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추악한 실체 ①:
“평화와 번영”은커녕 침략과 반동으로 점철된 동맹
〈노동자 연대〉 구독
트럼프 정부가 뻔뻔스럽게도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금)을 5배 인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 지배자들은 주한미군이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는 구실을 한다고 강변해 왔다. 한국 지배자들도 한미동맹을 중시해 왔다. 민주당 정부도 그런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한미동맹의 추악한 역사를 살펴볼 것이다. 이번 호에는 냉전기의 한미동맹을 먼저 살펴본다.
우파들은 한미동맹이 냉전기 때 한반도에서 전쟁 억지력 구실을 했고, 원조를 통해 남한의 경제 성장을 뒷받침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전쟁 억지와 원조 때문에 평범한 한국인들이 미국에 고마워해야 할까? 이런 일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남한 민중을 위한 게 아니었다.
미국은 남한을 자신의 대소련 전초 기지로 삼으려 했을 뿐이다.
좌파 역사학자 가브리엘 콜코(1932~2014)는 제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전략은 반란에 휩싸인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안정시키고 미국 자본주의에 유리하게 재편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려면 제2차세계대전의 동반 승리자이자 새로운 경쟁자인 소련의 팽창을 막아야 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식민지 반란과 민족 해방 혁명 가능성을 차단해야 했다.
1947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소련 봉쇄 정책을 선언했다. 곧이어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을 발표했다. 마셜플랜은 유럽 내 좌파와 노동운동을 약화시켜 유럽을 미국식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로 통합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또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설립해 서유럽 국가들과 집단적 군사안보 동맹을 맺었다.
동아시아도 양대 열강 간 갈등의 주요 무대 중 하나였다. 1949년 중국에서 공산당이 뜻밖에 권력을 잡자 한반도와 특히 일본을 장악하는 게 미국에게 매우 중요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역코스’ 정책을 실시했다. 또한 종전 직후 일본에서 폭발한 노동자 저항과 급진화 움직임은 억눌렀다.
전후 미·소 제국주의 국가가 벌인 세력권 재분할 경쟁의 특징은 양쪽 모두 자신의 세력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식으로 점령지에 자신들의 체제를 이식하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미국이 점령 통치를 한 남한에서도 미국은 서둘러 자신의 사회체제를 이식했다. 1946년 6월 트루먼은 한반도가 “공산주의 통치와 서로 맞붙어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하나의 시험장”이라고 말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일본의 식민 지배 하에서 억눌렸던 불만이 터져나왔다. 1945년 9월 미군정 사령관 하지의 정치고문 메럴 배닝호프는 이렇게 말했다. “남한은 불꽃만 튀어도 폭발할 화약통과 같다.”
그러나 미군정은 노동자와 민중의 조직과 투쟁을 철저하게 분쇄해 버렸다. 대신 친일·친미·반공주의자들을 현지 지배 파트너로 삼아 시장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친미 반공 국가를 세웠다.
미국이 남한에 이식한 체제는 ‘자유’나 ‘민주주의’와 전혀 상관 없는 끔찍한 경찰국가였다.(소련이 이식한 북한 체제 역시 억압적인 국가자본주의 체제였다.)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세력권 다툼으로 말미암아 강제로 분단됐고, 남·북한 민중은 한국전쟁 동안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했다.
한국전쟁
1950년에 터진 한국전쟁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한미동맹의 기본틀을 확립했다. 한국군의 작전권은 미국에 넘어갔고, 미군이 대규모로 상시 주둔하게 됐다.
한국전쟁 직전 미국은 세계 패권 전략을 좀 더 공세적인 방향으로 바꾸려고 모색하고 있었다. 중국의 ‘공산화’와 소련의 핵실험 성공이 그 배경이었다. 또, 대규모 군비 증강을 통한 수요 확대로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한국전쟁은 울고 싶은 미국의 뺨을 쳐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남·북한 민중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미국의 개입으로 한국전쟁의 규모와 질은 바뀌었다. 대량 살상된 민간인은 대부분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
특히 한미 동맹군이 38선을 돌파해 북한으로 진격하기로 한 결정은 대참사를 낳았다. 이 결정은 중국군을 한반도로 끌어들였고, 한반도 전역이 초토화됐다. 미국은 중국군 참전을 이유로 핵무기까지 사용하려 했다.
미국의 핵무기는 냉전 시기 한미 군사동맹의 기본축 중 하나였다. 미국은 1958년 제4미사일 사령부를 창설해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했다.
미국과 한국의 지배자들은 주한미군의 존재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냉전기 때 주한미군은 동북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구실을 했다. 갈수록 미국과 소련이 상대방과 동맹국을 겨냥한 어마어마한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는 게 전쟁 억지의 중요한 요인이 됐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승만과 박정희는 미국도 골치 아파할 정도로 호전적이었다. 1960년대 말 주한미국대사 포터는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의 북진에 대한 욕망은 그 적들[북한]만큼이나 첨예하다.” 그러나 당시 미국 지배자들은 미국이 베트남에서처럼 한반도에서 전쟁의 수렁에 빠질까 봐 걱정했다.
미국이 제공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긴장을 점증시켜 미래에 더 큰 재앙의 길을 놓았다.
자본 축적
미국은 대소련 전초기지인 한국을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시켜야 했다.
한미동맹이 한국 자본주의가 자본 축적의 기틀을 마련하고 성장하는 데서 주요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1950년대 미국의 원조는 남한의 공장과 철도, 발전소 등의 기간 시설을 만드는 동력이었다. 삼성과 현대, 엘지 같은 재벌들이 이 원조물자를 따내 사업 토대를 닦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1950년대 말부터 미국의 원조액이 급격히 줄었지만, 미국은 대신 한국에 대한 지원을 일본에 맡겼다(1965년 한일협정 체결). 무엇보다 한국은 미국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보장받았다.
냉전기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한국을 베트남전에 끌어들였다. 한국은 5만 병력(미국 다음으로 큰 파병 규모)을 보내 미국의 침략 전쟁을 도왔다. 베트남 파병은 한미동맹의 침략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베트남 민중의 피를 대가로 경제성장의 시동을 걸었다. 박정희는 베트남 파병으로 장기 집권과 경제성장의 발판을 놓았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는 독자적 자본 축적을 이루면서 미국 자본주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게 됐다. 이 점은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지배자들이 여전히 한미동맹을 ‘금이야 옥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파병으로 또다시 미국의 전쟁을 돕겠다고 결정했다.
민주주의와 민중을 짓밟은 침략동맹
그러나 1945년 9월 미군이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한국 노동자·민중을 위해 한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국은 계속 독재 정권들을 후원했고, 남한 노동자·민중은 그 밑에서 쥐어짜이고 짓눌려 살아야 했다.
분단 고착화에 항의한 제주 4·3항쟁은 미국의 후원 하에 야만적으로 진압됐다. 미국은 1980년 광주 항쟁을 진압하러 가는 한국군 이동을 승인했고, 부산에 항공모함을 배치해 학살을 엄호했다.
주한미군이 상시 주둔하면서 주한미군 범죄도 심각했다. 예컨대, 2002년 중학생 신효순·심미선의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으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대중적 반감이 표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미동맹은 미국 제국주의와 한국 자본주의, 그리고 이 체제에서 혜택을 얻는 미국과 한국의 권력자들을 위해 필요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 점은 한미동맹(주한미군)에 맞서고 평화를 보장하는 일이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질서 자체에 도전하는 근본적인 사회변혁 과제와 연결돼야 함을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를 주창하고 있다. 동맹의 성격상 그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팽창을 함축한다. 한미동맹 강화는 앞으로도 평범한 대중의 희생을 담보로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