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아랍계 프랑스 좌파 활동가 초청 강연:
반란의 프랑스 ─ 파업, 소요, 이후 저항의 과제

이 기사는 같은 제목으로 열린 7월 26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와 시청자 토론 정리를 문서화한 것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팀이 첨가한 것이다.

자드 부하룬 ⓒ노동자연대TV

프랑스의 전반적 상황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주 전 프랑스 경찰이 아랍계 청년을 살해한 것을 계기로 수많은 프랑스 청년이 거대한 반란을 일으키고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먼저 이 반란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겠습니다만, 지나치게 세세하게 들어가면 한국 동지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것이니 큰 그림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요 자체에 관해 너무 자세하게 들어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이 소요를 큰 역사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요를 두고 온갖 분석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 개혁주의 정치인, 혁명적 사회주의자 등이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분석할 것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소요를 무조건 지지합니다. 그리고 이 소요가 프랑스에서 진행돼 온 일련의 과정의 최근 국면이라고, 프랑스에서 위기가 무르익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라고 봅니다.

소요

이를 전제로, 먼저 소요 자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한 17세 아랍계 청년이 면허 없이 운전을 하다가 경찰 검문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검문을 피해서 달아나려는 듯하자 경찰이 청년의 가슴에 총을 쏴서 죽였습니다.

경찰관은 그 청년이 자신을 차로 들이받으려 했기 때문에 발포는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이것이 사실상 즉결 처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태가 벌어지기도 전에 이미 그 경찰관은 청년의 차 옆에 서서 총을 꺼내고는 “머리에 총알을 박아 버리겠다” 하고 청년을 위협했습니다.

이것이 불씨가 돼 거대한 불길이 타올랐던 것입니다.

3~4일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수많은 청년들, 때로는 굉장히 어린 청소년들까지 거대한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경찰 폭력과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아랍계·아프리카계 청년이 있는 노동계급 지구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소요가 벌어졌습니다. 실로 프랑스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저항이었지만 소요이기도 했기 때문에 당연히 혼돈과 약탈이 있었습니다. 소요 가담자들이 기저귀부터 ― 기저귀 값이 비싸니까요 ─ 신발·옷까지 손에 닿는 대로 다 털어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좌파들은 이 소요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 소요는 우리가 이해하는 의미에서의 조직된 행동이 아니긴 합니다.

그러나 이 소요는 실로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였습니다. 3~4일 동안 경찰서 500여 곳이 공격받았는데, 동네별로 수십에서 백여 명의 청소년들이 습격 시간을 결정해 실행에 옮기고 그것을 SNS에 올려서 동참을 호소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우리는, 소요 참가자들의 의식이 굉장히 모순적임을 인정하면서도 이 소요를 중대한 사건으로 봐야 하고, 이 소요가 차별받는 노동계급 청년들이 억압자들에게 맞선다는 뚜렷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행동이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국가 역시 이 소요의 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이해했습니다. 이 소요를 중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했죠.

1주일 동안 대(對)테러 부대를 포함한 경찰 병력 4만 5000명이 진압에 투입됐습니다. 3~4일 동안 5000명 이상이 체포됐습니다. 대략 체포자 1000명 당 소요 가담자가 약 5만 명 있다고 볼 수 있으니, 이것만 봐도 소요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체포자 통계를 봐도 소요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어리기로는 12~14세 청소년들이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사법부는 엄청나게 가혹한 형벌을 선고함으로써 자신이 국가의 또 다른 억압 기구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습니다. 예컨대 한 청소년은 ‘자라’ 매장 근처에서 그 브랜드 옷을 들고 있다 체포돼 징역 6개월 형을 받았습니다.

또, 정부는 반란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려고 굉장히 신속하게 대응했습니다. 언론을 통해 소요를 비난한 것은 물론이고, 모든 대중 행사를 취소시켜 사실상 전국적 비상사태를 선포하다시피 했습니다. 소요가 불붙은 7월 초는 프랑스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학년이 끝나는 때라서 공연·출제 등 온갖 대중 행사가 열립니다. 정부는 열린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항의 행동이 벌어지거나 소요에 대한 정치적 연대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해 그 모든 행사들을 취소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소요 자체의 성격도, 사태의 위험성을 인지한 국가의 대응도 대단히 정치적이었습니다.

좌파의 대응

그렇다면 좌파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좌파들은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누구도 예상치 못했죠.

좌파들의 대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첫째 부류는 이 소요의 폭력성을 비난했습니다. 소요가 일어난 가난하고 낙후한 지역에서 건물을 불태우는 등의 일을 하면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라는 것이죠.

대부분의 좌파는 경찰의 살해 행위가 범죄라고 비난했지만, 소요가 수반한 폭력을 국가 폭력과 동급으로 비난했습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폭력을 똑같이 비난함으로써 사실상 국가의 편을 들고 소요를 끝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죠.

둘째 부류는 반란을 지지하고 정치적 연대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운동에 어떻게 개입하느냐 였습니다. 이 좌파들에게는 소요에 가담한 청년들과의 끈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해 조금이라도 급진적인 활동가들에게 제기된 과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노동조합 운동과 좌파가 이 소요에 연대를 표하도록 최대한 압력을 넣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이 소요에 가담하고 있는 청년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둘 모두 대단히 어렵지만 필요한 과제였습니다. 소요가 한 번 일어났다 사그라들고는 금세 잊혀질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기이자 기회

앞서 말씀드렸듯, 이 소요는 프랑스에서 진행돼 온 일련의 과정의 최근 국면이고 프랑스에서 위기가 굉장히 심각함을 보여 주는 징후입니다. 이런 시기는 혁명가들에게 엄청난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지난 8년 가량 대규모 사회운동이나 노동조합의 파업이 너댓 차례 벌어져, 매번 몇 달씩 지속됐습니다.

지난 연금 개악 반대 투쟁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이어졌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참가했습니다. 그 전에는 ‘노란 조끼’ 운동이 있었는데, 이때는 주되게 미조직 노동자들이 참가해서 국가와 경찰에 맞서서 싸웠습니다. 이런 운동들에 수십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운동들이 벌어졌는데도, 다음 대선의 가장 유력한 주자는 파시스트 정당 대표 마린 르펜입니다. 거대한 운동들이 벌어지는 동시에 극우의 위협도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현 시기는 기회인 동시에 위험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또,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프랑스의 허울뿐인 민주주의 제도들이 크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프랑스 정부 자신에 의해 말입니다.

정부가 그러는 이유는 이들의 사회적 지지 기반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여당은 의회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의회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있죠. 그럼으로써 이들은 민주주의의 외양조차도 훼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경찰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정부가 유지되는 것은 오직 경찰의 보호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정부 모두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관의 70~80퍼센트가 극우 정당들에 투표하고 있죠.

요컨대 프랑스에서 전반적 위기의 조건들이 갖춰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기는 언제나 정치적인 것입니다. 그 위기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경제학적·사회학적 통계만 들여다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예측에 약하기는 하지만, 당장 몇 달 안에는 아니겠지만 몇 년 안에는 프랑스에 굉장히 심각한 혁명적 위기가 닥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혁명적 위기는 반혁명의 위험과 파시스트들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결국 누가 이길지는, 노동계급과 파시스트 각각의 정치적 조직화 능력이 어떨지에 거의 전적으로 달려 있을 것입니다.

이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올해 초에 시작돼 4개월 반 동안 이어진 연금 개악 반대 운동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일단 이 운동은 표면적으로는 패배했습니다. 결국 연금 개악이 통과됐습니다. 물론 의회 투표로가 아니라 대통령의 특별 권한으로 의회를 건너뛰고 통과시켰지만 말입니다. 이는 프랑스의 헌법이 대단히 비민주적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운동이 승리했습니다. 마크롱이 정치적으로 매우 취약하고 위태로운 처지가 됐기 때문입니다.

연금 개악은 프랑스 지배계급에게 필요하고 모든 자본가와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크롱은 의회에서 이를 다수표로 통과시키지 못했죠. 이는 마크롱의 정치적 취약성을 잘 보여 줍니다.

또, 마크롱이 연금 개악을 밀어붙인 방식은 명백히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었습니다. 마크롱은 노조 지도자들과 협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마크롱의 목표는 노동조합 운동의 기세를 꺾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가 광원노조를 패배시키고,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관제사 노조를 패배시켰던 것처럼 말입니다.

마크롱의 공격이 너무나 노골적이었기에 프랑스의 가장 온건한 노조 지도자들조차 운동에 참가하고 운동을 건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 85퍼센트 이상이 연금 개악에 반대했습니다.

또, 프랑스인 대다수가 노동조합을 민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세력으로 꼽은 여론조사도 있었습니다. 마크롱은 물론이고, 어떤 선출 의원보다도 노동조합이 민의를 더 잘 대변한다고 다수의 프랑스인들이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여론조사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힌 것은 마린 르펜이었습니다. 이를 보면, 많은 좌파들의 주장과 달리 사회운동·파업이 크게 벌어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극우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소요 때나, 연금 개악 반대 운동 몇 주 후에 경찰 폭력과 인종차별에 항의해 벌어진 소요 때나, 프랑스인 다수가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비상사태 조처들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소요에 반대해 탄압을 지지한 것이죠.

이는 상황이 매우 빠르게 변할 수 있음을, 자동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떤 운동·파업에서든 이를 둘러싼 정치적 대결이 벌어짐을 보여 줍니다.

인종차별 반대

그중에서도 특히 인종차별에 맞선 정치적 대결이 중요합니다.

최근 아랍계·아프리카계 청년들이 소요를 벌이고, 지중해에서 난민들이 익사하고, 노동계급 사람들이 경찰에게 처형당하고, 이슬람 혐오가 있는 현실에서 볼 수 있듯, 인종차별은 단결해 싸워야 할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그 일부를 지배계급·극우와 결집하게 만드는 핵심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단체[‘계급 독립성’]는 매우 소수임에도 연금 개악 반대 운동 내에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의 연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운동의 언저리에 있다가 갑자기 들어와서 “인종차별도 반대해야 한다” 하고 강변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연금 개악 반대 운동에 함께하고 일터에서 파업·시위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 겁니다. “우리가 승리하려면 단지 몇몇 개혁을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무엇이고 그것을 쟁취하려면 어떻게 단결을 이뤄 낼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단결을 이루려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사활적이다.”

이제 결론을 짓겠습니다.

다가올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단결을 이뤄내야만 합니다. 위기가 워낙 심각하기에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투쟁은 반드시 또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단결은 정치적 대결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자드 부하룬의 시청자 토론 정리

풍부한 질문과 발언에 매우 감사합니다. 질문에 최대한 답해 보겠습니다.

한국의 사용자들과 대통령도 마크롱처럼 연금 개악을 추진하길 바란다는 발언이 있었습니다. 그에 관해서 제가 유일하게 바라는 바는 한국 노동자들이 프랑스 노동자들처럼, 아니 오히려 더 잘 싸우는 것입니다. 그 발언자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하는 구실에 관해 비판했는데,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되풀이하지는 않겠습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우리는 기층 활동가로서 노조 지도부의 방식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자기 조직화라는 대안을 제안하고 실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파업위원회를 건설하거나 투쟁하는 작업장 간의 연계를 구축해, 꼭 노조 지도부를 통하지 않고도 기층이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 운동에서 부족하게나마 시도했던 것입니다.

연금 개악 반대 투쟁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청년들의 반란이 벌어진 것을 보고 “야, 프랑스인들 정말 투쟁 잘하네” 하고 생각하셨다는 발언도 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프랑스인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죠.

프랑스가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약한 고리라는 지적에 저도 동의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약한 고리이지만 주되게는 정치적인 면에서 약한 고리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 연금 개악 반대 파업, 임금 인상 파업, 극우에 맞선 투쟁, 인종차별에 맞선 반란, 환경을 지키기 위한 투쟁 등 ─ 투쟁들과 유사한 투쟁들이 이미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위기가 비교적 심각하긴 하지만, 프랑스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예외적 존재이거나 특수한 사례인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인종차별의 현실

프랑스의 인종차별 현실에 관해서는 몇 시간을 얘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흑인·아랍계 사람들은 고용에서도 차별받고, 주거 기회에서도 차별받고, 매일같이 경찰에게 괴롭힘 당합니다. 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프랑스의 식민 지배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종차별은 과거지사가 아니라 오늘날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인종차별은 단지 소수의 극우, 경찰, 국가 관료가 옛 시절을 동경하며 부추기는 것이 아닙니다. 인종차별은 오늘날의 지배계급이 분열 지배를 위해 의식적으로 부추기는, 지극히 현대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의 특정한 일부를 겨냥해서 억압하고 그것을 인종차별로 정당화해서, 노동계급의 다른 일부가 그들을 멀리하게 하고 서로 반목하게 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는 극우에게 득이 되고 있죠.

그러니 인종차별 문제는 정말이지 오늘날의 정치 문제입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의 프랑스가 문제인 겁니다.

연대 건설

우리[‘계급 독립성’]가 소요에 어떻게 대응했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선 말씀드릴 것은 소요 기간이 나흘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대응을 건설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시도했습니다.

연금 개악 반대 운동 와중에 우리가 건설에 일조했던 위원회·모임들에 영향을 미치려 했습니다. 완전히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었던 겁니다. 이미 우리는 연금 개악 반대 운동 내에서 파업 노동자들과 인종차별 반대 활동가들이 만나는 위원회들을 건설해 놓았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 소요에 연대를 표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지역 조직의 상태에 따라 소요에 대한 반응이 상이했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 전술이었습니다. 예컨대 소요에 대한 노동조합 관료의 입장을 보고 모든 노동조합 조직이 그와 같은 입장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좌파 조직이든 전국 단위 노조든 프랑스의 단체들을 통틀어 정치적 명료함을 갖고 소요에 연대를 표한 유일한 단체는 ‘연대의 행진’이라는, 주로 미등록 이주민 단체들로 이뤄진 인종차별 반대 운동 연대체였습니다.

이 단체가 연금 개악 반대 운동 내에서 정부의 새 인종차별적 법안에 맞서는 운동을 건설하던 단체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연금 개악 반대 운동 내에서 인종차별 반대 활동을 이미 벌이던 사람들이 이후 분출한 소요에도 가장 잘 대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순

프랑스 좌파의 상태에 대해, 또 극우 부상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방법에 대한 프랑스 좌파 내 논쟁에 대해 질문이 있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프랑스 급진 좌파는 현재 매우 모순적인 상태입니다. 조직적으로는 첨예하게 분열해 있고, 또 분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심화하는 프랑스의 전반적 정치 위기가 조직 문제로도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극우 부상과 관련해서 좌파 내 가장 큰 논쟁은 인종차별·파시즘에 맞선 특별한 운동이 필요하긴 하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소요 때 소규모 파시스트 집단이 경찰 진압을 지원한 일이 있었는데요. 그런 자들에 맞서는 특별한 운동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임금·연금 등을 둘러싼 투쟁을 하다 보면 극우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인지 하는 것으로 논쟁이 뜨겁습니다.

투쟁의 방식·형태 문제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현실의 운동에서 투쟁의 형태는 지극히 다양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어떤 이상적인 투쟁의 형태를 아무리 그려 놓더라도 실제 운동은 훨씬 더 다채로운 형태를 띨 것입니다.

예컨대 올해 연금 개악 반대 투쟁 때 전국적 수준에서 수많은 시위와 파업들이 벌어졌습니다. 그 운동이 끝나자 이번에는 개별 기업 단위로 임금이나 조건을 둘러싼 소규모 투쟁들이 엄청나게 많이 벌어졌습니다. 이전에 노조나 투쟁이 없었던 곳에서도 그랬죠.

마지막으로 소요 문제에 관해 답변하겠습니다.

소요냐 파업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당연히 파업이 노동계급의 더 중요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파업으로 노동계급은 사용자를 경제적으로 타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더 혁명의 주체답게 변하게 됩니다. 파업이 절대적으로 핵심입니다.

하지만 소요가 없는 혁명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파업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경제 파업과 정치 파업이죠. 경제 파업이란, 연금 개악 반대 투쟁 때 봤던 것 같은 파업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정치 파업을 벌인다는 것은, 그들이 피억압자들의 운동의 선두에 설 준비가 돼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소요에 가담한 청년들한테 가서 ‘너희 방법은 틀렸어, 파업이 답이야’ 하고 강변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혁명적 노동계급이라면 ‘억압받는 사람들이 억압자들에 맞서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그들에 연대해 정치 파업을 해야 한다’ 하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