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로기완〉:
탈북민 로기완을 통해 본 난민 신청자의 힘겨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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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기완〉(3월 1일 넷플릭스 공개)은 벨기에의 탈북 난민 신청자 로기완의 실화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영화화했다.
로기완은 어머니와 함께 북한을 탈출해 중국 연길에서 힙겹게 살아간다. 어머니는 공안 단속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죽는다. 어머니는 기완 삼촌에게 자신의 시신을 팔라고 하고 그 돈으로 기완을 타국으로 떠나게 한다. “자기 이름을 얻고 살아남아라”라는 유언을 남긴 채.
브뤼셀에 온 기완은 탈북민 신분으로 난민 신청을 한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벨기에 조사관은 로기완에게 돈 벌려고 온 조선족 아니냐는 차가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중국에서 탈북민임을 숨겨야 했던 로기완은 모든 증거를 없애 버렸었다. 어머니와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 유일한 증거. 그는 두 번째 인터뷰 날짜를 받는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다음해 2월로.
난민 신청자 기완의 하루는 그야말로 인간 생존의 한계를 시험하는 나날들이었다. 어머니 유산의 상당 부분이 브로커에게 갔고 남은 650유로(약 100만 원)로 몇 달을 버텨야 하는 상황.
휴지통에서 먹다 버린 빵을 찾아 먹고 빈 병을 팔아 손에 쥔 동전 몇 푼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화장실 바닥에서 잠을 자지만, 유료 화장실이라 그조차 여의치 않고 어느 날에는 입구까지 봉쇄된다. 공원에서 불을 쬐다가 한 무리의 청소년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한다.
원작 소설의 표현을 빌자면 “중립 평화의 도시” 브뤼셀도 자본주의의 차가운 도시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기완은 어렵사리 축산 냉동 공장에서 임시직 일자리를 얻게 된다. 이 공장에서 알게 된 조선족 ‘누나’는 소위 경제 난민.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유럽으로 온 그녀는 기완에게 여러 도움을 준다. 동료들의 텃세도 막아 주고 된장도 퍼 준다.
그러나 여전히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난항을 거듭한다.
급기야 냉동 공장 경영진의 협박에 못 이겨 조선족 누나는 기완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중국으로 돌아가 기완이 탈북민임을 입증할 연길 신문사의 ‘탈북의 모정’(로기완 어머니의 교통사고 소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천신만고 끝에 찾아 낸다. 그 기사는 기완이 난민 지위를 얻는 데서 결정적 증거가 된다.
영화는 난민 신청자의 마음을 따듯한 시선으로 다룬다. 기완은 언제나 타인을 의식하고 경계하는 사람이지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기완은 벨기에에서 마음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한국인 여성 마리(소설에서는 로기완의 같은 직장 동료였던 필리핀 여성)를 사랑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난민 지위를 얻은 기쁨도 잠시, 기완은 마리와 함께하기 위해 기꺼이 모로코로 향하고 난민 지위를 포기한다.(소설에서는 난민 보호소에 구금됐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필리핀 여성을 따라 런던으로 향한다.)
기완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자 했던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 존엄성이 기완에게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할 자유이기도 했던 것.
영화에서 기완의 마지막 멘트처럼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떠날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떠나기 위해서는 머물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이름을 얻고 자유롭게 생존하기 위해서.
이 영화의 감독(김희진)은 유럽에서 난민 지위를 받고자 애쓰는 실제 탈북민들을 취재했다고 한다.
영화의 많은 장면이 한국의 난민 차별 현실과 겹쳐 보였다. 로기완은 전쟁과 기아, 정치적 탄압을 피해 온 내 친구 예멘 난민 압둘라이자 이집트 난민 알리다.
또한 영화는 경제 난민과 정치 난민을 칼같이 구분하려는 자본주의 사회의 난민 인정 시스템도 돌아보게 한다. 조선족 누나의 처지 또한 기완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난민법 개악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은 값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