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하는 신흥국 경제: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가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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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경제 위기가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화폐 가치가 올 초의 절반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올해 5월 통화가치가 급락한 후 터키 위기의 여파로 8월 말에 또다시 폭락했다. 이처럼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진 빚의 부담이 늘어나 외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수입품의 가격이 상승해 물가가 급등한다.
아르헨티나는 물가 상승률이 30퍼센트를 웃돌고 있다. 8월 말 기준 금리를 45퍼센트에서 60퍼센트로 올리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500억 달러를 받기로 했지만 상황은 진정되지 않고 있다.
터키도 8월에 본격화한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터키의 화폐 가치도 올 초 대비 절반 수준이다. 8월 위기를 촉발한 미국과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터키는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 외채가 1800억 달러(약 203조 원)에 이르지만, 외환보유액은 730억 달러(약 82조 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외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터키에 많은 돈을 빌려 줬기 때문에 터키 위기 여파가 유럽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경기 후퇴에 돌입했고, 인도네시아는 통화가치가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신흥국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난다.
특히 이달 말에 미국이 기준 금리를 또다시 인상할 가능성이 크고, 무역전쟁도 더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흥국들의 위기는 앞으로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아르헨티나 포퓰리즘 때문?
이런 상황에서 경제 위기의 원인과 대안을 둘러싼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가 공무원 고용 증대, 복지 확대 등과 같은 포퓰리즘(사회 최상층 엘리트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이 계급을 초월해 단결하는 것) 정책 때문이라고 왜곡한다. 2003~2015년에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 정당인 키르츠네르 정권이 ‘퍼 주기’ 정책을 펴서 경제 상황이 악화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게 더욱 우경화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다.
우파들의 이런 왜곡은 아르헨티나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반복돼 왔다. 2001년에 아르헨티나가 외환 위기에 빠졌을 때도 보수 언론들은 그 원인을 노동자 투쟁과 페론주의 정당의 ‘노동자 퍼 주기’로 설명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친 노동 정책 때문이 아니라 세계경제 위기에 근본 원인이 있다. 이 위기는 이윤율 저하라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했다. 역대 정부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문제를 악화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호황기에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 정부는 잉여가치의 일부를 분배하며 모든 계급의 단결을 설파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며 다국적 기업이나 세계 은행 시스템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1989년에 집권한 페론주의자 카를로스 메넴은 국영 기업 대부분을 민영화했을 뿐 아니라 일자리를 대폭 줄였고, 파업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IMF가 권고한 규제 완화, 금융시장 개방, 민영화, 노동 유연화를 적극 도입했고, 세계 지배자들로부터 “IMF의 모범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일부 대기업은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아르헨티나의 철강회사 테크넷은 1993년 멕시코 강관업체 탐사를, 1996년에 이탈리아 강관어베 달미크네를 인수했고, 그 뒤 브라질, 베네수엘라, 일본, 캐나다로 진출해 테나리스로 이름을 바꿨다.”(《크리스 하면의 새로운 제국주의론》)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은 아르헨티나 경제를 더욱 불안정에 빠트리고, 대다수 노동계급의 삶을 크게 악화시켰다. 1985년 이전에는 전체 일자리의 36.11퍼센트가 공공부문이었지만 1997년에는 그 비율이 6.5퍼센트로 줄어들었다.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지난 10여 년간 아르헨티나의 공무원 숫자가 대폭 늘었다며 거품을 물지만, 국가 재정에서 공무원들에게 지급하는 몫은 1990년 경 25퍼센트에서 2016년 12.43퍼세트로 여전히 줄어든 상태다.
외채를 늘리고, 자본시장을 개방한 것은 2001년 심각한 외환 위기로 이어졌다. 1997년 동아시아에서 금융 공황이 발생하고, 미국에서 IT 거품이 꺼지자 아르헨티나에 들어온 해외 자본들이 서둘러 빠져나갔다.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고 신자유주의적 성장의 환상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2001년 위기 때 아르헨티나에서는 한 달 동안 대통령을 세 번이나 갈아치운 거대한 대중 시위가 벌어졌다. 대규모 실업자 운동과 주민 운동, 그리고 공장 점거 투쟁의 양상이었는데, 노동자 투쟁이 더 강력했다면 혁명으로도 발전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노총(CGT) 지도부 등은 민중주의적인 약점 때문에 페론주의 정치인들로 구성된 임시정부를 지지했고, 그 결과 키르치네르 정부가 등장했다.
키르치네르 정부는 대중적 압력 때문에 일부 양보를 해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친 기업적 성장을 추구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중국 경제 성장 덕에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아르헨티나 경제도 성장했지만,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닥치자 키르치네르 정부는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그래서 키르치네르 정부 하에서 노동계급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매해 10퍼센트씩 올렸다고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식료품 가격은 2002~2015년에 1000퍼센트 이상 상승했고, 소고기와 마테 차의 가격은 2000퍼센트 가까이 상승했다. 이에 비하면 임금 인상은 턱없이 부족했다. 아르헨티나의 실질 임금은 1950~2010년 60년간 제자리걸음을 했고, 이후에도 급격한 물가 인상에 못 미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아르헨티나의 재정 지출이 늘었다고 하지만, 그중 가장 크게 는 것은 민간기업에 대한 보조금이다.
그래서 키르치네르는 대중적 반감에 직면했고, 2015년 대선에서 그 반사이익으로 노골적인 시장주의적 우파 마크리가 집권했다. 마크리는 금융 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수출 대기업에게 감세를 해 주고, 정부 부처를 절반으로 줄여 공무원을 대폭 해고하겠다며 공격하고 있다.
교훈
아르헨티나의 진정한 교훈은 민중주의적인 포퓰리스트 세력에 기대서는 개혁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는 계급 갈등이 더 격화하고, 노동자들이 조그마한 양보를 얻기 위해서도 강력하게 투쟁해야 한다. 이런 시기에 계급 타협이라는 환상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편이 무장해제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르헨티나 사례는 제대로 된 진보·좌파의 대안을 건설하지 않으면 우파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이는 한국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경제 위기가 심화하고, 한국 경제도 이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독립적 투쟁과 연대를 이끌 정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