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실감납디다. 평생 배만 만들었는데 여기서 쫓겨나면 뭐 먹고 사나. 죽으라는 거지. 수주 못한 게 왜 우리 책임이가. 자기들은 아무것도 책임 안 지고 우리만 나가라고 한다”.

조선업 호황 속에서 한진중공업은 지난 10년간 무려 4천2백77억 원의 흑자를 냈고, 회장 조남호 일가는 2009년에만 주식 배당금을 1백20억 원이나 챙겼다. 그런데 이제 불황이 닥치자 “손이 문드러지게 용접하며” 일해 온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강요하는 것이다.

사측은 “조선시장의 사상 유례없는 불황 속에서 구조조정은 회사 전체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나 현재 경영상의 어려움을 노동자들이 책임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측은 인건비가 싼 필리핀 수빅조선소에는 투자액을 2조 원으로 늘린 반면 울산과 다대포 공장은 폐쇄하고, 영도조선소는 하청을 늘리고, 설계부문은 분사를 추진하려 한다. 이런 계획들은 경제 위기를 기회로 노동자들을 압박해 한푼이라도 더 쥐어짜기 쉬운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조선업은 축소하면서 송도에 호화 아파트를 짓는 것은 삽질 대통령 밑에서 건설부문 대박을 꿈꾸는 한진자본의 욕심을 보여 준다. “이 좋은 기회에 왜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하냐”는 사측 교섭위원의 말 속에서도 이번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시키겠다는 냉혹한 계산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대단하다. 지난 2일 회사가 “교섭 중에는 정리해고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노동부에 3백52명 정리해고를 신고하자 노동자들은 “우리가 왜 필요 없는 인원이냐. 수주 책임자인 회장 아들부터 자르라”(채길용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며 부분파업을 하고, 부산 공장과 서울 한진 본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연대도 확산되고 있다. 민주노총 김영훈 신임 위원장은 당선하자마자 영도 공장을 방문해 “단결하고 투쟁으로 돌파한다면 80만 조합원들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지지 엄호할 것”이라며 투쟁을 호소했다. 김영미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이제 한판 붙어야 한다. 금속노조가 책임지고 함께할 것”이라며 연대를 약속했다.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부산경제 살리기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공장 정문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매일 50명씩 모여 홍보전을 하고 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10만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야금야금

사측은 노동부에 정리해고를 신고한 후, 언제든지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명단에 내가 포함된 것은 아닌지’, ‘명단이 발표되면 ‘산자’와 ‘죽은자’로 나뉠 텐데 잘 싸울 수 있을지’ 불안해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 중에는 명단 발표를 하지 않겠다는 사측의 약속을 그대로 믿고 교섭으로 시간을 끄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저들이 구조조정 의지를 분명히 한 상황에서 우리는 더 강력한 투쟁 계획을 내고 투쟁 수위도 더한층 높여야 한다.

사측은 “희망퇴직이든, 무급 휴직이든, 임금 삭감이든 양보안을 제시하라”고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정리해고를 막으려고 다른 것을 양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가 양보 압력에 휘둘린다면 저들은 더 많은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이다. “계속 물량이 없으면 정리해고밖에 없다”는 사측의 말에서 드러나듯 한 번 밀리면 이후에도 경제 위기를 명분으로 한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막아낼 수 없다. 그러므로 사측에게 야금야금 공격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분명한 투쟁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폐기시켜야 한다.

이미 ‘희망퇴직’으로 4백여 명이 회사를 나갔고, 비정규직 1천2백여 명이 쫓겨났다. 명단이 발표되면 사측이 ‘산자’와 ‘죽은자’로 나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가 더 쉽다. 따라서 2003년 투쟁에서 비조합원과 일용직의 조업까지 전면 중단시켜 승리한 것처럼 과감한 파업 전술을 써야 한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해고에 항의해 공장 앞에서 홍보전을 하는 하청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비정규직 비대위와 함께하려는 시도는 지속·강화해야 한다. 조합원들을 설득해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만간 열릴 대의원대회에서는 이와 같은 투쟁 계획이 제시되고 결정돼야 한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도 이런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를 건설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