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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논란:
대기업 노동자의 양보는 진정한 대안이 아니다

지난 10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국회 본회의 정당대표 연설에서 "사회적 연대 방안"을 발표했다. 이 연설의 핵심 내용은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해 양극화 해소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 마련이나 양극화 해소를 위해 부자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민주노동당의 주장은 다른 주류 정당들의 대안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더 내고 덜 받는'개악안을 3년 전부터 고수하고 있다. '말쑥해진 치와와'유시민은 조삼모사 식으로 일부 노인들에게 8만 원씩 쥐어주는 대신 연금 급여를 열린우리당 안보다 더 낮추자고 한다.

한나라당은 한술 더 떠, 기초연금을 신설하는 대신 국민연금 급여를 현재의 3분의 1로 대폭 인하하자고 한다. 보험료를 7퍼센트로 낮추자고 하지만, 민주노동당과는 정반대로 기업주들과 부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런 것이다.

두 주류 정당은 개악의 폭과 속도 차이가 있을 뿐 노동자들의 노후 생계를 내팽개치려 한다는 점에는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주류 정당들이 민주노동당의 방안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는 우려 때문이었는지 권 의원은 "고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세도 인상"하고 "고소득 노동자들의 국민연금을 줄여 저소득층 국민연금 보험료 절반을 지원"하는 등 노동자들의 양보도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기존의 개혁안에서 후퇴해 노동자들의 양보를 제안하는 것은 주류 정당들과의 분명한 차이를 다소 좁히는 아쉬운 일이다.

이번에 권 의원이 제시한 '고임금 노동자 양보'제안은 진보정치연구소가 지난 10월에 발표한 '소득·임금 측면에서 노동계급 연대전략의 모색'에서 내린 결론과 궤를 같이한다.

진보정치연구소 장석준 연구원은 이미 지난 6월 27일 〈레디앙〉에 기고한 칼럼에서 민주노동당의 중요 과제로 노동자 당원들이 앞장서서 "단기적으로는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손해가 될 수도 있는 요구안을 외치도록 만드는 것"을 꼽았다. "숙련도와 성과에 따른 보상을 획득해 특정 노동자 집단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경향"은 '분파주의'이고 "대기업 노동자들의 양보를 통해"전체 노동계급 내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이 '평등주의'라는 것이다('소득·임금 측면에서 노동계급 연대전략의 모색').

그러나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는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을 저해하는 '분파주의'가 아니다. 물론 민주노조라는 무기와 방패가 있는 대기업 노동자들의 조건이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더 나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이로부터 내려야 하는 실천적 결론은 대기업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해 함께 싸우며 '상향평준화'를 추구하도록 고무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작 기업주들과 정부는 양보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는데 먼저 나서서 대기업 노동자들의 쌈짓돈을 털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건네라는 '하향평준화'정책을 제안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 개악안, 노사관계로드맵 등으로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때 이런 '양보'를 제안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사기만 떨어뜨릴 뿐이다.

국민연금

지난 9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현애자 의원이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도 이전의 민주노동당 선거 공약에 비해 명백히 후퇴한 것이다. 현재 보험료와 수급액으로는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기금 고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과 열우당의 국민연금 개악 시도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논리는 '기금 고갈론'이다. 40년 뒤에! 기금이 고갈될 것에 대비해 보험료를 올리고 수급액을 낮추자는 것이다.

하지만 3년 만에 와해되고 있는 열우당을 '100년 가는 정당'이라고 말한 정치인들이나 IMF 경제 통치를 코앞에 두고도 안심하라던 경제학자들의 '기금 고갈론'에 휘둘려, '더 내고 덜 받는'조처를 불가피하다고 여겨선 안 된다.

원래, 적립된 '기금'은 경제 상황의 변동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계획되기는커녕 무계획적 경쟁에 의존하는 시장 경제 체제에서 수십 년 뒤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려 하는 것은 경제 이론이 아니라 역사철학일 뿐이다.

40년 사이에 공황이 닥칠 수도 있고, 그리 되면 아무리 보험료를 올려도 연금 기금은 파탄나기 십상이다. 거꾸로 앞으로 20년 동안은 적립 기금이 국가 예산의 몇 배로 불어날 가능성도 크다. 무엇보다 개정안도 결국 2070년 재정 고갈을 전제로 한 개정안일 뿐이다.

요점은 현재의 연금 제도는 정부의 과장·허위 광고와는 달리 근본적인 재정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기가 받을 연금은 자기가 적립하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라는 시장 논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적립식'과 '부과식'으로 나뉘는 연금 제도의 근본적 차이다. 그리고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유럽의 개량주의 정당들이 기존의 부과식 연금 체계를 적립식 연금 체계로 바꾸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단지 개악에 반대할 뿐 아니라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를 '용돈'을 뛰어넘는 진정한 복지 제도로 개혁하려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연금 제도를 부과식으로 바꾸라고 해야 한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공약처럼 부유세 등 부자들에 대한 직접세 증세와 정부 투자를 통해 실현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지배계급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이런 대안들을 모두 부정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해 왔고 노무현은 그 최근 주자로서 사력을 다해 뛰고 있다는 점이다.

당내 일부는 대기업 노동자 양보라는 '미끼'를 던져서 노무현 정부와 주류 정당들에게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저들은 '조직 노동자들의 양보'에 감동하기는커녕 '물에 빠진 사람이 보따리도 내놓으라고'할 공산이 크다. 악마에게 한 손가락을 내밀면 곧 몸 전체를 요구하는 법이다.

민주노동당은 더 '현실적인'입법안이나 '양보'를 내놓으려 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할 강력한 대중 투쟁을 고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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