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합의안 부결 이후 영국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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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는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정부의 접근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선언했다. 곧이어 메이는 바뀌는 것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메이는 모든 결정을 보류해서라도 무너져 내리는 정부의 수명을 연장하려 아등바등하고 있다.
1월 15일 메이의 브렉시트 합의안 하원 표결은 찬성 202표 대 반대 432표로 참패했다. 영국 하원 역사상 정부가 발의한 안건이 이토록 큰 표차로 패한 적은 없었다.
바로 다음 날인 16일에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이 하원에 부친 정부 불신임 투표가 306표 대 325표로 부결돼서 메이 정부는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합의안 부결 뒤, 메이는 사흘 안에 ‘플랜 B’를 하원에 제출해야 했다.
메이가 제출한 ‘플랜 B’는 ‘플랜 A[15일에 부결된 합의안]’와 거의 똑같은 안인 것으로 밝혀졌다. 차이가 있다면 하원은 앞으로 몇 주 동안 플랜 B를 “의미 있는 표결”에 부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 용어
메이는 1월 29일에 [‘플랜 B’를] 의회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중립적 안건”으로 표결에 부치려 한다.
즉, 하원의원들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두고 표결하지만 그 표결에 구속력은 없을 거라는 뜻이다.
메이는 유럽연합 지도자들에게 합의안을 수정해 달라고 애걸하려고 한다. 메이는 2월에는 “의미 있는 표결”에 부칠 만한 건덕지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기존 합의안에서 근본적 변화는 없을 것임을 이미 분명히 했다.
보수당과 노동당 의원들은 합의안에 수정 조항을 덧붙이라고 퍼부어댔다. 그러나 그렇게 수정한 안을 표결하는 과정에서 보수당의 분열은 더 심해질 것이다.
내무장관 앰버 러드는, ‘노 딜 브렉시트’[합의안 없는 브렉시트] 시나리오를 배제하는 수정안에 대해 보수당 의원들의 “자유투표”를 허용하지 않으면 장관 여럿이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보수당 지도부가 소속 의원들에게 투표 지침을 내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메이는 정부가 ‘노 딜 브렉시트’ 시나리오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 처지다. 총리 사퇴 압박이나 보수당 내 우파 성향 하원 평의원들의 반란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보수당은 대기업의 요구와 [우파적] 편견 사이에서 분열하고 있다.
금융권과 대기업들은 영국이 유럽단일시장에 잔류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래야 그들의 부와 특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아래 기사를 보시오)
한편, 보수당은 우파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인종차별과 민족주의에 기대려 하고 있다.
의회에서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에 수백만 대중은 짜증나 있다. 그러나 노동당과 노동조합 지도부는 보수당에 맞선 시위를 호소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배계급이 혼란에 빠진 와중에 노동계급 대중은 구경꾼 노릇이나 하게끔 방치될 위험이 있다.
마비
노동당은 브렉시트를 둘러싼 내부 분열로 인한 마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당이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수정안을 발의하면서 (부정직하게도 “민중의 투표”라고 포장된) 2차 국민투표 여부를 묻는 표결을 하원에 부칠 수 있다.
노동당 예비내각의 브렉시트 장관 키어 스타머는 당의 정책을 거슬러 2차 국민투표 발의를 공공연히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2차 국민투표는 위험하고, 분열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민중의 투표” 발의 캠페인을 주도하는 대기업들과 블레어주의자들은 노동계급 대중이 직면할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해법도 제시하지 않는다.
현 사태에서 최선의 대응책은 투쟁을 확대하고, 조기 총선을 밀어붙이고, 긴축 지향·인종차별적인 보수당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이다.
부자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아닌 노동자와 이주민을 위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투쟁도 있어야 한다.
사장들은 이윤을 지킬 합의안이 무엇일지를 두고 분열해 있다
금융권과 대기업들은 하원에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하원의원들에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할 합의안을 도출해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영국 판 전경련 CBI 의장 캐롤라인 페어베언은 ‘노 딜 브렉시트’ 시나리오 배제를 위한 [하원의원들의] 초당적 협력을 촉구했다.
“정부가 조언을 더 많이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근본에서 바뀌는 것은 없다.
“제 정당 지도부들이 조금씩 양보해 [영국] 경제를 보호할 길을 찾으려면, 새로운 초당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페어베언이 말하는 “경제를 보호”하라는 것은 사장들의 이윤을 지키라는 말이다.
애초에 CBI는 유럽연합 자유시장의 지배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메이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수용하는 데까지 양보할 태세였다.
그러나 이제 CBI는 메이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하원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기업들은 이제 “노르웨이 플러스(+) 합의안”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것은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스위스, 노르웨이 등을 포괄하는 유럽경제지역(EEA)*에 잔류하는 안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은 브렉시트 후에도 모조리 유지될 것이다.
보수당이 제시하는 “하드 브렉시트”, “소프트 브렉시트”, ‘노 딜 브렉시트’ 선택지는 노동계급 대중에게는 허상이다.
대부호들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보수당의 정치적 방향에 기초한 브렉시트 합의안은, [그들이 제시하는 선택지 중] 무엇으로 결정되든 나쁜 방향일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유럽단일시장에 반대해야
유럽연합은 유럽 대륙 전체에서 긴축을 단행하는 사장들의 클럽이다.
유럽단일시장의 규약들은 국유화 같은 좌파적인 정책을 가로막는다.
그런 규약들 때문에, 예컨대 제러미 코빈이 [당선하면] 이끌 노동당 정부는 [철도 산업 전체가 아니라] 개별 철도 회사들을 국가가 사들이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도 산업 전체를 국유화해 공공 서비스로 운영하지는 못할 것이다. 최소한 특정 부문에서는 민간 기업들과의 경쟁 체제가 유지돼야만 할 것이다.
이 말인즉슨, 노던레일 같은 기업들이 배를 불릴 동안 철도의 질은 나락으로 떨어지리라는 것이다.
경쟁
유럽연합이 한사코 밀어붙이는 전략은 공공 서비스를 민간 [시장] 경쟁에 개방하는 것이다.
국민보건서비스(NHS) 전반을 “재국유화”하겠다는 노동당 공약은 어떻게 될까? 유럽단일시장에 잔류하는 한 실현이 요원하다.
안타깝게도 좌파 일부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 회원국 출신자들이 영국으로] 이주할 자유를 제약하자는 주장을 추수하고 있다.
이민자들이 노동자 임금을 낮추는 것도 아니고, 공공 복지에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일들은 보수당의 긴축 정책과 기업주들의 탐욕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영국 출신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단결시키는 강력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강력한 이주민 통제는 필요 없다.
유럽단일시장에 반대하고 이주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