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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예산 삭감하며 질 높은 유보통합 말하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가 유보통합(유치원·어린이집 통합)을 주요 국정과제로 지정하면서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11월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복지부와 교육부가 나눠 맡고 있던 영·유아 보육 업무를 모두 교육부로 이관하는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와 11월 30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2024년까지 영·유아 보육 업무를 교육부와 교육청으로 이관하고, 2025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2022년 9월 세종시 아이누리 어린이집을 찾은 윤석열 ⓒ출처 대통령실

유보통합은 30년 전인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만 3~5세 유아를 돌보고 가르치는 기관이 어린이집(보건복지부)과 유치원(교육부)으로 나뉘어 있어, 기관별 교사 자격, 시설 기준, 재정 지원 등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는 양질의 교육과 보육을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거나, 좋은 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몇 년간 대기하는 등 전전긍긍해 왔다. 결국에는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선택하게 돼, 영유아 때부터 교육과 보육에 불평등이 자리 잡아 왔다.

역대 정부들이 몇 차례 유보통합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좌초됐다. 영유아 보육·교육을 개선하는 데에 정부가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다 보니, 부처·기관 사이의 갈등,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 사이의 갈등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밝힌 유보통합 추진 방안도 문제가 매우 많다. 논란이 되는 사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이 교육부 이관과 2025년 시행이라는 입장만 밝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계획에도 영유아 보육·교육을 상향 평준화할 재정 확보 계획이 없다.

유보통합을 위해 교육부가 추정한 추가 필요 재원만 2조 6000억 원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교육청에 지급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격차 해소 등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세수 감소를 이유로 내년 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한 데 이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1조 5000억 원을 빼내어 고등교육으로 옮기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유보통합 재원까지 마련하라고 하는 것은 영유아 보육·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누리과정 시행에 필요한 재정을 교육청들에 떠넘긴 사태가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질 높은 교육·돌봄을 위해 유보통합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그 속내는 더 많은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나오게 하고, 출생률 감소에 따라 교육·돌봄 지출을 줄여가는 데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정부 예산·지출 삭감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유보통합도 부처 일원화를 통해 재정 관리를 통일하고 그 규모를 점차 줄이는 방식을 취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유보통합이 예전처럼 좌초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 기회에 교사 1인당 영유아 수를 감축하는 등 상향 평준화된 유보통합이 실현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러려면 더 많은 재정과 인력 증원이 요구된다.

교사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요구를 중심으로

유보통합을 둘러싼 주요 쟁점 하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교사 자격 통합 문제이다.

현재 유치원 교사는 전문대 이상 유아교육과를 졸업해야 자격증을 얻을 수 있다. 국공립 유치원 교사의 경우에는 수십 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고 임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반면,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원격대학·학점은행제 등으로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하거나 학점을 이수하는 것으로도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자격 요건이 다르다는 이유로 보수도 최대 월 100만 원까지 차이 난다.

정부가 아직 교사 양성과 자격증 통합 방안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영유아 정교사’ 자격을 신설해 통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현 보육교사와 유치원 교사들은 교대·사범대나 교육대학원 등에서 재교육 절차를 거치면 영유아 정교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전교조나 교사노조연맹 등의 유치원 교사를 중심으로 교사 자격 통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그들은 ‘졸속적 유보통합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월 25일 전교조 주최 결의대회에 2000명이 모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육교사들이 유치원 교사와 동일한 교사자격증이나 임용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3~5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될 수 없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장에서 충분히 경력을 쌓은 어린이집 교사까지 깎아내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실제 2022년에 3~5세 어린이 중 40퍼센트 가까이는 어린이집에서 교육받았고(유치원은 50퍼센트), 누리과정 도입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3-5세에게 공통교육과정이 제공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과연 자본주의 국가의 공인 자격증이나 시험 위주 대학 교육이 교사의 전문성이나 자질을 평가하는 타당하고 건전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따져 봐야 한다.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자격증 소지 자체보다 진정한 교육 능력 함양이 중시돼야 한다. 모든 교사에게 충분한 연수 기회가 제공되고, 교육 경험을 둘러싼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문화를 만드는 게 진짜 중요하다.

유치원 교사 상당수(특히 공립)가 교사 자격 통합으로 인해 그나마 교육 환경과 노동조건이 나았던 유치원마저 상황이 열악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듯하다. 실제 교육 예산 삭감에 나서고 있는 정부의 행태를 볼 때, 정부가 약속한 ‘교사 조건의 상향 평준화’는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게 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교조 등이 유보통합에 대해 ‘조건부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영유아 보육·교육의 개선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배치될 수 있다. 이 기회에 조건 개선을 기대하고 있는 보육교사들과 척지는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유치원 교사들이 앞장서 윤석열 정부의 유보통합 방안의 진정한 난점인 재원 문제를 지적하고 충분한 재정 투입으로 시설과 교사 처우를 상향 평준화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럴 때만 영유아 보호자인 대다수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고, 어린이집 교사들과 단결해 ‘제대로 된 유보통합’을 실현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단결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