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친시장·반노동으로 돌아선 문재인 정부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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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전국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4만여 명이 파업 집회를 가졌다. 서울에서 6만여 명 규모의 전국노동자대회를 연 지 열흘 만이었다. 이날 파업에는 16만 명이 참가했다. 12만 8천 명이 참가한 금속노조는 올해 들어 최대 규모의 파업이었다고 밝혔다.
이것은 “노동 존중”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친기업 반노동 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배신감·분노가 쌓인 결과다. 배제와 저임금 고착과 자회사 전성시대로 전락한 정규직 전환 정책,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파기,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 광주형 일자리 추진, 기업들을 위한 각종 규제 완화와 구조조정 등에 이르기까지.
21일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촛불 정부”가 아니고, “최저임금 줬다 뺏고 노동시간 줄였다 늘리는 거짓말 정부”라고 규탄했다.
‘답정너’
이처럼 노동자들의 저항이 증대하는 상황에 직면해서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투쟁의 이완과 분열을 노리는 책략을 구사하고 있다.
첫째, 21일 파업 하루 전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노사관계개선위원회 공익위 안을 발표해 마치 노동계의 핵심 요구를 수용한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한겨레〉는 “노정관계 경색을 풀 고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측면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공익위 안은 노동계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다. 해고자와 실업자의 기업 노조 내 활동은 여전히 제약이 크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는 대통령 공약인데도 “방안 모색”이라는 말로 모호하게 처리했다.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철회는 회피하고 법 개정 문제로 떠넘겼다. 특히, 장차 소위 ‘사용자 대항권’(작업장 점거 금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을 논의하게 돼 있다. 맞바꾸기가 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지 온라인 기사 ‘경사노위 노사관계개선위: “해고자, 교사·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은 사기’를 보시오.)
둘째, 21일 파업 다음날에는 경사노위를 출범시키고 민주노총에 참여를 압박했다. 경사노위는 민주노총 참여 권고문도 의결했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민주노총이 참여를 결정하게 되는] 내년 1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각급 위원회 논의에 참여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것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가 결정되지 못한 것을 무시하라는 주장인 셈이다! 경사노위 참가 결정 무산은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대한 분노 때문에 민주노총 내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의 입지가 좁아진 결과인데도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노총 내에서는 경사노위 참가 결정이 무산됐어도 산하위원회에는 참가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런 점을 파고들어 분열을 조장하려 한다.
셋째, 하반기 들어 분노의 초점으로 떠오른 탄력근로제 확대의 추진 시기를 뒤로 조금 미뤄 대화 모양새를 취하려 한다. 경사노위는 산하에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를 신설했고, 대통령 자신이 나서서 “국회에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확대에 관한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은 결코 아니다. 개악 의사를 철회하고 대화하겠다는 게 아니라, ‘답정너’ 식 논의를 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개악 추진 당사자가 ‘개악 보완책이라도 논의하려면 대화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우롱일 뿐이다.
11월 21일 민주당은 한국당, 바른미래당과 함께 정기국회 내에 탄력근로제 확대가 처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것도 여당이 대화를 요식행위로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잘못된 단서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가 위와 같은 방식으로 투쟁 동력을 이완시키고 분열을 조장하려는 것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민주노총은 11월 21일 ‘총파업 대회 결의문’을 통해 “정부와 국회가 노동착취-규제완화 개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2차, 3차 총파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2차, 3차 파업을 경고한 것은 옳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라는 단서는 정부나 국회가 대화 방식을 취하면 투쟁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에 경사노위나 산하 위원회 참가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이 (경사노위가 민주노총이 불참한 채로 출범하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옳게 비판하면서도) 민주노총에게 “대화의 끈을 놓아버[리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이해득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입장이다.
노동조합이 투쟁을 해서 사측이나 정부를 협상장에 끌어 내는 것과, 사측이나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전제로 사회적 대화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뿐 아니라 대통령이 나서서 “대화, 타협, 양보, 고통분담”을 촉구하는 마당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는 신자유주의가 유력하던 이전 정부들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보수 야당들과 손잡고 추진하는 규제 완화와 노동시간 유연화(탄력근로) 등이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게다가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가하더라도 본위원회 18명 중 1명이 될 뿐이다. 민주노총의 대표성은 노사정위에서보다 더 축소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미조직 노동자를 대변해 여성, 청년, 비정규직 대표가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에게 대표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교육공무직본부, 의료연대본부,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기아자동차 화성비정규직지회 등 비정규직 노조들은 경사노위에 참가한 ‘비정규직 대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대표성을 위임한 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2018. 11. 28)
무엇보다, 시기를 정해 놓고 합의를 압박하면서 사회적 대화 기구를 정부 정책의 추진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위기 관리
현재 문재인 정부의 정치 위기가 심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우경화와 배신은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만을 증폭시켰을 뿐 아니라 우파의 기를 살려 줬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더더욱 민주노총을 경사노위로 끌어들여 양보를 이끌어 내는 면모를 지배계급에 보여 주고 싶어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커져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기가 어려워졌다고 관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국가 위기 시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국가에 통합되는 경향은 더 강화됐다.
노동조합 투사들은 경사노위 참가에 반대하고 투쟁이 확대되는 흐름을 강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불참과 투쟁을 아래로부터 촉구해야 한다.
다행히 공공운수노조는 11월 27일 임시 중앙집행위 회의에서 “민주노총 [1월]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각종 위원회 참여를 중단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것은 조합원들의 불만을 고려한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각종 꼼수 방식의 경사노위 각급 위원회 참여를 거부하고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을 고무해야 한다.
2018년 11월 28일
김하영 노동자연대 조직노동자운동 팀장 대표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