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정치 위기에 대응해 대량 탄압하고 있는 에르도안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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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이른 아침 튀르키예 경찰은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펴 쿠르드인 활동가들과 좌파 활동가들 52명을 구속시켰다. 10개 주에 걸쳐 일제히 시행된 일련의 체포 작전으로 많은 언론인·예술가·정치인이 연행됐고, 이들의 변호인 접견이 차단됐다. 2월 14일 이래로 300명 넘게 연행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탄압의 추가 표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2월 18일 체포 작전은 민중민주회의(HDK)에 대한 수사의 결과다. HDK는 쿠르드 독립 운동과 튀르키예 국가가 평화 협상을 하던 중인 2011년에 출범했다.(현 대통령 레지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AKP) 정부가 당시에도 튀르키예 국가를 이끌었다.)
HDK는 친(親)쿠르드 정당 인민민주당(HDP)을 포함한 좌파 정당들과 민주주의 정당들의 연합체로, 많은 사회주의적 좌파 활동가와 언론인, 인권 운동가, 쿠르드인 활동가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HDK의 핵심 목표는 모든 민족들의 평화·민주주의·자유에 힘쓰고, 그런 사상을 사회에 널리 알리는 것이다. 평화 프로세스는 결렬됐지만 HDK는 여전히 활동 중이다. HDK의 활동은 모두 평화적이었고 이전까지 그 무엇으로도 기소된 적이 없었다. 처음 체포된 사람들 중에는 노동자연대의 튀르키예 자매 단체인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DSİP)’ 공동 대표 셰놀 카라카슈도 있는데, 그는 HDK 소속이 아님에도 체포됐다.
튀르키예 민주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해외 단체들의 연대체인 ‘튀르키예 민중과 연대를’(SPoT)은 이렇게 밝혔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언론인들도 탄압 대상이 됐다. 섬유피복통합노조 위원장 메흐메트 튀르크멘은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마땅한 기본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정부는 안테프시(市)에서 파업과 시위를 금지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는 여당 정치인들과 연관 있는 공장 두 곳에서 노동쟁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언론인들도 부패와 정부의 악행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정당 지도자들, 예술가들, 활동가들도 에르도안의 통치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끌려갔다. 몇몇 사람들은 10년 전, 15년 전, 심지어 20년 전에 벌어진 사건을 이유로 기소당하고 있다.”
이번 탄압 물결은 정부 지지율 하락에 대한 에르도안의 대응이다. 여당인 AKP의 득표가 줄고 야당인 공화국민당(CHP)의 득표가 늘고 있다. CHP는 조기 대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회에 만연한 분노가 경제 상황 때문에 커지고 있다. 공식 물가 상승률이 42퍼센트가 넘는다. 시리아 상황, 팔레스타인 상황, 이란과의 전쟁 가능성 등 국외 문제도 모두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AKP와 파시스트 정당인 민족주의행동당(MHP)의 연정인 현 정부는 민주주의 세력들을 분쇄해 통제력을 유지하려 한다. 이번 탄압은 에르도안의 위세가 아니라 취약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DSİP는 성명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번 같은 새벽 체포 작전은 다른 반민주적 조처들의 신호탄임을 우리는 거듭 경험했다. 우리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구금자는 즉시 석방돼야 한다.
“평화, 민족들의 진정한 평등, 민주주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이번 탄압은 사회 전체를 위축시키려는 정책의 일환이다. 우리는 계속 단결하고, 연대를 강화하고, 평화 요구를 범죄시하려 드는 탄압 정책에 맞서 투쟁을 건설할 것이다.”
튀르키예 정부의 이번 대규모 체포 사태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은 튀르키예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불확실성이 크다. 더욱이 지정학적 상황은 지배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위기감을 낳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도 위기에 직면한 집권당이 통제력 확보를 위해 장차 억압적 조처를 강화하며 사회 전체를 위축시키려 들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가 바로 그런 시도였다. 윤석열은 “반국가 세력에 대한 항전” 운운하며 “중국·북한과 연계된 반국가 세력” 척결을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았다.
정부는 쿠데타뿐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는 등 공안 탄압으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실제로 검찰은 윤석열 탄핵 찬성 운동이 한창인 1월 31일에조차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공안 탄압을 해 정국 ‘안정’을 꾀하는 데서는 역대 모든 정부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첨예하게 양극화한 현 정치 지형은 (민주당과 온건 좌파의 기대와 달리)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실시되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정치 위기 속에서 국가는 (집권당이 누가 되든) 공안 탄압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좌파는 튀르키예를 보며 민주주의적 권리 방어가 중요함을 스스로 각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