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용의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 서평:
새로 운동에 참가한 청년들이 출발점 삼을 듯한 책
〈노동자 연대〉 구독
윤석열의 12월 3일 쿠데타가 만든 파장은 국회 탄핵안 가결과 윤석열 체포로 종식되기는커녕 거리 극우의 성장과 서부지법 폭동 등으로 지속·발전하고 있다. 한국 정치 위기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하다.
여의도에 응원봉 수십만이 집결했던 “빛의 혁명”에 동참해 대중 운동의 희망을 엿보았지만, 다른 한편 계속되는 “반혁명”(반동) 기도에 위기감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이 신간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박구용 교수는 최근까지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을 지냈다.
저자는 “개인 윤석열의 심리나 가족 관계”에 주목하기보다는 철학자로서 “이 정부의 모세혈관 속에 흐르는 ... 왜곡된 언어나 왜곡된 개념,” 즉 윤석열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파헤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가령 윤석열이 입만 열면 부르짖는 “자유” 또는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이 없고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오직 자기 자신과 극우 유튜브만 이해하고 동의하는 편 가르기용이자 폭력적 통치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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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윤석열이 끊임없이 강조해 온 “법치주의”는 법률주의로 왜곡된 폭력적 통치이다. 법률주의 또는 법실증주의는 “실정법이 정치적·사회적 요소에 의해 민주주의를 억압하거나 혹은 법 집행 과정과 절차가 민주주의를 교란하는 경우”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법률주의는 “언제나 현실 권력을 긍정하고 추종한다.”
저자는 이번 윤석열의 쿠데타가 단순 내란이 아니라 파시즘·전체주의적인 반혁명의 성격이 있다고 분석하면서, 쿠데타 같은 일이 다시 없을 것처럼 여기는 건 옳지 않다고 경계심을 촉구한다.
저자는 그런 퇴행을 막을 힘은 “빛의 혁명”을 이끈 젊은 청년들에게 있다며 시민 운동을 고무한다.
최근 저자가 한 유튜브 방송에서 서부지법 폭동에 참가한 극우 청년들에 대해, 그들은 설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고립시켜 소수가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맥락이었다. 극우는 대화 대상이 아닌 투쟁 대상이고, 극우 운동에 맞서 “빛의 혁명”이 압도적으로 큰 힘을 보여 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오세훈 등 국민의힘과 극우들은 저자의 그 말이 서부지법 난동자들이 아닌 2030 청년 전체를 겨냥한 말인 양 왜곡하고 “말라비틀어지게 하자”는 발언만 따서 반발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반박하지는 않고 오히려 우파가 일으킨 논란의 압력에 밀려 저자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직에서 사임하도록(형식은 자진 사임이었지만) 했다.
최근 이재명 대표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면서 온건 보수층을 포섭하려고 우클릭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악의 평범성
그런데 저자는 극우를 “고뇌와 사유를 하지 못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뒤처지는 퇴행”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극우가 왜 하필 최근에 급성장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이는 저자가 책에서 윤석열의 반동을 설명하면서 제시하는 “파시즘” 또는 “전체주의”의 개념을 거의 전적으로 이데올로기(관념)로만 정의한 것과 연관이 있다.
저자는 특히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가져온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관리한 아이히만에 대해 분석하며, 실정법과 권력가의 명령에 충실한 소시민이 양심과 사고 능력을 잃으면(“무사유”) 극도로 악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사유는 단순한 ‘생각 없음’이 아닙니다. ... 이익 계산에 혈안이 된 도구적 이성의 활동이 무사유입니다.”
윤석열은 무사유가 낳은 “새로운, 하지만 아주 오래된 악마”다. “정부 여당이 총선에서 무참히 패배했다면 ‘내가 잘못해서 총선에 패배했구나, 국정 수행을 잘못했구나, 국정 기조를 바꿔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렇게 아주 단순한 메타인지 능력도 그[윤석열]에게는 없었습니다. ‘나는 잘했는데 언론이 문제야. 나는 완벽한데 종북 언론과 야당이 우리 정부를 파괴하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정치적 악에 맞서 평범한 대중 모두가 비판적 사유를 기르려 애쓰고, 권력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에 참여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활동가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개념이다.
그러나 아렌트의 개념은 전체주의를 과학적으로 규명하지 못하는 비역사적 관점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받는다. 즉, ‘악의 평범성’이 작용한다고 해도, 전체주의가 어떤 특정한 시기에는 부상하고, 또 어떤 시기에는 그렇지 않은지(즉, 대중의 비판적 사유가 언제 마비되는지, 왜 그런지, 사람들 사이에 차이는 왜 생기는지) 규명하지 못한다.
저자도 “우리는 무감각과 싸워야 한다”(7장 제목)고만 말한다.
이 때문에 저자의 현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안은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반동적인 것이든 진보적인 것이든 어떤 관념에는 그것이 뿌리를 두고 있는 물질적 토대가 있다.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는 심각한 불황과 지정학적 긴장의 심화로 지배계급이 위기를 겪는 가운데, 지배계급 전체의 지지를 받아 행정부 권력을 쥐고도 정치적 위기를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 끝에 꺼내든 칼이었다.
윤석열을 방어하고 있는 우파의 핵심에 극우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극우의 부상이 세계적 현상인 것을 봐도 지금의 정치적 위기는 단지 어느 나라 정부나 권력자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세계 체제의 위기라는 더 깊은 요인에서 분석이 시작돼야 한다.
또, 윤석열이 비상계엄 포고령에서 밝혔듯, 쿠데타 공격의 칼끝은 공식 정치 내의 야당뿐 아니라, 좌파와 노동자 운동도 향하고 있었다.
지금 부상하고 있는 극우 운동 이면에는 이해당사자인 지배계급 부분도 있지만, 불황이나 실업 등 체제의 위기로 고통받으면서도 조직된 노동계급처럼 싸울 힘은 없는 실업자와 중간계급 배경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집단적 힘이 없기 때문에, 경찰 등 국가와 맞서는 듯할 때조차 고통스런 현실의 책임을 좌파, 이주민, 성소수자 등에 돌리며 희생양을 찾는다.
저자 박 교수의 분석에는 이러한 계급 분석이 빠져 있다.
이 사회의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하고, 지금의 정치 위기의 배경에는 그 체제의 위기를 (약속과 달리) 해결하지 못한 지배계급의 실패가 있다.
지금 극우 운동에 이끌린 청년들의 경우, 지난 박근혜 퇴진 이후 “촛불 개혁 정부”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하에서 겪은 배신과 위선에 환멸과 불신을 느낀 경우가 많다. 오른쪽이 아닌 좌파적인 대안이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더 많은 청년들이 우파 쪽으로 이끌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오른쪽 날개
그런데 이 문제에서 저자는 정반대의 방향을 제시한다. 내란 종식의 최종 단계를 ‘민주 진영’으로의 정권 이양으로 규정하면서, 전제 정치의 재현을 막고 민주당이 안정적으로 집권하려면 왼쪽뿐 아니라(저자는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현 민주당이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본다) 오른쪽에도 넓은 날개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 진영의 정권 창출과 더 나은 정치를 위해서는 빠르게 우측 날개가 복원되어야 합니다. 나는 민주당의 우측 날개에 자유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가 자라나길 바랍니다.”
이것이 저자가 책 후반부에서 “혐오의 정치를 넘어 우정의 정치로”를 강조하는 맥락이다.
그러나 이는 “빛의 혁명”을 완수하는 길이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 등 차별받는 대중의 실망과 극우 운동의 반사이익 수혜로 다시 이어지는 위험한 길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온건한 대안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번 운동에 새롭게 참가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청년들이 탐독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