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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서평 소설 《범도》(방현석, 2023):
러시아 혁명에 고무된 조선 민족 해방 투사의 내면을 그리다

윤석열 정부가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 ‘역사 전쟁’을 시작한 후 오히려 홍범도 장군의 삶이 재조명받고 있다. 윤석열의 우익적 공격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 6월 출간된 방현석 작가의 장편소설 《범도》도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만주·중앙아시아·러시아 등 현지답사를 포함한 자료 조사에 집필까지 13년을 매달린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

《범도》 방현석 지음, 문학동네, 2023년

《범도》는 부모를 모두 여읜 10대의 홍범도가 아버지 친구의 슬하에서 포수 일을 배울 때부터 가장 성공적인 항일 전투의 하나였던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마친 직후까지를 다룬다.

당시 세계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였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정점에 이르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세계 분할 경쟁이 극심해졌다. 동시에 미국 남북전쟁 이후 러시아 혁명, 독일 혁명, 식민지의 민족 해방 봉기 등 곳곳에서 격변이 벌어졌다.

조선도 그런 격랑에 있었다.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외세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동학 운동이 일으킨 갑오농민전쟁 등 신분제와 수탈에 항거한 아래로부터의 반란도 일어났다.

《범도》는 일인칭 시점의 서술을 통해 이런 시대상 속에서 홍범도가 민족 해방 투쟁을 통해 얻고자 했던 사회가 무엇이었을지 설득력 있게 그려 낸다. 또한 홍범도의 눈을 통해 수많은 실존·가상 인물들이 추구했던 가치를 보여 준다.

방현석 작가는 해고에 맞선 노동자 투쟁을 다룬 《내일을 여는 집》 등 이전 작품에서도 선악을 중심으로 인물을 단순하게 묘사하지 않고 모순된 의식을 잘 표현했다. 이런 장점은 《범도》에서도 이어져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독립운동 내에 계급적 분단이 있었음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테마 중 하나다.

의병 활동에 나선 홍범도는 유림의 거두 유인석이 일으킨 대규모 항일 의병대에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합류한다. 유인석 휘하의 장교들이 대부분 동학농민군을 진압했던 양반이었던 탓에 평민 출신인 부대원들이 이를 꺼림직하게 여기지만, 홍범도는 대의를 위해 합류를 결정한다.

유인석 의병대는 무장도 하지 않은 머슴을 데리고 다니며 양반 출신 장교들을 수발들게 하는 부대로 묘사된다. 의병에 자원하지 않으면 지주에게 소작을 다 떼이고 거지로 내몰릴 처지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의병이 된 소작농과 머슴이 수두룩하다. 정작 지주와 그 아들들은 의병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홍범도 부대의 뛰어난 여성 부대원 진포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쫓아내려고도 한다.

홍범도에게 붙잡힌 친일파들은 하나같이 이 점을 파고들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양반이 팔아넘긴 양반의 나라를 포수들이 되찾겠다는 것이 과연 가당한 일이오? … 일본이 지배하는 나라에는 양반이 없소.”

그러나 일본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계급 관계가 자리 잡고 있음을 소설은 보여 준다.

홍범도는 전사한 부대원들의 복수를 위해 자살 폭탄 공격을 결심하고 다이너마이트를 구하러 광산 노동자로 취업한다. 그런데 전임자가 셋이나 죽을 정도로 위험한 폭약수 조수 자리에서 일하는 일본인 노동자는 아픈 어머니의 치료비와 여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하는 가난한 집 자식이다.

“제국주의는 두 개의 빨대를 가진 거머리예요. 한쪽 빨대로는 식민지를 만들어 약소민족의 피를 빨고, 다른 한쪽 빨대로는 제 나라 노동자·농민의 피를 빨지요.”

이런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민족 해방은 군사적 승리 이상의 정치적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는 홍범도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백무아의 말을 통해 표현된다.

“나라를 지키려면, 백성들이 지키고 싶어 하는 그런 나라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이 조선에서는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여야 백성들이 스스로 지키고 싶어 할까?

백무아는 홍범도에게 조지 워싱턴 전기를 선물하고 그 안의 미국 독립선언서를 읽어 보라고 권한다. 흥미를 갖고 이것저것 묻던 홍범도는 이내 실망하고 만다.

[백무아] “아미리가[아메리카, 즉 미국]에는 상놈이 없단 말입니다. 인디언 원주민과 흑인을 제하고 백인 남자는 누구나 권리가 있소.”

[홍범도] “인디언과 흑인이 아미리가의 상놈이군.”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거병을 준비하던 홍범도가 김알렉산드라를 만나는 대목은 소설에서 가장 가슴 뜨거워지는 장면의 하나다. 김알렉산드라는 최초의 조선인 볼셰비키이자 여성 혁명가였다.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극동 소비에트 정부의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김알렉산드라는 대한광복군을 이끌던 홍범도에게 무기와 사관학교 설립 지원,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할 테니 일본과 한편인 반혁명 세력 백군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제안한다.

““아미리가 여성은 백인도 투표권이 없습니다. 이 지상에서 노동자와 농민, 여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모든 억압과 침략에 반대하는 진정한 민주공화정은 인민 정권, 쏘비에트뿐입니다.” … 그녀[김알렉산드라]가 방금 한 말의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는 그녀였다.”

홍범도와 동행한 여성 부대원이자 참모인 진포는 김알렉산드라에게 완전히 매료돼 혁명가로 살기로 결심한다. 홍범도 역시 “죽은 전봉준이 살아서 돌아왔는가” 하며 러시아 혁명 정부에 깊은 인상을 받지만, “나는 총을 든 자였고 … 아닌 것을 부술 뿐, 무엇을 만들고 세우는 일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소설이 묘사하는 홍범도의 내면은 훗날 그의 소련 공산당 가입이 그저 지원을 얻기 위한 실용적 방편만은 아니었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안타깝게도 독일 혁명의 실패 등으로 러시아 혁명은 국제적으로 고립됐고, 이로 인해 1920년대 말부터 스탈린주의 체제로 변질돼 갔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은 착취와 차별, 억압에서 해방된 사회를 잠시나마 현실에 구현했고, 당대의 진정한 투사들을 사로잡았다.

한편, 일본군이 의병대에 협조한 주민과 마을을 무참히 학살하는 대목들을 읽고 있으면 지난 75년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여 온 일, 특히 10월 7일 하마스의 반격 이후 이스라엘이 벌이는 야만적 공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식민 지배에 맞서 무장 저항에 나섰던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소설 자체가 ‘하마스의 테러’ 운운하는 이스라엘과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의 비난에 대한 반박이다.

지금 《범도》를 읽는다면 새로운 사회를 바라며 독립 투쟁에 나섰던 선배들의 열망뿐만 아니라 저항에 나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심정과 고민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독을 강력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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