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가하는 이유:
징계보다 더 두려운 것은 교육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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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어느 해보다 뜨겁고 슬프다. 하지만 폭염보다 뜨거운 열정과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교사들의 주말 집회가 최대 20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 놀라운 일이다. 일곱 차례 이어진 주말 집회는 크나큰 위로와 희망을 줬지만, 우리의 바람을 성취하려면 주말 집회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현실도 보여 줬다.
유례없는 규모의 교사 집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형편이 없고 심지어 문제투성이다. 법 개정도 하나 된 게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교사들의 절실한 요구를 외면하는 바람에, 또 다른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동료 교사들의 죽음이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아스팔트 위에 흘린 수많은 교사의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으려면 여기서 멈출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알량한 교권 대책을 던져 주고는 우리더러 ‘가만히 있으라’ 한다. 기가 막히게도, ‘교권 보호’는 그만하면 됐다고 한다. 교권을 보호하겠다더니 연가·병가 쓰면 중징계하겠다고 협박한다. 공교육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며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한다.
교사가 동료 교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개인 휴가를 쓰는 것도 불법인가? 정말이지 ‘교권 침해’는 누가 저지르고 있는가? 지금까지 교사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교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장본인이 할 소리인가? 교사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추모조차 못 하게 방해하는 자, 얼마나 잔인한가! 교육부는 교사의 권리도, 교사의 고통도 안중에 없다.
지금 공교육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잘못된 교육은 멈춰 세워야 한다. 공장 노동자가 기계에 손발이 잘리고 몸이 부서지면 당장 기계를 멈춰야 하듯이, 교사도 학생도 쓰러져가는 이 죽음의 학교를 멈춰 세워야 한다. 죽음과 절망의 공교육을 멈춰야 비로소 새로운 희망의 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다.
정부는 실질적인 대책은 외면한 채, 교권과 학생 인권을 대립시키고, 교권의 문제를 ‘문제아’나 ‘진상 학부모’의 탓으로 돌리면서 정작 자신의 책임을 가리고 있다. 그러나 교사의 잇따른 자살은 잘못된 교육 구조와 정책 탓이다. 서이초 교사의 49재가 오는 9월 4일에, 우리는 정부에게 그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한다.
정부는 교사들이 이대로 주저앉기를 바란다. 정부가 상당히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9월 4일 집단행동을 통해 교사들이 자신감을 얻어 운동이 확대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교원 정원과 예산 삭감 등 긴축을 추진하고 학교를 더 위험하게 만들 ‘교육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교사 운동의 전진은 교사들의 저항을 단속하면서 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공교육 멈춤의 날’ 행동이 규모 있게 성사된다면,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에 제동을 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교사 운동은 9월 4일을 발판 삼아 더 높이 도약해야 한다. 서이초 교사가 일기장에 남겼듯이, 과도한 학부모 민원뿐 아니라 업무 폭탄과 (특히 학교 부적응이나 학교폭력에 관한) 학생 지도의 어려움이 교사 고통의 주된 요인이다. 따라서 교사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려면, 우리의 요구는 ‘교육권 보장’을 넘어서 교사의 조건과 교육 환경 개선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부의 엄포에도 적잖은 교사가 참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나도 하루 휴가를 내고 참여하려고 한다. 물론 징계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징계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교육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비극이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더 많은 교사가 함께할수록 정부의 탄압을 방어하는 데도 유리할 것이다. 우리 자신을 지키는 힘, 학생을 지키는 힘은 바로 우리의 집단적 행동에 달려있다. 9월 4일 ‘죽음의 공교육’을 멈추는 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