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전모 씨가 대변자연하며 둘러대도,
하마스 관련 긴급행동의 약점은 감출 수 없다

지난 11월 5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이 ‘노동자연대와 연대 불가’ 입장을 공개한 뒤 긴급행동의 전지윤 씨(이하 존칭 생략)는 긴급행동의 대변인을 자임하는 듯이 내 글(‘긴급행동 조직자들이 팔연사를 두려워하는 진정한 이유’)에 대한 반박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그는 내 반박을 비롯해 노동자연대가 제기한 반박을 대부분 회피하면서, 그저 노동자연대의 입장을 왜곡하고 모략을 지속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사회주의적 전술의 핵심 중 핵심인 공동전선이나, 마르크스주의의 피억압 민족 해방 지지 입장에 대해 무지한 말이나 늘어놓고 있다. 이미 10여 년 전에 사회주의 정치를 내팽개치고 ‘진보’ 포퓰리즘 정치를 받아들여, 결국 그 몇 년 뒤부터는 민주당 개혁파 지지 노선으로 나아간 인물이 마르크스주의의 언어를 차용하는 것을 보니 남우세스럽다.

그는 “긴급행동이 노연 측을 ‘두려워하는 진정한 이유’라니. 긴급행동 분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건설에 바빠 노연에는 별 관심도 없는데 뭘 ‘두려워’하나?” 하고 말한다. 하지만 이 논쟁이 벌어진 것은 “노동자연대에는 별 관심도 없다”는 긴급행동이 11월 5일 느닷없이 ‘노동자연대와 연대 불가’ 입장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연대 건설에 바쁘다”는 긴급행동이 바쁜 와중에 특별히 ‘전체회의’까지 소집해 노동자연대와의 연대 불가를 결정했다고 공표했다. 물론 긴급행동 소속 단체 중 겨우 10퍼센트도 안 되는 20개 남짓에다 거의 다 소그룹들이 참석해, ‘전체회의’는 참칭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지난해 10월 25일 노동자연대가 당시에 긴급행동 출범을 준비하던 핵심 단체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 공동 집회를 제안했을 때는 간단히 무시하더니, 1년이나 지나서 긴급행동은 (그동안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매진해 온) 노동자연대와 연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새삼스레 내놓았다. 그런 긴급행동이 노동자연대에 “별 관심이 없다”니. 이처럼 뻔한 거짓말로 사태를 호도하려 하는 게 전지윤 특유의 부정직함이다.

그런데 긴급행동 조직자들이 새삼스레 노동자연대에 적대적 “관심”을 보인 것과 그들이 “연대 건설에 바쁜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로 노동자연대와 함께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하 팔연사)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아랍인 일부를 자신들 쪽으로 빼내어 가려는 분열적 행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치한 목적은 긴급행동이 ‘노동자연대와 연대 불가’ 입장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팔연사 내의 다른 단위들과의 협력에는 열려 있음”이라고 말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긴급행동 조직자들의 이런 책략은 너무 빤히 보이는 것이어서 팔연사 소속 팔레스타인인·아랍인들이 즉각 긴급행동을 질타하고 나섰다. 노동자연대와 팔레스타인인·아랍인들이 주축이 된 팔연사가 애써 일군 운동을 “하이재킹”하려 한다고 항의한 것이다. 여러 팔레스타인인·아랍인들이 그런 분열주의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비판을 했다.

“문제의식을 키우고 운동을 성장시키는 대신, 당신들은 비방에 나서며 운동을 훼손시키고 있다.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염려한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데에 더 노력을 기울이고 현재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주목했을 것이다.”

“인종 학살이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지금, 이런 발표를 하는 것이 정말 적절합니까? 이것이 우선순위입니까?”

“이 사람들[긴급행동]의 목적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위한 시위에서 자신들의 사상이 지지받는 것이다.”

“저를 정말로 놀라게 만든 것은, 그나마 당신들이 활동하겠다고 선택한 대학교들이 우리가 이미 활동하던 대학교(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등등)라는 것이에요. 당신들은 새로운 대학교로 가서 운동을 확산시키는 게 아니라 똑같은 대학교로 왔어요. 이것이야말로 제 말을 핵심적으로 증명하는 겁니다. 바로 당신들이 운동을 가로채려 한다는 것 말이에요.”

이런 비판들에 맞서 전지윤은 “한국 상황을 잘 모르는 아랍인이나 외국인 분들” 운운했다. 내가 이를 비판하자 그는 내 측의 단순한 왜곡인 양 취급했다. 그러면서 반박이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분들을 존중하기에 ‘노연의 지독한 성폭력 피해자 괴롭힘을 잘 모르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노연을 편드는 아랍인과 외국인 유학생분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그런다고 믿고 싶지 않다.” 팔레스타인인·아랍인들을 “존중”한다면서도 여전히 팔레스타인인·아랍인들이 “잘 모르시고,” “알면서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팔레스타인인·아랍인들은 “잘 모르면서” 긴급행동을 통박하고 나섰거나, 노동자연대에 속아서 노동자연대를 편들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팔레스타인인·아랍인들의 상황 파악 능력을 무시하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존중”이라는 그의 말은 위선적인 빈말일 뿐이다.

긴급행동과 팔연사의 차이는 하마스 지지 여부

전지윤은 이번 글에서도 긴급행동과 팔연사의 진정한 차이가 하마스와 그들의 무장 저항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했다. 단지 노동자연대의 “우기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연과 같이하는 단체나 개인도 하마스에 대한 입장은 다 다르다”고 주장했다. 긴급행동에도, 팔연사에도 다양한 단체나 개인이 참가하고 있으니 팔연사와 긴급행동 사이의 핵심 차이가 하마스에 대한 견해 차이라는 것은 허구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잘 알고 있겠지만, 연세대·고려대에서 긴급행동 계열 학생 회원들은 이슬람과 이슬람주의에 관한 편견과 오해에 기반해, 팔레스타인 관련 요구도 아닌 것들을 끌어와 다른 단체나 개인들과 스스로 준별되려 애썼다. 그들은 그 학교 팔레스타인 연대 모임의 기본 입장으로 ‘성차별, 젠더차별, 장애인차별, 기후위기 반대’ 등을 욱여넣으려다가 다른 학생들(특히 팔레스타인인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별도로 단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긴급행동 소속 단체의 학생 회원들이 이런 분열적 행태를 벌이고 있는 문제점부터 고치자고 긴급행동 측에 제안하고 나서야 비로소 전지윤은 “다양한 노선과 입장”을 운운해야 할 것이다.

팔연사도 가입, 집회 참가 등에 조건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릇 연대체는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공동의 요구와 기조, 주요 구호, 연사 선정 등을 하고, 그때그때의 주요 쟁점들을 놓고 연대체의 입장을 정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팔연사 집회 연단에서 시온주의를 비판하는 대신에 유대인 혐오 주장을 할 사람을 연단에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바로 얼마 전 긴급행동 조직자들은 ‘노동자연대와 연대 불가’ 입장을 긴급행동의 공식 입장으로 통과시키며 연대 대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지 않았던가.

팔연사와 긴급행동은 각자 초기부터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대한 연대체의 입장을 정해 왔다. 팔연사를 세운 초동 단체와 개인들은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직후에 곧장 집회를 열고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저항을 옹호했다. 그리고 줄곧 팔연사는 이스라엘과 서방 정부·언론이 펴는 하마스에 대한 거짓 프로파간다를 비판했다. 그 후로도 팔연사는 집회 연단을 통해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저항의 의의를 강조하고, 신와르 등 하마스 지도자들의 피살을 애도하는 등 하마스 지지 입장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집회 조직자들의 이런 경향은 집회 참가자의 구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팔연사 집회에서는 ‘국제 사회’에 대한 기대 등의 발언이 연단에서 나오면 집회 참가자들의 호응이 확연히 떨어지는 게 보일 정도이다.

반면, 긴급행동의 조직자들은 이스라엘과 서방의 프로파간다가 거짓으로 밝혀지고, 이스라엘이 인종학살을 위해 무지막한 폭격으로 병원까지 공격하고 더한층의 학살을 위해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고, 그래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게 된 후로도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장 저항에 나설 권리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리고 그저 이스라엘의 공격만 규탄한다는 입장을 택했다. 내가 이전 글에서 긴급행동 조직자들의 입장을 지적한 것도 그들이 긴급행동 자체의 입장을 정하는 데서 어떤 방향을 제시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긴급행동이 그동안 어떤 노선을 취했는지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아예 하마스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긴급행동은 유지했다. 여러 차례 발표된 긴급행동의 성명서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대해 말했지만, 무장 저항에 대해서는 한사코 언급하지 않았다. 긴급행동 내에서도 일부는 하마스의 무장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듯하지만, 토론회 등을 통해 이런 입장을 무마하거나 금하면서 하마스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고수해 온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투입돼 가자지구 전체를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이리저리 내몰면서 인종 학살을 자행하는 와중에도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저항을 지지하지 않는 기회주의적 회피를 해 온 것이다.

물론 긴급행동의 조직자들 중에서도 팔레스타인평화연대처럼 하마스와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 공정한 견해를 취하려는 단체도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피스모모 같은 평화주의 단체들과 논쟁한 것을 보면 이 점이 드러난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인들과 교류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정서에 공감하는 바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평화연대도 참여연대를 비롯한 주류적 경향의 단체들과 연합을 유지하는 데에 연연하면서, 자신들이 가졌던 강점을 잃어버리고 뒤늦게 후회하는 처지에 놓인 듯하다.

무장 저항 비판에 열중하는 것은 ‘무조건적 지지’ 아니다

나는 전지윤이 “일찍이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을 비난하고, 10월 7일 공격을 지지한 사람들(특히 노동자연대)과의 차이점 긋기에 골몰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그가 쓴 글들과 그의 발언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제시한 증거들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내놓지 않은 채, “노연은 하마스에 대해 내가 하지도 않은 말까지 지어”냈다는 둥, “하마스에 대한 내 입장을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왜곡”했다는 둥 하며 특유의 둘러대기를 한다.

게다가 슬쩍 자신도 “하마스의 민족 해방 투쟁을 무조건 지지한다”고 덧붙여, 자신의 입장과 노동자연대의 입장이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정말 내가 그의 편집권 아래서 일할 때 가끔 갸우뚱했던 그의 부정직한 말 바꾸기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노연 자신도 하마스를 방어하면서도 동시에 하마스의 지나친 무장 투쟁 의존, 아랍정권에 대한 기대 등을 비판해 왔다. 내가 하면 좌파적 비판, 남이 하면 이슬람포비아인가?” 하며 자신이 하마스를 비판한 게 뭐가 문제냐 하고 나왔다.

그러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한 비판적 지지에서 기본은 (비판이 아니라) 지지다. 노동자연대와 팔연사 초동주체들은 하마스가 시온주의자들을 선제공격했을 때 “서슴없이, 거리낌 없이, 어정쩡하지 않고 온전히” 지지했다. 이후로도 우리네의 입장은 일관됐다.

하마스의 선제 공격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직면한 현실의 필요와 동떨어진 게 아니었다(전지윤의 생각과 다르게 말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갈수록 인종청소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스라엘 국가와 증대하는 식민 정착자들의 폭력에 직면해 무장 저항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10월 7일 공격에 하마스 외에 여러 저항 세력이 함께 가담한 것이나, 하마스가 작전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떠밀려 나아갔다는 사실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인들과 분리돼 있기는커녕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좇아야 하는 처지임을 보여 줬다.

반면, 전지윤과 긴급행동 조직자들은 10월 7일 선제 공격은 물론이고 이후의 하마스·팔레스타인인 저항도 “서슴없이, 거리낌 없이, 어정쩡하지 않고 온전히” 지지하지 않았다. 줄곧 그랬다.

특히 전지윤은 하마스를 나머지 팔레스타인인들과 애써 분리시키면서 팔레스타인 연대가 하마스 지지가 아님을 강조해 왔다. 특히, “비밀스럽게 무장 투쟁을 계획하고 지휘하는 소수의 엘리트 간부들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며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을 수동적 지지자로 만드는” 문제를 말하는데, 이는 테러리스트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 타리크 알리가 지적하듯이, 하마스는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그들의 무장 저항은 테러리즘이 아니라 전쟁 행위다.

하마스 전투와 테러리즘도 구분하지 못해 10월 7일 공격이 “민간인까지 희생시킨 유혈 투쟁,” “민간인을 학살하는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는 방향으로 가는 것” 등의 비난을 지속했던 것이다. 더 어쭙잖게도 그는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은 팔레스타인 저항의 대의와 도덕적 정당성에 훼손을 가했다”고도 비난했다.

피억압 민족의 반제국주의 해방 운동들은 예외 없이 무장 투쟁을 벌여 왔다. 지금은 서방과 이스라엘의 부역자로 전락한 파타도 초기에는 치열하게 무장 투쟁을 벌였었다. 이에 대해 ‘무장 투쟁 방법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걸 과연 지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하마스의 무장 투쟁만 비판하는 것이라면 이는 이슬람주의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다. 실제로 전지윤은 “하마스가 기반한 이슬람주의의 종교적 보수성” 운운하며 이슬람과 이슬람주의에 관한 편견과 오해도 드러냈다.

결국 하마스의 무장 투쟁을 비난하면서도 “하마스의 민족 해방 투쟁을 무조건 지지한다”는 전지윤의 주장은 순전히 기만이다. 이번 가자 전쟁에서 핵심적(사실상 유일한) 저항 수단이 된 하마스의 무장 투쟁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마스의 무장 투쟁을 비판하는데, 그렇다면 전지윤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대안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지만, 질베르 아슈카르의 입장을 많이 참고하는 듯하다. 아슈카르는 10월 7일 하마스 무장 투쟁의 의의를 폄하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비폭력 저항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폭력이라니, 인티파다가 폭력적 저항을 포함하지 않았던가? (제1차 인티파다조차도 말이다.)

‘무조건적 지지’라면, 하마스든 다른 팔레스타인인이든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이스라엘 국가와 식민 정착자들에게 맞서든 그 저항을 지지하고, 설령 그들이 우리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지지하는 것이다.

물론 하마스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밖에 없는 대목들이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은 동지적이어야 하고 건설적이어야 한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긴급행동은 (하마스를) 비판하지도 않았지만 지지하지도 않았다. 전지윤은 지지하지 않고 비판만 했다. 물론 그는 이스라엘은 비판했지만 그것이 하마스를 지지한 것이라고 둘러대서는 안 된다. 분명히 그는 노동자연대가 하마스의 공격에 환호하고 하마스 공격 직후 집회에서 ‘팔레스타인 저항 정당하다’는 구호를 외치자, 박노자 교수와 함께 노동자연대를 비난했다.(지난번 내 글에서 증빙했다.)

한편, 전지윤은 내가 ‘신와르의 유언장’을 우호적으로 인용하자, ‘그게 가짜문서라는 것을 모르냐’고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나눔문화가 번역해 소개한 그 문서는 영국의 언론인이자 유명한 전쟁저지연합 활동가인 로런 부스가 “가자의 협상팀”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로런 부스는 토니 블레어의 처제이면서도 블레어의 전쟁을 반대해서 유명해진 인물이다. 또, 2008년 가자지구를 방문해 하니예 이스마엘로부터 VIP 여권을 받았고, 이슬람에 입교했다. 가자의 협상팀에게서 문서를 받았다는 로런 부스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볼 근거는 무엇인가? 전지윤에게는 ‘10월 7일 공격이 크나큰 재앙’이고, ‘신와르는 10·7에 대해 후회했다’는 자기 주장의 정당성이 높아진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터무니없는 ‘반박’을 하는 것일 것이다.

“신와르가 10·7에 대해 후회했다”는 전지윤의 주장은 또다시 그 특유의 곡해를 보여 준다. 신와르가 했다는 말 한마디를 따와 신와르가 10·7 공격에 대해 후회했다고 우기는 것이다. 전지윤은 신와르가 “사태가 통제를 벗어났”고 “사람들이 여기에 휘말렸고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인용하는데, 신와르가 설사 이 말을 했다 해도 이는 민간인 희생에 대한 그의 유감 표명은 될지언정 10월 7일 공격(‘알 아크사 홍수 작전’) 자체에 대한 “후회”라고 할 수는 전혀 없는 것이다. 게다가 CNN조차 신와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식으로 전지윤은 남의 말 한두 마디를 맥락과 상관없이 톡 떼다가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며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으려 해서, 이미 노동자연대 시절에도 회원들과 기자들의 원성을 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것일까.

신와르의 전체 삶과 그의 언행을 볼 때, 내가 ‘신와르의 유언장’을 인용해 전지윤을 비판하고 하마스의 공격을 옹호한 의의는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알 아크사 홍수 작전’의 정치적 의의는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아랍 전역에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지윤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신와르 유언장’을 거짓으로 단정짓는 것 자체가, 그가 하마스와 하마스의 무장 투쟁을 ‘무조건적 지지’ 하지 않는다는 점,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들을 애써 분리하려 해 팔레스타인인과 아랍인들의 저항 정서와 완전히 괴리돼 있다는 점을 보여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