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교묘한 서민 증세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영국 노동당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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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와 그의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가 하는 짓은 정말이지 어설픈 갱단 같다. 지난주 예산안을 발표하기까지 온갖 소동이 벌어졌는데, 이제는 정부의 재정난에 관해 리브스가 거짓말을 했느냐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스타머와 리브스의 원죄는 금융 시장을 달랠 의무를 정부에 스스로 부과한 것이다. 그들은 2028~2029년까지 세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춘다는 재정 준칙을 스스로에게 부과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산책임청에 저당 잡힌 신세가 됐다. 예산책임청은 그들이 스스로 부과한 목표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보고서를 낸다.
11월 초 재무부는 예산책임청의 전망이 워낙 나빠서 총선 공약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득세율을 올려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리브스는 11월 4일 특별 연설에서 이를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다 11월 13일 ⟨파이낸셜 타임스⟩는 리브스가 소득세율을 올리지 않을 계획이라는 소식을 보도했다. 그러자 영국 국채 시장이 잠깐 동안 추락했다. 이러한 번복은 예산책임청이 직전에 낸 보고서 때문이라고 한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재정 조달 상황이 애초 리브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탄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브스가 예산안을 발표한 뒤, 예산책임청은 정부가 목표치를 42억 파운드 초과 달성할 것이라고 이미 지난 10월 말에 리브스에게 일러 줬다고 폭로했다. 예산책임청은 자신들이 생산성 증대 전망을 낮춘 것은 사실이지만,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에 따른 세수 증대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리브스는 예산안을 발표하기 전에 불필요하게 어두운 전망을 제시했던 것일까? 리브스는 생산성 수치가 나빠서 그랬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왜 세수 증대를 고려하지 않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리브스가 자초한 곤경은 단지 리브스가 정치적으로 지극히 무능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스타머와 리브스에게 가해진 제약을 반영한다.
앞서 필자가 언급했듯, 그들의 우선순위는 금융 시장을 달래는 것이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42억 파운드 초과 달성은 그다지 안심할 만한 차액이 아니라는 리브스의 주장은 꽤 타당성이 있다. 그렇다면, 리브스는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란에 가까운 노동당 평의원들의 반발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과감한 긴축은 위험한 선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브스는 장애인 수당과 연금 수급자들의 겨울철 연료비 보조금을 유지하고, 아동 복지를 두 자녀까지로 제한하는 정책을 폐지하는 데 들어갈 100억 파운드를 추가로 마련해야 했다. 이런 조처들은 노동당 평의원들이 취약한 정부를 상대로 관철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리브스는 세금을 올려야 했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은행들과 부자들을 건드려서는 안 됐다. JP모건 회장 제이미 다이먼은 예산안이 발표될 때까지 퉁명스럽게 기다린 다음에야 카나리 워프역에 새 고층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래서 리브스는 소득세율을 올리지 않겠다는 선거 공약을 깨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스타머가 당 내에서 제기되는 당권 도전을 겁줘서 주저앉히려는 시도를 그르치면서, 스타머와 리브스는 기세가 꺾이고 노동당 평의원들의 분노에 굴복했다. 그들이 소득세율 인상 대신 선택한 방안은 더 나쁘다.
2021년 당시 보수당 정부의 총리 리시 수낙은 소득세율 기준을 물가상승률과 연동시키는 것을 중단했다. 그리고 리브스는 현 소득세율 기준을 2031년까지 동결하겠다고 했다. 임금이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소득세를 내고 심지어 더 높은 소득세율 구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절루션 재단의 추산에 따르면,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초 소득세율을 1퍼센트포인트 늘리는 것보다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장은 행복하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듯이 “투자자들은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세금은 꽤 급격히 인상될 것이다. 정부에 돈을 빌려 주는 투자자들이 바라는 정직함이란 이런 것이다. 그럼으로써 재무장관은 미래의 불쾌한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완충재를 강화했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영국 국채 가격은 안정적이 됐다.
논평가들이 지적하듯이, 이번 예산안에 따를 가장 큰 고통(소득세율 구간 동결에 따른 고통)은 다음 총선이 열리는 2020년대 말로 연기될 것이다. 틀림없이 스타머와 리브스는 그 함정에서 빠져 나올 기막힌 계책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자충수를 둘 것임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