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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판 트럼프’ 밀레이, 대통령 당선되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당선된 극우 하비에르 밀레이 ⓒ출처 Mídia NINJA

11월 19일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 투표에서 하비에르 밀레이가 집권 페론주의* 정당 후보 세르히오 마사를 상대로 56퍼센트 대 44퍼센트로 승리했다.

이번 대선은 아르헨티나 기성 정치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그런 위기 와중에 극우 인물이 서민의 편을 자처해 급부상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아르헨티나에서 보통선거가 시작된 1912년 이후 대선에서 결선 투표가 치러진 것은 두 번째고, 1차 투표에서 2위를 한 후보가 당선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선거에 전 안보부 장관 파트리시아 불리치를 후보로 내세운 주류 우파(공화주의제안당)는 1차 선거에서 패하고 분열했다.

페론주의자들(정의당과 승리전선)도 대선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군부 독재(1976~1983년) 종식 후 최초로 상원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페론주의 표밭인 주들에서 주지사 자리를 우파에 뺏겼다.

어릿광대?

지난 8월 예비선거 전에만 해도 밀레이는 기이한 유세나 하는 어릿광대로 여겨졌다.

하지만 밀레이의 실체는 노동계급의 극악무도한 적이다. 밀레이는 공공지출을 국내총생산(GDP) 15퍼센트 이하로 “참살”하겠다고 전기톱을 휘두르며 공약했다. 그 공약대로 실행되면, 공식 통계로도 전체 인구의 40.1퍼센트에 이르는 빈곤층은 복지 대부분을 잃게 될 것이다.

밀레이는 페소화를 폐지하고 미국 달러화를 기축 통화로 삼겠다고 공약했다. 그렇게 되면 페소화를 주로 보유한 서민들의 자산 가치가 추락하고 빈곤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밀레이는 인간 장기 매매 시장 합법화를 옹호하는 등 시장을 통한 가장 노골적인 약탈도 용인하자고 한다.

밀레이는 민주주의와 노동계급을 혐오한다. 밀레이는 아르헨티나 사회 문제의 연원이 모든 남성이 보통선거권을 얻은 19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고, 현 위기의 책임이 죄다 노동조합에 있으니 집권하면 노동조합을 박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밀레이는 아르헨티나 극우의 가장 반동적인 주장들을 퍼뜨렸다. 밀레이는 기후 변화가 “사회주의자들의 거짓말”이라고 거짓 비방했고,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조차 중지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새롭게 부상한 극우 하비에르 밀레이는 누구인가’)

이런 밀레이를 중심으로 옛 군부 독재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극우들이 결집했다. 밀레이의 러닝메이트 빅토리아 비야로엘은 군부 독재 시절 고위 군 간부였던 자의 딸이자, 반독재 항쟁으로 쫓겨난 군 장성들을 위한 “정의 회복”을 요구하는 극우 단체의 대표다.

이런 자들이 대선에서 승리한 가장 큰 이유는 페론주의자들이 노동자 서민의 편에 서겠다는 말뿐인 약속마저 저버렸기 때문이다.

실패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는 말도 부족할 지경이다. 아르헨티나의 올해 물가 상승률은 210퍼센트까지 치솟고, 실질 GDP는 약 2퍼센트(JP모건 추산치) 감소할 전망이다. 정부 부채는 올해 6월 현재 4000억 달러를 웃돈다.

정부는 중앙은행을 통해 페소화를 대량 발행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밀레이의 상대 후보였던 경제부 장관 세르히오 마사가 이를 주도했다. 물가 상승률이 치솟고 실질임금이 폭락했다. 임금 구매력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의 현 정부하에서 25퍼센트 감소했다. 페르난데스는 페론주의 정당 정의당 소속의 대통령이다.

현 페론주의 정부는 여러 계급이 “사회 정의”의 기치하에 단결하면 “공동선(국익)”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천으로는 전임 우파 정부의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지속했고, 경제 위기의 대가를 서민층에 떠넘겼다. 이 정부가 너무 좌파적이라서 경제를 망치고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친기업 언론들의 주장은 완전한 거짓말이다.(관련 기사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가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현 정부는 대중의 광범한 반감을 사,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일찌감치 재선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페론주의자들과 정치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부에 도전하는 운동을 건설하지 않았다.

이런 배경하에서 밀레이 같은 자가 서민의 구원투수를 자처하며 급부상할 수 있었다.

국제 극우들은 자기 동류가 아르헨티나에서 거둔 성취를 한껏 기뻐했다. 세계 주요 정치인 중 가장 먼저 밀레이의 선거 승리를 축하한 자는 도널드 트럼프였다. “당신이 매우 자랑스럽다. 당신은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진정한 전투

밀레이의 부상과 당선은 아르헨티나의 공식 정치 지형을 우경하게 만드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그러나 밀레이의 승리는 겉보기보다 압도적이지 않다.

밀레이는 1차 투표 때의 주류 우파 표를 챙겨 결선에서 승리했다. 밀레이의 결선 득표(약 1447만 표)는 자신의 1차 득표(803만 표)와 파트리시아 불리치의 1차 득표(637만 표)의 합과 거의 같다. 주류 우파인 전임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 등이 밀레이 지지를 선언한 덕에, 우파 표밭은 결선에서 대체로 표 이탈 없이 밀레이에 기울었다.(페론주의자들도 결선에서 반(反)밀레이 투표를 호소해 득표가 1차보다 조금 늘었지만, 그 폭은 크지 않았다.)

이를 제외하면, 투표에서 밀레이 돌풍은 대도시보다는 대개 농촌 지역에서 나왔다.

현재 밀레이는 여소야대 정부라는 처지를 의식해 자기 공약을 살짝 다듬고 있다. 당선 수락 연설에서 밀레이는, 아르헨티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과 단교하겠다는 애초 공약과 달리 “모든 나라와의 교역을 환영한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밀레이는 아르헨티나 사회의 가장 반동적인 부분을 고무할 것이고, 밀레이 정부가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 등 서민층에 떠넘기기 위해 이들을 악랄하게 공격하리라는 것이다.

진정한 전투는 정치권이 아니라 거리와 일터에서 벌어질 것이다.

현재의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면 아르헨티나는 1980년대에 격동과 항쟁을 불러왔던 초인플레이션(“엘 히페르”) 시대로 접어들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계급 등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투쟁 앞에서 밀레이는 지금 으스대는 것과 달리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그 투쟁이 승리하려면 아르헨티나 노동운동과 좌파는 페론주의에 대한 오랜 정치적 협력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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