좌파 정부를 대안으로 여긴다.
사실 북한 사회를 시장자본주의보다 근본에서 더 열등한 사회로 보는 관점은 시장 자본주의 외엔 대안이 없다는 반동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북한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저자의 접근은 상대적으로 낫다.
하지만 북한을 사회주의로 볼 순 없다. 북한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혁명이 아니라 소련의 군대에 의해 건설됐고, 노동계급은 국가를 통제하지 못하고 관료에게 착취받고 억압받는다.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개혁도 지지할 만한 것이었지만, 차베스의 정당과 후계자들이 통치하는 오늘날 베네수엘라가 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고 그 대가를 보통 사람들이 치르고 있는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은 ‘이윤을 위한 축적과 경쟁’이고,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외적 존재가 아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산업과 경제도 자본주의적이다. 국가를 통한 개혁 전략이 한계에 직면하는 이유다. 유럽에서도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들이 집권 후에 실망감만 자아낸 까닭이기도 하다.
반면, 사회주의를 곧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으로 보는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전통도 국제적으로 존재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를 변화시려는 삶에 대해 고민을 던져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급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