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의혹’:
반재벌 정서는 노동계급 투쟁으로 나타나야 변화의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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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와해 공작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진 최 아무 삼성전자서비스 전무를 구속했다. ‘삼성 장학생들’이 암약하는 국가기구로 알려진 검찰이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리라 믿는 것은 연목구어일 것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노조 파괴 문건만 6000여 건이라고 한다. 구속된 최 전무가 최종 결재권자가 아닐 것이다. 그룹 ‘윗선’이 있을 것이다.
삼성의 노조 파괴 공작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도 아니다. 2013년에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한 바 있다.
삼성그룹은 노조 설립 조짐만 보여도 노동자들을 미행·감시·회유·협박·폭행했다.
삼성의 노조 파괴 공작은 ‘유서’ 깊다. 이것은 삼성의 성장 비결과 직결돼 있다. 삼성은 철저하게 정치 권력에 달라붙어 온갖 특혜를 받으면서 노동자들의 피땀을 쥐어짜 성장했다.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은 독재자들(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정권 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꼬박꼬박 바치면서 특혜를 받았다. 그 손자 이재용도 박근혜에 뇌물을 바치고 경영 승계를 보장받았다. 수십 년 세월 동안 유지돼 온 부패한 정경유착의 표본이다.
이병철은 생전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 된다”고 했다.
1950년대에 깡패를 동원해 제일제당 노동자들의 농성을 탄압했다. 1987년에는 삼성조선의 민주노조 설립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1980년대 후반 삼성전관의 노조를 깨는 데 제임스 리와 이근안이 동원됐다. 제임스 리는 당시 악명 높은 노조 파괴 전문가이자 안기부 끄나풀이고 미국 CIA의 하수인이었다. 이근안은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였다.
이병철이 죽자 “내가 ‘죽어도’ 노조는 안 된다”로 바뀌었다. 아들 이건희와 손자 이재용은 이병철의 유지를 충실히 받들었다.
그러나 거대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날 때마다 삼성 노동자들과 민중은 삼성 재벌의 처단을 요구했다.
1960년 4·19 혁명 때 민중은 부정 축재자 이병철의 처단을 강력히 요구했다(이병철은 3·15 부정 선거 때 이승만에게 정치 자금을 제공했다). 이병철은 일본으로 도망갔다가 박정희 5·16 쿠데타가 터지자 귀국했고, 박정희와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2016년 10월∼2017년 4월에 일어난 박근혜 퇴진 촛불 때도 민중은 이재용의 구속을 강력히 요구했다.
노동자들도 삼성에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끈질기게 투쟁했다.(‘적을 예우하는 협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한 개혁주의자의 주장은 온건함 정도가 아니라 배신적이다. 관련 기사 ‘조건준의 부패와 타락은 계급 협조 정치의 최악의 결과’를 보시오.)
특히 대중적인 정치·사회 운동이 분출하면 삼성 노동자들도 이에 고무받아 투쟁에 나섰다. 1987년과 1988년 삼성조선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설립 투쟁이 그랬고, 근래에는 삼성전자서비스를 필두로 삼성지회, 삼성웰스토리, 삼성에스원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나두식 대표지회장은 본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합의[직고용과 노동조합 인정]는 박근혜 퇴진 촛불의 연장선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노조는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에서 삼성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습니다.”
재벌에 맞설 힘의 진정한 원동력은, 공상적인 ‘재벌 개혁’론들이 아니라, 재벌에 고용돼 있는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금 재벌의 ‘슈퍼 갑질’에 분통 터뜨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 분노가 재벌사 소속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벌이는 투쟁과 만날 때, 진정한 사회 변화를 위한 힘으로 승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