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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 러시아 혁명에 고무받았던 민족 해방 투사

윤석열이 광복절 기념사를 시작으로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키로 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좌파 경력을 문제 삼아 좌우 모두 업적을 인정했던 독립투사를 도려내겠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 전반의 우경화 추구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올해 3월 출간된 《민족의 장군 홍범도》(이동순 지음, 이하 책)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800쪽이 넘지만, 그만큼 홍범도의 행적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저자가 문학가답게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서술했다.

《민족의 장군 홍범도》 이동순 지음, 한길사, 840쪽, 28,000원

저자의 조부 이명균은 독립운동 단체 ‘의용단’을 이끌었고, 대구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순국했다. 저자는 이런 집안 내력이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힌다.

홍범도는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머슴살이, 공장 노동자, 포수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당시 조선 민중은 탐관오리의 수탈·억압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빈곤을 벗어나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간도·연해주 등지로 이주했지만, 그곳에서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홍범도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마수가 뻗치던 20대에 간도·함경북도 등지에서 의병 투쟁에 나선다. 당시부터 신출귀몰한 용병술과 뛰어난 리더십, 인품으로 이름을 날렸다.

한일 병탄 이후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령인 연해주로 이동해 항일 무장 투쟁을 준비한다. 1918년 러시아령에서 창당된 한인사회당, 1919년 국내의 3·1 운동, 이후 상해 임시정부 등과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 받았다.

홍범도는 특히 흩어진 독립군들을 조율하고 연합시켜 1920년 봉오동-청산리 등 가장 성공적이었던 항일 전투들을 지휘했다.

윤석열 정부는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던 이력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홍범도가 한창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던 때에 볼셰비키와 러시아 혁명 정부는 노동계급 국제주의를 표방하며 러시아 제국의 옛 소수민족들에게 민족자결권을 선포했고, 그 영역을 넘어서는 피억압 민족의 해방 운동을 지지·지원했다.

그때 일본군이 러시아 내 반혁명 백군을 지원하려고 연해주·시베리아에 출병했다.

홍범도와 러시아 혁명 정부는 일본 제국주의라는 공동의 적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1915년부터 러시아 영토에서 은거하며 무장 투쟁을 준비하던 홍범도가 우연히 러시아 혁명을 직접 목격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1917년 정사년 10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 무렵 홍 대장은 우연히 페트로그라드에 갔다가 도심을 휩쓸어가는 혁명의 파도를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 홍범도 대장은 가난한 백성이 땅의 주인이 되고, 압박과 착취가 없는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그 갸륵하고 아름다운 혁명의 취지에 우선 공감했다. … 식민지 조선을 비롯한 전 세계 다른 약소국가 피압박 민족들 사이에서도 들판의 불길처럼 그 혁명운동이 활활 번져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실제로 러시아 혁명은 식민지의 민족 해방 운동을 고무했다. 한반도에서는 1919년 3.1운동을 고무해 침체돼 있던 항일 무장 투쟁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는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벌이는 시발점이 된다.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홍범도 ⓒ출처 독립기념관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소집한 1922년 극동민족대회에 홍범도는 조선 대표 52명의 한 명으로 참석했다. 모스크바 대회장에선 “일본 대표도 일부러 [홍범도에게] 찾아와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시했다.” 대회장은 “시종일관, 그야말로 국제적 친선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홍범도는 이때 레닌과 트로츠키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책에서는 레닌과의 면담이 신뢰와 호의 속에서 이뤄진 분위기가 잘 묘사된다.

이처럼, 러시아 혁명은 홍범도와 같은 위대한 독립 투사들을 고무하고 지원해 신뢰를 얻었고, 한국 독립운동은 초기부터 국제적인 반제국주의 투쟁과 세계 혁명의 일부로 자신을 보는 시야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양측 모두 — 그리고 지금 우리가 —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레닌이 죽고 트로츠키가 스탈린에 밀려 축출된 이후 러시아 정부의 태도는 스탈린파 관료하에서 변한다. 이후 홍범도의 투쟁과 삶도 고난을 겪는다.

스탈린파 관료들은 자국 보호를 우선하고 대러시아 국수주의를 부활시켰다. 일본을 자극할까 봐 극동의 항일 투쟁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베리아와 연해주의 고려인들(카레이스키)을 중앙아시아로 대거 강제 이주시켰다. 홍범도도 이때 강제 이주를 당해 고생스런 노년을 보낸다.

윤석열 정부가 자유시 참변에 러시아 공산당과 홍범도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완전한 왜곡이다. 자유시 참변은 당시 복잡한 동북아·극동 정세 속에서 한인 독립군끼리(불행하게도 친공산주의 계열 간 분열로) 갈등이 무장 충돌로까지 번진 사건이다.

책은 당시 홍범도가 한인 친공산주의 두 분파 사이에서 중립을 취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한 분파 청년들로부터 피습당해 생명을 잃을 뻔한 사건을 소개한다.

또한 극동민족대회 때 레닌과의 면담에서 이 문제가 다뤄진 일화도 전한다. 레닌이 자유시 참변의 경위를 묻자, 홍범도는 자신의 평가를 말하며 체포된 독립군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레닌은 즉시 석방을 지시했다.

이 책은 레닌 정부를 우호적으로 다루고 스탈린 정부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도 장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역사 전쟁을 벌이며 왜곡하는 홍범도 장군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