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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 범죄 — 천대·빈곤·소외에 대한 특별한 반응

서울 신림역과 분당 서현역에서 잇따라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흉기 난동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그 피해자와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겪는 충격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가해자의 가족에게도 충격이고 비극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이런 비극을 경찰력 강화에 이용하려고 흉기 범죄에 대한 공포를 실제보다 과장해 부추기고 있다.

전체 범죄에서 흉악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 작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1년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을 포함한 강력 범죄는 전체 범죄의 2.3퍼센트였다.

강력 범죄가 최근 대폭 증가한 것도 아니다. 2005~2021년 통계를 살펴보면, 강력 범죄 중 성폭력을 제외하면 살인, 강도, 방화 등의 범죄 발생률은 조금씩 감소해 왔다.

통계상 성폭력 발생률의 증가는 성폭력특례법 개정으로 적용 기준이 확대되고 신고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 성폭력 범죄가 증가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적 상해 범죄가 왜 벌어지는지는 따져 볼 문제다.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가해자 개인의 정신장애나 마약 투약 여부 등을 부각하며 범죄자 개인 탓으로 돌리려 한다. 범죄를 사회적 요인과 연결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요인만으로 범죄를 설명할 수는 없다. 특히, 개인 간에 벌어지는 폭력·살인 등은 복잡한 매개 요인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범죄의 근원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롯하는 요인들이 있다. 이것이 개인의 특수한 경험과 맞물려서 어떻게 인간성의 붕괴 가능성을 높이는지 알아야 한다.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범죄의 원인을 가해자 개인 탓으로 돌리려 한다

천대와 빈곤이 심각해질수록 사람들의 삶과 내면은 황폐해지기 쉽다. 배고파서든, 너무 화가 나서든 일부 사람들이 범죄에 내몰릴 가능성이 커진다. IMF 경제 위기 시기인 1998년에 범죄율이 급증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직후에도 범죄율이 높아졌다.

경제적 어려움과 열악한 생활조건은 인간적 삶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과음이나 약물 중독 등 여러 가지 부적절한 행동에 빠지기도 쉽다.

자본주의가 점점 강화하는 경쟁으로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것도 범죄의 한 요인이다.

사람들은 더 좋은 대학 진학, 일자리, 승진을 두고 끊임없이 동료·이웃과 경쟁하도록 부추겨진다. 사람들 사이의 유대는 갈기갈기 찢어진다. 불황기에는 이런 일이 더 심해진다.

서현역 사건의 가해자는 정신질환이 생겨 “형처럼 좋은 특목고에 가지 못했다”며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한다. 경쟁이 가하는 압력과 열패감이 그를 비뚤어지게 하는 데 일정한 영향을 줬음을 짐작케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경쟁의 사다리에서 발버둥치는 동안 기업주들과 고위 관료와 부자들은 착취, 상속, 각종 투기 등으로 배를 불려 간다. 참사와 산재로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쳐도 책임자들은 권력과 돈을 이용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는 사회의 모순에 대한 분노를 낳기도 하지만, 도덕에 대한 냉소·경멸,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써먹을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를 낳기도 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 개념이 자본주의 사회의 범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소외는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과 노동생산물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노동자들은 이 사회의 부를 만들지만 자신의 노동조건과 자신이 만든 생산물, 그리고 사회에 영향을 미칠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소외 때문에 노동자 등 노동계급 사람들은 매일 무기력과 불안감을 내면화하며 살아간다. 좀 더 안타까운 경우 정신적 장애를 겪는다.

그런데 이런 심적 불안과 열패감은 때로 더 약한 상대에게 분풀이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무언가를 통제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마녀사냥식 분풀이 등이 그런 사례다. 범죄에 대한 무관용 정서의 표출도 그 하나다.

저명한 범죄 문제 전문가인 이창무 교수는 그의 저서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메디치, 2016)에서 군대 내에서 성폭력 범죄가 벌어지는 심리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자신의 결정권과 자율성이 상실된] 심리적 무력감과 마주한 인간에게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강하려는 본능적 욕구가 강하게 작동한다. 힘이 있[고] … 누군가를 통제하는 인간이고 싶은 것이다. 병사들은 2년 동안 자유를 반납하고 위계질서에 편입돼 지위가 가장 낮은 조직원이 된다. … 이들은 박탈당한 자유만큼 … 이를 다른 한편에서 채우려는 것이다.”

한 번의 실패

이번 신림역·서현역 흉기 난동처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하는 범죄는 이런 소외에 대한 특정 반응이 끔찍한 형태로 폭발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국내 범죄 56건을 분석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2014)를 보면, 가해자는 대부분 안정적인 직장이나 교육·가정 환경, 사회적 지지 등이 결여돼 있는 사람들이다.

범행 당시 직업이 없는 사람이 75퍼센트였고, 직업이 있는 경우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종사자였다.

또한 낮은 복지 수준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낮은 복지 수준으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감은 막중하다. …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러한 결과들을 보면서 … 자신이 실패했을 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 희망도 없게 된다. 결국 그 책임은 국가와 사회에 돌리게 되는데, 유형의 실체가 없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격 대신에 이를 일반인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범죄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천대와 빈곤 그리고 소외에 짓눌려 망가지고 부서지고 산산조각 난 사람들이다.

물론 천대·빈곤·소외의 끔찍한 압박 속에서도 범죄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심지어 그런 상황을 바꾸려는 집단행동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범죄가 확 줄어든 사회를 만들려면 엄벌주의도, 공권력 강화도 진정한 답이 아니다. 불평등에 맞서 싸워야 하고, 그런 요인들의 뿌리인 자본주의 질서에 도전해야 한다.

사람들은 집단적 저항을 통해 유대감과 자신감을 갖고, 분노를 체제와 그 수호자인 지배계급에게 돌리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느끼며 범죄 등 사회 문제를 줄일 수 있다.

경찰력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이런 저항을 억압하는 데 이용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