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착취도시, 서울》:
쪽방촌에서 고시원까지... 빈곤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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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따뜻하고 환기 잘 되고 건조하지 않은 곳에서 잘 먹고 잘 자며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감염병 예방의 최대 적은 빈곤일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정부가 쪽방촌에 마스크를 (조금) 지원하고 방역도 (조금) 하고 있지만, 1~2평짜리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은 언제라도 또 다른 집단감염 발원지가 될 수 있다. 쪽방촌 사람들은 “여기서는 한 명 걸리면 다 죽는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을 좀더 들여다 보고 싶은 독자에게 신간 《착취도시, 서울》(이혜미 지음, 글항아리)을 추천한다.
2018년 〈한국일보〉 “병아리 신입 기자”였던 저자는 종로 고시원 화재 사건을 계기로 쪽방촌 취재에 나섰다. 처음에는 그저 “필요한 멘트를 따려고” 들어간 쪽방촌이었다. 그러나 취재하면 할수록 “중요한 것은 장면이 아니라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고군분투 추적 끝에, 쪽방촌 빈민들의 고혈을 짜내 돈벌이 하는 자들이 다름 아닌 강남 부자들이었다는 것을 들춰낸다.
고작 ‘쪽방’으로 부를 증식한다고? 그렇다. 1평짜리 서울 쪽방의 평균 월세는 약 23만 원. 평당 월세로 따지면 평균 4만 원대인 일반 아파트는 물론, 가장 비싼 집이라 꼽히는 강남 타워팰리스보다 몇 배 많다. 서울은 방을 쪼갤 수록 돈이 된다. 같은 원리로 대학가 미니 (심지어 “초미니”) 원룸들도 불법 개조된 경우가 많다.
특히 쪽방촌은 각종 법망의 사각지대에 있고 거주자가 힘 없는 빈민, 장애인이다. 건물주는 세금이나 건물 관리 의무를 무시하면서 관리인을 시켜 갑질을 부리고 돈을 남긴다. 게다가 서울 쪽방촌은 언제나 들어오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현금 수익이 쏠쏠하게 보장되는 것이다.실제로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세우려던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쪽방촌을 매입해 ‘빈곤’ 장사에 뛰어든 사실이 밝혀져 낙마하기도 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기초생활수급비 주거급여 23만 원을 그대로 월세에 바쳐야 한다. 쪽방촌이 빈민들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 되는 한 배경이다. 서울 쪽방촌 주민들의 평균 거주 기간은 11.7년이고 그중 28.3퍼센트는 15년 이상 거주하고 있다.
저자는 1부에서 쪽방촌을 다룬 뒤, 2부에서는 고시원·원룸텔 등 대학가의 ‘신 쪽방촌’을 다룬다. 여기서는 저자 자신이 20대 내내 “주거 난민”으로 살았던 경험도 묻어난다.
빨래 건조대 하나 제대로 펼 수 없을 만큼 작은 방에 30~40만 원 넘는 월세를 내며 살아야 하는 고통은 많은 청년들이 공감할 것이다. 저자는 묻는다. “기본적인 욕구와 희망도 뒷받쳐 주지 못하고 어떻게든 청년을 착취하려는 사회가 결혼, 출산 등 재생산을 위한 많은 것을 요구해도 되는 걸까?”
쪽방은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중국의 ‘맨홀족’(따뜻한 맨홀에 들어가 산다)부터 일본의 ‘넷카페 난민’(PC방에서 산다), 영국의 ‘하우스보트족’(배 위에서 산다)까지.
150여 년 전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주택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와 주택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무질서한 경쟁과 상품 거래에 기초하는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고용 불안과 실직을 만들어 내는 한편, 수많은 인구를 끊임없이 도시로 집중시킨다. 이 때문에 “그야말로 더러운 돼지우리 같은 집도 언제나 빌리려는 사람이 나타나며” 집주인은 “최고의 집세를 무자비하게 짜낼 권리뿐 아니라 또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자본주의 도시화가 어김없이 동반하는 빈민촌은 언제나 전염병의 온상이었다. 홍수에 가장 먼저 잠기는 반지하처럼, 쪽방촌·고시원·대학가 원룸촌은 코로나19의 가장 취약한 곳이 되기 쉽다.
제대로 된 방역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취약계층과 청년들을 포함해 평범한 다수를 위한 지원에 대폭 투자해야 한다. 100조 원이라는 거액으로 기업의 돈벌이부터 지키려 하는 문재인 정부의 우선순위는 뒤집혀도 한참 뒤집혀 있다.
나아가 근본에서는 인간의 노동과 의식주의 필수품까지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비정한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