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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평 〈소년의 시간〉:
성차별적 폭력의 실체를 고민하게 하는 드라마

심화되는 자본주의 위기는 극우 정치와 성차별주의를 더욱 고무하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최근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온,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시의적인 쟁점을 예술적으로 참 잘 다뤘다.

총 4화에 전체 분량은 3시간 40분 정도 된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1화는 “첫째 날”로, 13세 소년 제이미를 체포하기 위한 경찰 기동대의 급습으로 시작한다.

제이미가 지난밤 살해된 동급생 케이티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체포되고 경찰서로 압송돼 입감 절차(지문 채취, 머그샷 촬영, 알몸 수색 등)와 심문 진행까지 60여 분을 편집 하나 없이 그대로 길게 찍어서(롱 테이크) 보여 준다.

2, 3, 4화도 러닝 타임 내내 단 한 번도 장면을 끊지 않고 롱 테이크로 보여 주는 덕분에 우리는 마치 실시간으로 인물들과 함께 있는 듯하다. 상황이 주는 압박감도 잘 전달된다.

2화는 “셋째 날”로, 제이미와 케이티의 학교를 보여 준다.

켄 로치 감독의 〈케스〉(1969) 이후, 영국 공립학교의 실상을 가장 생생하게 묘사한 것 같다. 정부 지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교사들은 과부하에 걸려서 아슬아슬 위태롭게 굴러가는 학교를, 탐문 수사 나간 형사조차 “가축우리” 같다며 괴로워한다. 실제로 형사 역을 연기한 배우 애슐리 월터스는 대본을 연습하면서 “거의 매일 밤 울었다”고 한다.

3화는 “7개월 뒤”로, 임상심리사가 제이미와 상담하는 시간이다.

임상심리사는 수감된 제이미의 심리를 평가해서 재판부에 보고해야 하는데, 제이미는 이를 잔뜩 경계하고, 둘 사이의 긴장감이 점점 고조된다.

2, 3화에서 낯선 용어들과 이름을 들을 것이다. “매노스피어,” “빨간 알약,” “80-20법칙,” “인셀,” “앤드류 테이트,” “진실 그룹” 등.

“매노스피어”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말한다. “빨간 알약”은 원래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온 기발한 은유인데, 성차별적 음모론으로 왜곡돼 통용된다.

“80-20법칙”도 비슷하다. 여성의 80퍼센트는 남성의 20퍼센트에게 끌리기 마련이고, 따라서 나머지 남성은 여성을 속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결코 여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4화는 “13개월 뒤”로, 제이미 아버지의 생일날이다.

가장 보기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회차일 것이다. 아버지 역을 연기한 배우 스티븐 그레이엄은 (공동으로) 각본도 썼다. 그는 소년들이 소녀들을 상대로 벌이는 폭력 사건들의 원인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이런 폭력을 개인의 결함이나 본성, 부모의 책임이나 가정의 잘못으로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우리는 어리거나 젊은, 고립된 남성들이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에 손쉬운 표적이 되고 있는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된다.

주로 온라인을 통해 급진화, 주류화 하는 성차별주의 현상과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체제 자체에 성차별이 뿌리 깊은 자본주의는 이 문제를 결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심화되는 자본주의 위기는 극우 정치와 성차별주의(둘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를 더욱 고무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배양하는 구조 자체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앤드류 테이트는 누구인가?

〈소년의 시간〉에서 앤드류 테이트라는 실존 인물이 매노스피어의 대마왕처럼 언급된다.

그의 X계정 팔로워는 1,100만 명이 넘고, 대부분 소년들이다. 그는 2023년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인물 3위였다. 2024년 1위를 한 도널드 트럼프를 빼면, 상위에 랭크된 인물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유해한 자다.

킥복서에서 “해로운 남성성” 전파자, 우익 인플루언서로 변신한 그는 영국과 루마니아에서 사기와 자금 세탁, 여러 건의 인신매매, 성 착취, 강간 등 중범죄 혐의로 기소돼 있다.

앤드류 테이트는 틱톡과 유튜브 등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주장으로 명성을 쌓았고, 웹캠 등 포르노 사업과 성매매, 다단계 마케팅 등으로 돈을 모았다. 폭스 뉴스 앵커 출신인 우익 논객 터커 칼슨은 물론이고 영국의 유명 방송인 피어스 모건까지 그를 TV쇼에 부른다.

‘여성은 남성과 전쟁 중이고 성폭력 혐의를 조작해 남성을 파괴한다,’ ‘미투 운동의 피해자는 남성이고 여성은 가해자다,’ ‘강간은 여성의 책임이고 여성은 남성의 재산이다’ 등등. 성차별주의 주장을 주로 펼치지만,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흑인 혼혈이지만, 인종주의자다. 이는 드물긴 해도 없는 경우가 아니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을 습격한 파시스트 단체 프라이드보이스의 수장 엔리케 타리오 역시 흑인 혼혈이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극우 인플루언서 마일로 마야플로스는 게이다. 히틀러의 친구이며 악명 높은 나치 돌격대 대장 에른스트 룀도 게이였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폭력배들 중에는 유대인들도 꽤 있었다.

앤드류 테이트는 영국의 나치 지도자 토미 로빈슨과도 친밀하다. 트럼프 주니어와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루마니아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앤드류 테이트의 석방을 도왔다.

한국에서 그는 남성의 몸을 가꾸고 자신감을 향상시키는 자기계발과 동기부여의 인플루언서처럼 소개되곤 한다. 짧게 편집된 영상에 그런 얘기만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조차 개인들의 적대적 경쟁과 거기서 이룬 성공이 남성을 최상의 상태로 이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자수성가 이미지 뒤에는 추악한 범죄와 기회주의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설명을 원한다. 무엇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힘든지.

극우 정치도 하나의 설명이다. 주류 정치는 실천은 물론이고 설명조차 실패해왔다. 극우는 이점을 맹렬히 파고든다.

우리 같은 좌파 정치도 설명을 제공하지만 일반적으로 계급 사회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우파 사상)이다.

테이트가 대변하는 모든 것은 사실 전혀 새롭지 않다. 인터넷보다 오래된 생각들이다. 절대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사상이다.

그가 꼭 처벌받길 바라지만, 그가 더이상 보이지 않더라도 그런 고약한 생각을 양산하는 이 체제가 없어지지 않는 한, 또 다른 앤드류 테이트가 나올 것이다.

해결책은 남성과 여성의 단결된 저항이다. 저항의 정치가 소외된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매력의 중심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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