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교육:
왜 학교는 재미없고 가기 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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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풀이 죽어 있는 아이가 울먹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어린 시절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은 정답만을 강요하는 시험지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차츰 빛을 잃어 간다.
누구나 졸음과 실패가 반복되는 학창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이 노동자들에게 지옥철이듯이, 학생들도 일요일 밤만 되면 불안감에 잠을 설친다.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을 때야말로 자유롭다고 깨닫는 것처럼, 학생들도 교문을 나설 때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것은 오늘날 교육이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그것이 뿌리 내리고 있는 국가는 자본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생산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배자들은 양질의 노동력과 그에 대한 착취가 필요하다.
학교는 복잡하고 어려운 노동과정을 처리해 내는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그 사회의 생산력에 조응하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자본주의적 세계관이 교육 과정 전반을 지배한다.
매일 교실과 운동장에서는 경쟁이 인간의 본성이며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떠들어 댄다. 경쟁 논리는 인간 능력의 우열을 구분지어 계급 차별을 정당화한다. 뛰어난 한 명이 멍청한 수백 명을 먹여 살린다고도 한다. 내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부터 친구들을 밟고 올라서서 우위를 차지하는 데 길들여져야 한다.
누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터널에서
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중
삽질
선택받은 소수만이 장래에 이 사회를 통제할 진정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나머지는 전문직
부유한 부모 아래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성장하는 소수의 학생들은 사교육비에 쩔쩔매는 노동계급의 자녀들에 비해 더 많은 기회를 갖는다. 고액과외, 해외유학, 회사 경영권 양도 등 이들에게는 모든 문이 활짝 열려 있다.
학교 교육은 결국 계급사회를 합법화하고 유지시키는 과정이 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교육의 보수성이 문제가 된다. 학교는 학생들을 순종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 규율과 권위에 복종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체벌
단순암기식
기존 사회 유지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학생들을
요컨대 학교가 재미없는 까닭은 경쟁이 대부분의 학생들을 배제하고, 지배자들이 추앙하는 세계관이 창의력을 가로막고 규율과 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개성을 발현하고 자신감이 충만해야 할 젊은 시절을 불안과 열등감으로 지치게 만드는 학창 시절에 대한 가장 적절한 보상은 우리를 그렇게 성장시키고 있는 이 세계의 운영 방식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경제 위기로 지배자들의 사회 운영 능력이 의심받는 요즘 같은 때에
위기를 겪는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삶을 공격할 때 학교에 소속된 여러 집단 ─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