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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 난민 신청자 8년 만의 어머니 상봉 가로막은 비정한 한국 정부

이집트인 난민 신청자 A 씨의 어머니가 한국에 있는 아들을 만나려고 인천공항까지 왔다가, 출입국 당국의 입국 불허로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이집트로 귀국하는 일이 벌어졌다.

A 씨의 어머니는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관광 비자를 발급받았고, 귀국 항공편까지 예매해서 지난 9월 16일 한국에 왔다. 무려 8년 만에 모자가 상봉할 기회였다.

그런데 입국 심사 과정에서 입국이 거절됐다. A 씨의 어머니가 한국 내 난민 신청자의 가족임을 파악하고는, 그녀도 난민 신청을 할까 봐 입국을 막은 것이다.

A 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입국 심사대에서 출입국 직원이 어머니에게 한국에 아는 사람이 있냐, 이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연히 아들인 제 이름을 말했죠. 그러자 출입국 직원이 전산망 검색으로 제가 난민 신청자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어머니에게 ‘당신도 난민 신청하러 온 거 아니냐’며 입국을 불허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난민 신청하러 온 게 아니고 말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입국이 거부되자 어머니는 무너져 내리셨습니다.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며 울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울음 소리를 전화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입국 직원은 ‘울어 봤자 아들 볼 수 없다.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만나라’ 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여권이 만료돼서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에 갈 수가 없다, 가더라도 체포될 수 있다’ 하고 항변하자, 그 직원은 나에게 ‘그건 당신 문제니 내가 알 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딱 하루만 아들을 보게 해 주면 바로 출국하겠다’고 사정했지만, 출입국 직원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딱 하루만”

“어머니가 난민 신청을 할 생각이셨으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했을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오시면 한국 이곳저곳을 관광시켜 드리려고 돈도 모아 뒀습니다. 어머니가 묵을 숙소와 관광 계획을 정리해 출입국 당국에 제출했는데도 당국은 이를 무시하고 입국을 거절했습니다.”

출입국 직원은 A 씨의 어머니에게 예약한 호텔의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하고는, 어머니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자(아랍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이것도 입국 불허 사유로 삼았다고 한다.

호텔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으며 관광이 아니라 아들을 만나러 온 것이라는 이유로 입국을 불허하는 통지서에 어머니가 서명하기를 거부하자, 출입국 당국은 통지서를 도로 회수해 갔다. 어머니가 통지서에서 ‘24시간 내에 이의신청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발견하고 이에 대해 문의했으나, 출입국 직원은 ‘그런 내용 안 적혀 있다’며 통지서를 빼앗아가 버렸다고 한다.

열악한 출국 대기실 A 씨의 어머니는 이곳에서 직원의 고압적 태도에 시달렸다 ⓒ제공 이집트인 난민 신청자 A 씨

입국이 거부된 A 씨 어머니는 출국 대기실로 보내졌다. 출국 대기실은 환경이 열악하기로 악명 높다. 출입국 직원의 인종차별적 태도는 여기서도 이어졌다.

“출국 대기실에서 어머니가 계속 울었습니다. 그러자 출입국 직원은 울지 말라고 계속 소리쳤습니다. 이 소리를 전화로 듣고 있던 제가 항의하니까 그 직원은 ‘넌 난민 신청자니까 그렇게 말할 자격 없어’ 라고 말했고, 제가 한국어로 직원한테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물으니 ‘뭐라구요? 뭐라구요?’ 하면서 못 알아듣는 척하다가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A 씨는 어머니를 입국시킬 방안을 알아봤다. 항공사 직원은 소송을 해서 출입국 당국의 결정을 뒤집어야 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2~3주는 걸릴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게다가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수백만 원이 필요했다.

결국 안타깝게도 A 씨 어머니는 이틀 만인 9월 18일 입국을 포기하고 이집트행 항공편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방문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추석 명절이 A 씨에게는 한국에 온 가족조차 만나기 힘든 난민의 비통한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산가족

사실 어머니가 A 씨를 만나기 위해 이집트를 빠져나오는 것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것이었다.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집트 내무부가 ‘국가 전복을 시도한 불법 단체에 가담한 청년들을 체포했다’ 하고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잘 알려진 사건에 연루돼, 이집트 내에서도 도피 생활을 하느라 오랫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서류상으로 여전히 이집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이집트 보안 당국은 제가 해외로 도피해 있다고 의심합니다. 제 동생이 국가보안부에 끌려가 눈을 가리고 손이 묶인 채로 취조당한 적도 있습니다. 형이 어느 나라에 있느냐며 말이죠.

“어머니가 이번에 출국하려고 할 때도, 보안 당국은 ‘아들 만나러 가는 거 아니냐’며 출국을 허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연로한 여성이 계속 울고 앉아 있으니까 담당 보안 장교가 눈감아 줘서 겨우 출국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입국이 거부돼 이집트로 돌아간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러 갔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안 되기 때문에 보안 당국에 ‘호텔 이름을 못 대서 입국이 거절됐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천신만고 끝에 꿈에 그리던 아들을 만나리라는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어머니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A 씨 역시 유대가 끈끈했던 가족들을 8년 동안 상봉하지 못해 정신적 고통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국적과 종교가 뭐든 전 세계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형제 자매를 만나지 못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특히 어머니를 못 만나는 것은 너무 큰 고통입니다.”

난민 인정에 매우 인색한 한국 정부는 난민 가족에게 애초 비자를 내 주지 않거나, 심지어 이번 사건처럼 비자를 내 주고도 입국 심사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입국을 가로막곤 한다. 이런 비인간적인 조처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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