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경험한다. 세계에서 매년 2천6백만 건의 합법 낙태가 이뤄지고 2천만 건의 불법 낙태가 이뤄진다.

불법 낙태는 여성들에게 매우 위험하다.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은 안전한 낙태 시술소를 찾지 못한 채 사회적 비난과 처벌이 두려워 위험한 시술을 받곤 한다. 불법 낙태는 어둡고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때때로 마취도 없이 이뤄지곤 한다.

심지어 일부 여성들은 스스로 낙태를 시도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여성들은 꼬챙이나 뜨개질 바늘 같은 뾰족한 물건을 자궁 안으로 집어넣어 낙태를 하거나 유산을 유도하기 위해 납 같은 독성물질을 이용한다.

그 결과, 여성들은 흔히 감염·중독·출혈·불임을 감수해야 하고 심지어 죽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1967년 낙태가 합법화되기 전에 산부인과 병상의 최대 4분의 3을 불법 낙태 후유증 환자들이 차지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세계에서 불안전한 낙태로 사망하는 여성들이 매년 7만 8천여 명이고, 수백만 명이 부상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보고한다.
이러한 현실은 낙태권이 여성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한국의 법은 현실을 무시한 채 낙태를 불법화하고 있다. 1953년에 제정된 형법 269조는 낙태를 한 여성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백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명시하며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 1973년에 제정된 ‘모자보건법’도 제14조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낙태가 불법이라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낙태율이 세계 최고라는 말까지 있다. 2005년 보건복지부가 고려대산학협력팀에 의뢰해 실시한 전국실태조사를 보면, 15~44살 한국 여성의 연간 낙태율은 1천 명당 평균 29.8명으로, 낙태가 합법인 미국(21.1명)이나 영국(17.8명)보다 많다.

물론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옛날처럼 무허가 시술이나 자해 같은 방식으로 매우 위험한 환경에서 낙태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낙태가 불법이다 보니 여성들은 은밀하게 시술받고 사회적 비난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또, 낙태 시술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여성들은 비싼 병원비를 감당해야 한다. 비싼 병원비는 특히 노동계급 여성과 청소년들에게 매우 큰 문제다. 이것은 낙태 합법화가 노동계급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 준다.

낙태는 살인?

낙태 반대 운동가들은 낙태가 살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하기 위해 태아의 생명력을 과장한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은 태아가 자궁 안에서 움직이는 사진, 낙태 시술기가 자궁 안으로 들어왔을 때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동영상 등을 보여 주곤 한다.

하지만 호흡이 가능할 만큼 폐가 발달할 때까지는 어떠한 태아도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없다. 자궁 밖에서는 24~25주 된 태아의 80퍼센트가 사망하고, 27주 된 태아의 62퍼센트가 사망한다. 사는 경우에도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얼마든 간에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삶이 충돌한다면, 당연히 여성의 삶이 우선이어야 한다.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에 따른 희생을 모두 감내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여성이기 때문이다.

낙태 반대 운동가들의 과장과 달리, 낙태는 대부분 태아가 인간의 형체를 갖추기 전인 임신 16주 이전에 이뤄진다. 이 시술은 간호사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영국의 통계를 보면, 22주 이후에 하는 낙태는 전체 낙태의 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여성들이 후기 낙태를 선택하지 않는다. 후기 낙태가 더 큰 도덕적 죄책감을 수반하고 건강에도 더 안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는 안전하고 신속하게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고, 낙태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임신 사실을 숨기고 망설이다가 뒤늦게 낙태를 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기 낙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낙태는 합법화돼야 한다.

낙태 반대 운동가들은 종교적 이유로 낙태에 반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낙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근본주의자들이 유별나게 낙태권을 격렬하게 반대할 뿐, 다른 45개 교파에서는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한다.

프로테스탄트 근본주의자들과 가톨릭 교회는 낙태한 여성들이 “하나님의 생명 원칙에 순응”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에도 낙태 금지는 분명히 언급돼 있지 않다.

사실, 가톨릭 교회조차 항상 낙태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가톨릭 교회는 1869년 교황 비오 9세가 낙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초기 낙태를 금지했다. 조사 결과, 가톨릭 교회가 낙태를 완전히 금지한 뒤에도 가톨릭 신자들조차 다른 사람들과 거의 같은 비율로 낙태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낙태 ― 여성의 선택권

낙태권에 반대하는 지배자와 우익 들이 생명 운운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미국에서 낙태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자들(1백20만 명을 죽인 살인마 부시가 대표적)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사형제도와 핵무기도 찬성한다. 이들은 심지어 낙태 시술 병원에 침입해 의사와 낙태 시술을 받는 여성을 살해하거나 병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낙태권에 반대하는 지배자와 우익 들은 종교와 도덕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치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하는데도 이들이 낙태를 반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여성들이 양육과 가사를 책임지도록 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낮게 유지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뛰어들면서 아이를 낳을지 말지, 언제 낳을지를 선택할 권리가 여성들에게 매우 중요해졌다. 자신의 출산을 통제할 수 없다면 여성은 자신의 삶을 계획하거나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 따라서 낙태권은 여성 해방에서 필수적인 권리이다.

여성의 출산과 몸은 국가나 교회, 남편, 부모 등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