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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혐오는 무엇이고 왜 잘못됐나

2주 전쯤 〈뉴욕 타임스〉 신문은 개를 식용하던 한국이 이제는 개를 아들딸로 입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년 전에만 해도 한국은 개 식용으로 국제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고도 했다.

필자에게는 30년 전인 1994년의 기억이 생생하다. 프랑스의 유명한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당시 한국 대통령 김영삼에게 개 식용 금지를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낸 일이었다. 사실 당시에도 개 식용을 하는 한국인은 다수가 아니었고 소수였다. 그리고 필자 자신은 개 식용을 혐오했다.

그러나 나는 브리짓 바르도의 언행에 매우 화가 났다. 내 기호가 어쨌든, 한국인의 다수가 어쨌든 그는 한국인을 비하했던 것이다. 나는 당시에도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국제주의자였지만, 그의 인종차별적 한국인 비하에 몹시 분노했다.

10월 24일 필자가 발제한 ‘이슬람 혐오 - 오늘날 인종차별의 주요 형태’ 토론회. 한국인, 중동인, 서구인 등이 모여 열띠게 토론했다 ⓒ이미진

이슬람 혐오에 대한 전 세계 무슬림의 감정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신에게 얼마나 순종하든, 머리 스카프나 베일을 두르든 두르지 않든 그는 이슬람을 깔보고 비웃는 언행이 오만한 인종차별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인 대부분은 이슬람도, 무슬림도 잘 모른다. 아마 한국에 사는 무슬림이 겨우 15만 명밖에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의 약 500만 명, 영국의 400만 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나마 그 15만 명 중 3만 명은 주한 외국인 학생과 사업 관련자들이고, 12만 명은 이주 노동자들이다. 이 이주 노동자들은 주로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출신이고 대부분 몇 년간 일터에서 죽도록 고생하다가 고국으로 귀국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아직 서유럽만큼 이슬람 혐오가 가시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몇 년 전 입국한 예멘 출신 난민들과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들이 겪어 온 이슬람 혐오를 생각하면 한국도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도 무슬림의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무슬림의 존재감이 가시적이 되면 이 나라에서도 무슬림 혐오, 이슬람 혐오가 가시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어떤 좌파 인사 한 분은 강연(10월 19일)에서 한국 좌파 측에도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꽤 있다고 인정했다.

한국에서도 이슬람 혐오에 맞서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조승진

이하에서 필자는 무슬림 혐오가 훨씬 노골적인 서구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서구에 사는 무슬림들은 너무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들은 하찮은 존재 취급을 받고, 억울하게 신고당하고, 공개적으로 질문을 받으면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고 맹세해야만 한다. 거리에서 극우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무 이유 없이 욕을 해 대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흔히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다. 이런 천대와 억압이 하도 일상화돼서 무슬림들은 단 하루라도 평화가 자기 가족과 함께하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구직신청서에 ‘무함마드’ 같은 이름을 기입하면 조용히 걸러 내기를 당한다.

보수 정치인들은 무슬림들을 ‘내부의 적’처럼 묘사하고 소위 좌파 정치인들은 대부분 이를 모른 척한다. 심지어 보수 정치인들은 때로 사악한 조작까지 한다. 2016년 런던 시장 선거에서 보수당은 어느 병원의 기도 인도자 술리만 가니를 아이시스 조직원으로 조작하고 노동당 후보 사디크 칸과 엮으려 했다. 그 후 순전한 거짓임이 밝혀졌는데도 정부는 거짓을 되풀이했다. 조작자들과 조작을 진실인 양 퍼뜨린 자들이 모두 나중에 사과했지만, 술리만은 어느 날 갑자기 경찰 기동대가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와 자기를 보안 기관으로 강제 연행해 갈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를 연다는 이유로 심한 탄압을 받기도 한다. 핑계는 무슬림들이 유대인 혐오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압도 다수 무슬림들은 유대인 혐오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유대인 민족(국가)주의자들, 즉 시온주의자들을 반대할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무슬림계 소수 민족들은 민족자결권을 부정당한 채 탄압을 받는다. 튀르키스탄 동부 지역의 위구르인들이 그렇고, 미얀마의 무슬림들이 그렇고, 캅카스 북부 지역의 체첸인들이 그렇다.

요컨대 이슬람 혐오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나라 안팎의 저항과 도전을 억압하고자 나라 안팎의 무슬림들을 희생양 삼고 공격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무슬림은 잠재적 테러리스트인가?

무슬림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1990년대부터 조금씩 증가하다가 특히 2001년 9/11 이후로 급증해 왔다. 그런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는 말이 바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말이다. 이때 ‘극단주의자’라는 말은 ‘테러리스트’라는 말 대신에 사용하는 말이다.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 뉴스를 보면, 특히 〈워싱턴 포스트〉 2018년 11월 25일치에 따르면, 오히려 극우가 테러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가, 특히 그들의 증오 범죄가 훨씬 많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때 이후로도 극우 테러는 끊이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사례 한 가지만 들자면,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시 총격 사건이었다. 무슬림을 증오한 극우 청년 하나가 모스크에서 기도하고 있던 무슬림들을 겨냥해 총을 난사해 무려 51명을 죽이고 89명에게 부상을 입힌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사건이었다.

올해 9월 5일 미국 공영방송 PBS 뉴스가 최고위 경찰 간부 하나를 인용해서 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극우가 미국 내 최대 테러 위협을 제기했다.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시 총격 사건 당시 희생자 추모 집회 ⓒ이윤선

발명된 인종 개념

이슬람 혐오는 무슬림의 종교(이슬람)를 이유로 무슬림과 그들의 정치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말한다. 무슬림 혐오자들은 “난 무슬림에게는 악감정이 없어. 내가 싫어하는 건 이슬람이야” 하고 강조한다.

이것은 발뺌이다. 그는 종교 비판으로 자신의 치부(인종차별이라는)를 가리는 것이다.

그리고 흔히 이렇게 덧붙인다. “종교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인종은 바꿀 수 없어.”

이런 주장의 전제는 ‘인종’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의가 있고 그런 정의는 종교인을 분류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가정이다. 인종은 만들어지고 개발된 사회적 관념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관념은 새로운 집단이 인종으로 만들어짐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유동적인 것이다. 그렇게 인종으로 만들어진 집단은 어떤 벗어날 수 없는 공통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반동적인 세력들은 편리하면 언제든 인종과 종교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등치시킨다.

유대인 혐오도 그랬다. 유럽에서 유대인은 인종으로 만들어졌고, 이것은 결국 홀로코스트로까지 이어졌다.

서구에 사는 무슬림들의 대부분은 남아시아계이거나 아프리카계이거나 아랍계로, 오랫동안 인종차별의 주요 대상이 돼 온 사람들이다. 무슬림 혐오는 이 기존의 고약한 인종적 편견에다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을 덧붙인 인종차별이다. 특히, 모든 무슬림들을 ‘서구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로 취급하는 인종차별이다.

무슬림 혐오를 부추기는 자들은 유럽의 소위 ‘진보적’ 문화가 위협받고 있다며 혐오 선동을 해 왔다. 유럽의 ‘진보적’ 문화는 관용과 이성을 고취시키므로 소위 ‘광신적’이고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무슬림들의 문화와 정치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슬람 혐오는 기존의 인종적 편견에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까지 더한 인종차별이다 ⓒ노동자연대 자료

비이성적 혐오, 이성적 혐오 선동, 표현의 자유

그러나 무슬림 혐오야말로 비이성적이다. 두 달 전 영국 전역에서 일어난 폭동은 무슬림이 칼부림 사건을 일으켰다는 혐오적인 뜬소문이 확산되면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7월 29일 사우스포트 어린이 댄스 교실에 어떤 청년이 갑자기 들어와 어린이 세 명을 살해하고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힌 이상동기 범죄가 일어났다. 용의자는 기독교인이었는데도 난민 신청자인 무슬림이라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나치인 토미 로빈슨이 이 가짜뉴스를 근거로 삼아 무슬림 혐오 선동을 하기 시작했고, 그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무슬림 동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북부 로더럼 시에서는 200명의 난민이 머무르고 있는 여관 건물을 나치가 불태우려 했다. 영국의 이 극우 폭동으로 130명 이상이 부상을 입고, 1000명 이상이 체포됐다. 폭동이 일어나던 7일 동안 무슬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폭동 기간에 용의자가 무슬림도 아니고 난민 신청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진실은 극우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무슬림 혐오는 비이성적이지만 무슬림 혐오를 퍼뜨리는 자들 자신은 지극히 이성적인 자들이다. 대표 사례는 이성주의자를 자처하는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이다. 2013년 그는 “이슬람은 오늘날 세계 최대의 악의 세력”이라고 말했다. 이 일로 강연이 취소되자 그는 이렇게 발뺌했다. “나는 이슬람이 아닌 이슬람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즉, 이슬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가리켰던 것이다.”(이슬람과 이슬람주의를 예리하게 분리시키는 것의 난점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다루기로 한다.)

도킨스는 또한 2015년 12월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막겠다는 트럼프의 대선 공약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을 때 트럼프의 “표현의 자유”라며 그를 변호했다. 그리고 좌파를 비난했다. “좌파는 이슬람의 여성 혐오와 동성애자 혐오에는 눈을 감는다. 어리석게도 이슬람을 인종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트럼프의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웃기는 소리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이 국가의 방해나 보복을 받지 않고 의견과 사상을 표현할 권리”를 뜻하는 용어다. 트럼프는 무슬림과 난민, 이민자, 성소수자 등을 모욕하고 비하할 때 미국 정부나 법원의 방해나 보복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권력자인 그는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에 의해 온전히 보호받거니와 미국 대법원 판례도 혐오 발언을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수정 제1조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명시해 왔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는 방금 말했듯 바로 국가의 검열과 처벌을 받지 않을 권리다. 그렇다면 좌파는 트럼프 같은 자들, 더 일반적으로 극우와 파시스트의 무슬림 혐오 발언을 검열하고 처벌하라고 국가에 요구해야 할까? 또, 페이스북이나 구글, X 같은 플랫폼 대기업들에 혐오 표현 검열을 요구해야 할까?

그런 요구는 부메랑이 돼 좌파와 노동운동, 무슬림들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독일 국가가 이스라엘 비판을 유대인 혐오 표현으로 싸잡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또,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참가자들이 종종 외치는 구호,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도 여러 서구 나라에서는 불법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같은 자, 더 일반적으로 극우의 인종차별 표현을 막으려면 기존 국가에 기대기보다는 대규모 항의 운동에 의해 입 닥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무슬림들은 동성애 혐오주의자인가?

이제 이슬람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와 편견을 다루고자 한다. 첫째, 동성애 문제다.

먼저, 현실의 신앙인을 경전의 몇몇 구절로 멋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가 무슬림이든 그리스도인이든 유대인이든 말이다. 요즈음 그리스도교 측에서도 동성애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그리스도인은 보수 복음주의자들에 국한돼 있다. 가톨릭 교인과 온건 개신교인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식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입장을 완화하고 있다.

무슬림들도 태도가 바뀌고 있다. 2017년 7월 26일에 발표된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무슬림의 52퍼센트가 동성애를 사회가 용인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특히 1980년대나 90년대에 태어난 무슬림들은 60퍼센트가 그렇게 답변했다. 전체 응답자 평균 수치가 63퍼센트인 것에 비하면 무슬림 청년들은 전체 평균과 별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슬림 평균 수치인 52퍼센트는 2007년 27퍼센트에 비한다면 거의 갑절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동성애를 용인해야 한다고 답변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34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무슬림은 기독교인 다수보다 더 관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무함마드 자신은 동성애 관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진 않았다. 비록 동시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들을 탐탁치 않아 했지만 말이다. 동성애를 훨씬 부정적으로 취급한 것은 하디스이다. 하디스는 무함마드 가르침의 구전 전승인데, 몇 세기나 지나서 수집된 것이다.

필자가 무슬림은 성소수자 혐오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분명히 그렇고, 일부는 분명히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 요점은 무슬림들을 모종의 동질적인 단일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또한 무슬림들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도 다른 소수자 집단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그들도 관념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슬람 교리는 근래에 바뀌지 않았지만 무슬림들의 태도는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머리 스카프와 베일은 여성 차별의 상징인가?

둘째, 머리 스카프나 베일 문제다. 진보파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 여성의 머리 스카프나 베일을 두고 그들이 나이 많은 무슬림 남성들에게 몹시 예속돼 있다고 주장한다.

머리 스카프나 베일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머리 스카프나 베일을 착용한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현대적인 경우도 많이 있다. 그들 중 꽤 많은 여성들이 일부다처제에 반대하고, 가정 밖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는 가족 성원들에게 저항하고, 남녀 평등을 지지하고, 중매 결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머리 스카프도 이슬람 전통에 매이기보다 주변에서 유행하는 패션과 어울리게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안에 무슬림 여성들의 참가가 두드러진다. 이것이야말로 순종적 무슬림 여성 상像을 상징적으로 반박하는 것이겠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속 무슬림 여성들의 활약은 그들에 대한 편견을 명백히 반박한다 ⓒ이미진

자유주의자들과 다수 좌파는 서구 여성도 임금, 고용, 승진, 가정 폭력, 성폭력 등 많은 영역에서 차별과 천대를 받으며 살고 있다는 점을 돌아봐야 한다. 게다가 낙태를 제한하고 긴축 재정으로 노동계급 등 서민층 여성을 곤궁과 고생으로 몰아넣는 많은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예컨대 바이든, 트럼프, 윤석열, 이시바 시게루, 푸틴 같은 자들 말이다. 그래서 주로 그리스도인들이 문제처럼 보이지만, 인도 총리는 힌두교인, 시진핑은 자칭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주창자, 영불독 3국의 지도자들은 무종교인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관계없이 일반으로 서구/친서구 국가도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돕기보다는 더 힘들게 만드는 데 일조해 왔다.

그러므로 지난 십 년간 서구/친서구 나라들을 흔들어 온 여성 운동은 자유주의자들의 이중잣대를 폭로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여성 지위 지수가 최하위급인 한국의 여성 운동은 누구보다 더 강력히 자유주의자들의 위선을 폭로해야 한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있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말이다.

이슬람은 너그럽지 못하고 편협한가?

셋째, 이슬람은 너그럽지 못하고 편협하다는 오해와 편견이다. 그런 주장은 많이들 믿지만 실제로는 진실이 아니다. 우선, 보수적 종교성은 무슬림에게만 특유한 게 아니다. 어느 종교인에게나 있는 것이다. 보수적 종교성은 해당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가 아니라 그 종교 신자들이 사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조건들의 압도적 영향 때문이다. 중동·북아프리카인들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굴욕과 압제를 겪은 결과로 그들 나름의 고유한 종교성을 형성한 것이다.

가령 최초의 이슬람주의 운동인 무슬림형제단은 1882년 이집트에서 영국의 강점에 맞선 운동으로 시작했다. 그 운동의 핵심 지도자 하나는 이란계 물라 얌 알 딘 알 아프가니였는데, 그는 중동 사람들이 공통의 종교를 가졌으므로 무슬림으로서 단결하면 식민 지배자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에 세속적 민족주의자들의 정당 와프드Wafd가 제국주의자들과 배신적 타협을 해 영국의 꼭두각시인 정부를 세우자 무슬림형제단은 급성장했다.

20세기 후반부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에서 재연됐다. 나세르주의가 후기에 부패를 드러내자 이슬람주의가 떠올랐다.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가 떠오른 것도 세속 민족주의자들인 파타와 PLO가 이스라엘과 미국을 위해 부역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알제리의 이슬람구국전선 FIS의 성장도 알제리 NLF의 부패 문제로 설명된다.

물론 이 과정은 결코 자동적이지 않았다. 만일 혁명적 좌파가 존재해서 혁명적 상황을 제대로 이용했다면 그들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세력이 없었기에 저항과 반란은 전통에 의지하는 것으로, 특히 초기 전통을 불러내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 대안 부재 속에서 제국주의의 압제로 사회가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초기 이슬람 전통을 저항과 반란의 대의명분과 이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흔히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집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신민으로 분류했다. 가톨릭 수녀 출신 저술가 카렌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했다.

“오토만 제국은 상이한 신민 집단인 그리스도인, 유대인, 아랍인, 튀르키예인, 베르베르인 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 줬다. 그런 틀 안에서 이들 상이한 집단들은 자기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며 그 나름의 기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중세 말과 근대의 급변하는 정세 때문에 이런 체계가 완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세 그리스도교, 특히 이교도 말살을 자행한 스페인 교회보다 훨씬 관용적이지 않은가. 장 칼뱅의 개혁 교회가 지배한 제네바 기독교보다도 그렇고 말이다.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

넷째, 이슬람주의(정치적 이슬람) 문제다. 자유주의자들과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도킨스처럼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슬람은 좋으나 이슬람주의는 나쁘다. 즉, 이슬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이슬람주의가 특히 신정 국가를 강령으로 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방어하기를 꺼린다. 심지어 하마스를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우파’로, 파타를 포함한 세속주의자들을 ‘좌파’로 분류한다. 파타는 해방 운동 세력의 일부가 아니라 해방 운동을 파괴하려는 부역자들인데도 말이다.

20세기 초와 달리 오늘날 자유주의자들과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세속주의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세속주의는 첫째, 개인들에게 온전한 종교적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둘째, 국가와 교회(종교 단체)의 중립적 분리이다.

먼저, 종교적 자유에 대해 살펴보자. 오늘날의 (특히 프랑스) 세속주의자들은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개인이 공공 기관과 국영 시설에서 종교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완전히 바꿔 놓아 버렸다. 그래서 머리 스카프나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 ‘공화주의적’ 억압을 지지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극우에게 이로운 짓을 하고 있다.

둘째, 교회와 국가의 중립적 분리는 국가가 종교 일반이나 특정 종교 또는 특정 종파를 통제하거나 특혜를 베풀지 않는 것이며 종교나 종파도 국가에 기대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세속주의자들은 하마스나 헤즈볼라 비판을 하기 전에 먼저 서구의 국가와 교회가 흔히 오늘날에조차 통합돼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남부 유럽 나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영국과 독일도 각각 성공회와 루터회라는 국교회가 존재한다. 필자가 유럽 사회주의자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 문제를 중요한 이슈로 삼아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세속주의자들이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란 국가의 문제는 주로 신정 국가 문제가 아니라,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기구라는 점이 진정한 문제다. 이란 국가 기구가 북한이나 러시아, 중국 같은 국가 기구들보다 특별히 더 나쁜 것처럼 취급하는 것도 이중잣대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중요한 구분 하나를 해야 한다. 러시아, 북한, 중국은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국가들이다. 더구나 러시아와 중국은 제국주의 국가들이다. 하지만 그런 국가들을 지지하는 서구/친서구 나라의 활동가들은 그 국가들의 관리자들과 전혀 다른 처지에 있다. 서구/친서구 나라의 스탈린주의자들은 억압을 당하는 처지이다. 게다가 차별받는 사회운동의 일부이다. 그래서 우리 노동자연대 단체는 친북한 활동가들을 동지라고 부르며 그들에 대한 남한 국가의 탄압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이와 비슷하게,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이란 국가의 관리자들인 고위 물라들과 구별해야 한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지배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피지배자들이고 그것도 혹심한 박해나 억압을 받는 피지배자들이다. 반면 이란의 고위 물라들은 이란 자본가들의 친구들이며 그들 자신이 석유 등 국영 기업들을 지배하는 국가자본주의적 지배계급이다.

그러나 하마스나 헤즈볼라가 정당이고 그것도 대중 정당인 한 그들은 이슬람 교리보다는 핵심 지지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 핵심 지지자들은 훨씬 광범한 지지자들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 훨씬 광범한 지지자들 안에는 여성도 있고, 성소수자도 있다. 게다가 주변의 다른 종교 집단 및 종족과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므로 이들의 영향도 받는다.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변화에서 교리보다는 지지 대중이 훨씬 중요한 요인이라는 이런 대중 정당의 역학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지는 않고 교리의 프리즘으로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보는 것은 유물론이 아니라 관념론의 관점이다. 마르크스는 “사상이 무수히 많은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때, 그때 그것은 물질적 힘”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슬람주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보기보다는 그들을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부로 봐야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524~25년 독일 농민 전쟁을 돌아보면서, 토마스 뮌처가 이끄는 그 운동이 신정 국가(천년왕국)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가난하고 천대받는 농민들이 귀족 지주들에 맞서 싸운다는 점이 그들에게 정말로 중요했다. 그래서 엥겔스는 뮌처를 “혁명적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신정 국가 지향자라고 부르기보다는 말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정치 정당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그들의 정치에 초점을 맞춰야지, 그들의 신앙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신앙 내용은 신학자나 종교철학자에게 맡겨 두라. 한국에서도 1970년대와 80년대에 민중신학이라는 정치신학 운동이 활발했다. 당시에 비종교적 활동가들은 민중신학 계열 활동가들과 신앙 내용이나 교리를 놓고 논쟁하지 않았다. 정치 강령과 정치 전략·전술을 놓고 토론했다.

우리는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이상이 신정 국가이든 뭐든 간에 그들의 이상보다는 현재 그들의 처지와 저항에 공감한다. 그들도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계, ‘움마’ 같은 공동체를 꿈꾸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함께 싸우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미국 제국주의와 이스라엘 시온주의에 맞서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방어해야 한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물리치고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그들의 강령은 현실에 의해 일부 수정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맺으며

무슬림 혐오라는 신종 인종차별에 타협하지 않고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한 치도 타협하지 말고 무슬림들을 옹호하고 환대해야 한다.

혐오에 기회주의적으로 타협한 불행한 사례 하나를 들겠다.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 NPA 사례다. NPA가 이슬람 혐오 정당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많이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무슬림 여성이 머리 스카프나 베일을 착용하는 것은 성차별을 반대하는 여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들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 오해와 편견에 타협하던 중 NPA는 2010년 지방선거에 무슬림 여성 후보를 내보냈다. 아비뇽 지역의 후보로 나온 일함 무사이드는 머리 스카프를 착용했다가 우파는 물론이고 많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또 사회당과 공산당, 심지어 장뤽 멜랑숑 등 좌파로부터도 집중 포화를 받았다. 선거 기간과 그 후에도 NPA 당원의 절반이 머리 스카프를 반대하고 나머지 절반이 방어하는 상황이 여러 달 이어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무사이드와 여러 당원들이 연말에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시온주의와 서방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사람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혐오에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팔레스타인인들과 레바논인들의 저항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그들에게 연대하는 운동도 일관되게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난민과 ‘불법’ 이주노동자를 방어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