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쿠바 봉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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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이란을 폭격하기 직전인 2월 27일 쿠바를 “‘우호적 인수·합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매우 심각한 곤경에 처한 쿠바인들이 내 도움을 간절히 바란다”면서 말이다.
그 곤경을 만들어 낸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쿠바의 연료 수입 일체를 봉쇄하며 쿠바 경제를 붕괴 직전으로 내몰고 있다. 숨막힐 듯한 압박 속에 쿠바인들은 전례 없는 재앙에 처해 있다.
석유 부족으로 우선 전력난이 급속히 악화됐다. 발전소의 72퍼센트가 가동이 중단돼 평균 15시간 이상 정전된다. 보통 사람들의 거주 지역 중에는 전기 공급이 아예 끊긴 곳도 있다. 병원 같은 필수 시설 운영에 쓸 전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암 환자, 신장 질환자 등 만성 질환자 약 500만 명이 필요한 만큼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쿠바는 기초 의료가 비교적 잘 갖춰진 나라이지만, 에너지 위기가 야기하는 의료 위기는 특히 도시에서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을 높인다. 차량 연료 부족으로 쓰레기 수거가 멈춰 쿠바 거리에 쓰레기 더미가 쌓인 모습이 언론에 보도된다.
에너지 부족은 산업 생산에도 타격을 준다. 쿠바 대통령 미겔 디아스-카넬 정부는 최고 위기 등급인 “[고난의] 특별한 시기”를 선포하고 주 1회 추가 휴업과 연료 사용 제한을 지시했다.
이 때문에 특히 농업 부문에서 공급·수확이 지연돼 식량 손실이 느는 악순환에 빠졌다. 지금 1인당 식량 공급량이 전년도 동기 대비 50퍼센트 미만으로 줄었다. 트럭이 닿지 못하는 몇몇 지역에서는 그나마의 배급도 완전히 끊겼다.(〈알자지라〉)
연료 부족으로 버스·화물차 운행이 중단·축소돼 물류와 교통이 마비됐다. 이는 산업, 농업을 가리지 않고 타격을 주고 있다. 쿠바의 대표적 외화 벌이 산업이 관광 산업인데, 항공기가 이륙하지 못하니 관광객 유입이 급감했다. 주요 관광지가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외화 벌이 사업인 의료진 해외 파견도 트럼프의 봉쇄와 단교 압박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 2월 13일 과테말라를 시작으로 온두라스·바하마·그레나다 등 카리브해 연안국들이 자국 내 쿠바 의료진들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요컨대 미국은 쿠바를 상대로 기아 조장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상대로 했던 그 야만적인 작전 말이다. 제국주의적 야만의 전통을 따라 트럼프는 쿠바 사회의 붕괴를 조장해 굴복시키려 한다.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
트럼프 정부는 이번 봉쇄 강화 이유를 쿠바가 이란·러시아·중국 등 적대 세력과 결탁한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 정부가 올해 초부터 벌인 제국주의적 만행들과 동기가 같은 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 정권들을 굴복시키거나 와해시켜 미국의 배타적 영향권을 (특히 중국에) 재천명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트럼프는 지난 1월 베네수엘라를 침략해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납치했다. 그전까지 베네수엘라 정부도 미국의 제재·봉쇄를 피해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두로 납치 사건은 쿠바에게 나쁜 쪽으로 전환점이 됐다.
마두로 납치 직후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쿠바와의 단교를 요구했다. 베네수엘라는 쿠바 석유의 61퍼센트를 공급해 왔다(S&P 2025년 추산). 마두로의 후임 대통령이자 미국에 협조적인 델시 로드리게스는 그 요구를 즉시 수용했다.
로드리게스는 1월 하순에 베네수엘라를 방문한 미군 남부사령부 사령관과 “역내 안보”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현재 카리브해에서 미국에 굴복하지 않은 나라는 쿠바뿐이므로, 그 안보 협력은 사실상 쿠바 봉쇄 동참을 뜻했다.
마두로 납치에 이은 쿠바 봉쇄 동참 압박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도 효과를 냈다. 쿠바 석유 사용량의 25퍼센트를 공급하던 멕시코도 꼬리를 내렸다. 멕시코 셰인바움 정부는 소량의 석유를 쿠바로 보냈지만, 그 양은 쿠바 사용량의 사흘치에도 못 미쳤다. 그리고 미국과 합동으로 ‘마약 전쟁’을 재개했다.(미국의 중남미 대상 마약 전쟁은 중남미 개입을 위한 외피의 하나다.)
쿠바는 브릭스(BRICs)의 파트너국이지만, 브릭스의 핵심인 중국과 러시아는 유감 성명만 발표했지, 지원이나 제재 해제를 위한 실질적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다.
쿠바 내 정부 비판적 좌파 단체 ‘코무니스타스 쿠바’에서 활동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프랑크 가르시아 에르난데스는 이렇게 전했다. “쿠바에 연료 공급이 끊긴 것은 그전까지 연료를 공급하던 국가들이 모두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쿠바는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러시아산 석유에도 의존[약 15퍼센트]해 왔습니다.
“푸틴이 러시아의 힘을 쿠바인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는 데 쓰기를 선호하는 것은 하등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셈법입니다.”
봉쇄로 기아를 조장하는 트럼프의 정책에 미국 민주당 일부 정치인들과 자유주의적 제국주의 언론들도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그들은 쿠바인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쿠바가 너무 급격히 붕괴하면 경제 난민이 미국으로 대량 유입되고 미국의 중남미 패권도 불안정해질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이렇듯, 트럼프가 경쟁국들을 밀어내려 야만적인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평범한 쿠바인들은 눈 뜨고 보기 힘든 재앙을 겪고 있다.
붕괴
고립을 타파할 뾰족한 수가 없는 쿠바의 디아스-카넬 정부는 “특별한 시기”를 선포하고 일단 버티기 중이다. 트럼프가 중동 전쟁의 수렁에 빠져 돌파구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모종의 타협 시점을 계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지난번 쿠바가 “특별한 시기”를 선포했을 때는 1990년으로, 당시는 동구권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며 쿠바의 고립이 가시화됐을 때였다.
오랜 봉쇄 속에서 어려움을 겪어 온 쿠바 정부(피델 카스트로)는 “특별한 시기”를 선포하고 긴축을 펴면서 경제 투자에 해외 민간자본을 유치하려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실업이 늘고 대중의 소득과 영양 수준이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후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불평등과 빈곤은 회복되지 않았다. 긴축 정책에 의존하는 쿠바 관료들은 아바나의 저택에서 호사를 누렸다.
대중은 정권에 점점 냉담해졌고, 정권은 탄압으로 불만을 거듭 억눌렀다. 그런 정부로는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에 대중을 결집시키기 어렵다.
우리는 미국 제국주의의 쿠바 봉쇄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쿠바인들의 반제국주의 저항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당연히 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