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동성애 혐오적 종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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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약칭 팔연사) 집회에 참가하는 한 무슬림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대뜸 내게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이 뭐냐고 묻는다. 이는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라 불편하다.” 그는 성소수자 포용적인 입장이었다.
무슬림도 여느 인구 집단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소수자를 포용하거나 적극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 (최일붕, ‘이슬람 혐오는 무엇이고 왜 잘못됐나’를 보라.)
하지만 다양한 무슬림을 하나로 뭉뚱그려 ‘무슬림은 동성애 혐오적’이란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이는 이슬람이 후진적이고 불관용적이라는 생각의 한 근거가 된다.
일부 좌파도 이런 편견을 공유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의 학생 조직이 개최한 대학 강연회에서 발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상황이 퀴어 공동체들에게 나쁜 만큼이나, 우리는 하마스에 주도되는 저항 지도부에 대해 침묵한 채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 하마스의 꿈이 실현된다면, 그곳에선 여성과 퀴어와 주변화된 집단들에 대한 엄청난 억압이 지속될 것입니다.”
지난여름 동안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주최하는 집회에서 (성소수자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하는 것을 넘어서) ‘퀴어’가 다소 불비례적으로 강조된 것의 기저에도 이와 비슷한 편견이 작용한 듯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편견을 차별화의 변별적 표지로 활용하려 하는 듯하다.
하마스 강령은 성소수자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족 해방 투쟁의 지도부인 하마스한테서 유독, 맥락 없이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문제 삼는 것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또한 이런 태도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지지를 받는 대중 정당이고 변화해 왔음을 보지 못한다(않는다). 하마스는 2017년 여성에 대한 차별적 강령을 삭제하고, 2021년 자밀라 얄산티를 여성 최초의 정치국원에 임명했다. 그 회원과 지지자들의 압력 때문이었다. 유물론에 따르면 사람들의 의식(사상)은 현실의 변화와 투쟁 속에서 변화한다.
서방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
‘이슬람이 유난히 동성애 혐오적’이라는 주장은 서방의 우월성과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서방 지배자들이 고안하고 체계적으로 조장한 것이다.
2011년 12월 국제 인권의 날, 당시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유엔 기념 연설에서 이를 천명했다. 그는 동성애 권리를 ‘세계의 보편 인권’이라 선언하고, 미국이 이를 위해 앞장설 것이며,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국가들(주로 중동의 국가)을 규탄했다. 당시 오바마 정부가 지속하던 ‘테러와의 전쟁’은 ‘아랍의 봄’과 충돌하고 있었다.
그후, ‘핑크워싱’은 미국 지배자들이 사용하는 대외 정책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2019년 그 자신을 포함해 성소수자 혐오자가 득시글한 트럼프 정부도 이란을 압박할 한 수단으로 ‘동성애자 인권’을 내세우며 “동성애자 비범죄화를 위한 세계적 캠페인”을 벌였다.
이스라엘도 자신을 ‘동성애자의 친구’로, 팔레스타인인들을 ‘동성애 혐오 아랍인’으로 묘사하는 온갖 허위 광고를 해대며 인종청소를 정당화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런 프로파간다의 한 효과는 자국의 성소수자가 직면한 혐오와 차별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혐오는 서방에서도 만연해 있다.
1960년대 이전에만 해도 미국에서 동성애자라는 게 드러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지금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미국 성소수자들이 싸웠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엽 이후 자본주의 위기가 한층 심화하고 극우가 부상하면서 미국 성소수자들의 처지는 다시 악화되고 있다. 성소수자 혐오 범죄도 늘었다.
2015년 이스라엘에서는 예루살렘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에서 한 초정통파 극보수 유대인이 달려들어 참가자 6명을 칼로 찔렀고, 그중 한 명이 사망했다. 그는 탈무드에 동성애가 금지돼 있다며 자신의 공격을 정당화했다.
한국에서는 10월 27일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60~70만 명 규모의 보수 기독교인들의 집회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렸다. 주최 측의 기도 제목 중 하나는 이렇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에 반하는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의 성혁명적 흐름을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옵소서.”
이것은 성소수자 혐오가 특정 종교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준다. 성소수자 혐오는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한다.
서방 제국주의의 동성애 혐오 수출
동성애 혐오는 산업 자본주의가 한창 발전하던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처음 생겨났다. 당시 지배계급은 노동력 재생산을 담당할 가족을 재건·강화하기 위해 가족 밖의 성관계를 체계적으로 억압했다. 1885년 남성 간 성적 행위가 모두 범죄로 규정됐고, 그즈음 동성애자(뒤이어 이성애자)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동성애 차별과 자본주의 가족제도 존속의 이러한 본질적인 관계는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았다.
이처럼 본디 성소수자 혐오는 서방의 현상이었다. 그런데 서방 제국주의는 동성애 혐오를 식민지에 수출했다. 오늘날 중동·아프리카에서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형법은 영국 등 서방 강점기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컨대 팔레스타인에는 1936년 영국 위임령하에서 남성 간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형법의 일부로서 도입됐고, 이는 이스라엘 건국 후에도 유지됐다. 이전에 존재했던(때로는 비난받았지만, 대체로 수용됐던) ‘비규범적 관계’는 이제 범죄로 다스려졌다.
파키스탄에서도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화하는 형법 377조는 식민지 시대의 잔재다. 파키스탄 성소수자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100여 년 전에는 동성애 행위를 범죄화함으로써 우리를 ‘문명화’하려 애쓴 서구가 현재는 애초에 자신들이 범죄로 만든 동성애 행위를 비범죄화함으로써, 그리고 우리를 ‘야만인’으로 만들고 자신에게 우리를 교정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보면서 우리를 문명화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참으로 얄궂다.”
꾸란과 이슬람 사회의 전통
흔한 편견과 달리, 7세기경에 편찬된 꾸란은 동성 간 성행위 대한 처벌은커녕 명확한 비난도 말하고 있지 않다.
꾸란에서 동성 관계를 비난한다고 알려진 구절은 두 군데인데, 하나는 예언자 롯과 하나님이 (유황) 비를 내려 벌한 소돔의 백성 이야기이다(꾸란 제7장 80~84절). 여기서 소돔 백성은 동성애의 죄를 범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알 안달루스의 이슬람법학자 이븐 하즘(994~1064)은 롯의 백성이 멸망한 이유는 동성애 행위 때문이 아니라 우상 숭배 때문이었으며 예언자의 말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구절은 꾸란 제4장 16절에서 발견된다. “너희들 가운데 있는 두 남자들이 비합법적인 성관계를 하였다면 그 두 사람의 명예를 빼앗아라. 만일 그들이 회개하고 바로잡는다면 내버려 두어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회개를 수락하는 자비로운 분이시라.”
여기서 “둘”을 일부 학자들은 동성간 관계로 인식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두 남자와 한 여자, 즉 ‘비합법적’ 이성 간 관계로 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구절은 자비로운 신의 권능에 대한 설명으로 여겨진다.
몇 세기가 지난 후, 예언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 하디스는 좀 더 분명히 동성간 성행위를 부정적으로 다루며 상당한 엄벌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유죄가 인정되려면 당사자가 자백하거나 목격자가 있어야 했다. 목격자는 무슬림 남성으로 품성이 좋아야 하고 성기 접촉을 목격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 유죄 선고를 내리기가 어려웠다.(유죄를 받으면 거의 사형에 처해졌지만 말이다.)
이는 이슬람 율법이 남성간 성관계를 죄악시했지만 현실에서는 상당히 관대하게 다뤘음을 의미한다.
실제 19세기 이전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다양한 성적 존재와 관계가 존재했고 때로 관대하게 수용됐다는 증거는 많다. 인류학자 스티븐 머리와 윌 로스코가 편집한 《Islamic Homosexualities》(1997)는 그에 대한 풍부한 사실을 밝혀 낸다. 당시 성인 남성들은 종종 10대 소년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여겼다. 이런 호감은 죄이지만, 덕이 높은 남성도 음주에 빠지듯 이런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됐다.
만약 성적 행위를 의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죄로 여겨지지 않았다. 18세기 카이로 알아즈하르대학교 총장을 30년 넘게 지낸 압둘라 알샤브라위의 시 모음집에 실린 시는 대부분 연애시였고, 어린 남성을 향한 것이었다.
바로 이런 관대한 정서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식민지가 미개하고 열등하다는 한 근거가 됐다.
이슬람 혐오를 반대해야 한다
오늘날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동성애 불인정은 지역 전통이나 이슬람 종교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화(또는 그것을 지향한 근대화 운동)의 산물이다.
제3세계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들은 제국주의에 맞서면서도 흔히 제국주의자들의 성관념을 수용했다. 당시 민족 해방 운동이 흔히 본보기로 삼았던 소련(스탈린주의 체제였다)에서도 동성애가 불법이었다.
신생 독립국의 지도자들은 ‘전통 문화’의 위대함을 옹호하면서, 동성애를 외부 세력 침략의 결과로 간주했다. 그들은 원래는 서구의 것이던 동성애 처벌법을 활용해 성소수자를 억압했다.
이처럼 이 지역의 성소수자 문제는 제국주의라는 그물과 얽히고설켜 있고, 그에 대한 대중의 정서도 단순치 않다.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세워지면서 퀴어 팔레스타인인에게는 복잡한 억압이 시작됐다.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정착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서구의 관념과 문화적 표현이 팔레스타인 사회에 유입됐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아랍 문화의 정통성과 아랍 정체성에 도전하는 외부의 침입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러한 정서는 이스라엘이 강요하는 외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신의 유산을 보호하고 토착 문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강한 열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재한 팔레스타인인 시마 자예드, ‘Queer Lives at the Crossroads: Examining Israel’s weaponizing of LGBTQ+ Policy vis-à-vis Palestinian Queer Experiences’)
(친)서방 나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슬람 혐오는 서방 지배자들과 우익이 자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을 가리고 또한 국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데 사용되는 핵심 이데올로기다. 성소수자 인권을 명분으로 한 이슬람 혐오에 조금치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
꾸란에 대한 사실관계 부분은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의 임병필 HK연구교수의 〈샤리아에 규정된 동성애와 이슬람사회의 동성애 인식〉(2010)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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