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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장벽 밀어붙이는 트럼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2월 15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미국·멕시코 국경장벽을 세우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 전날에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 국경장벽 설치 예산 13억 7500만 달러(한화로 약 1조 5500억 원) 배정이 큰 표차로 가결됐다. 트럼프가 요구한 액수의 약 4분의 1이었다. 이는 사상 최장이었던 연방정부 5주간 셧다운(정부 폐쇄)을 허탈한 소극으로 만드는 처사였다. 이로써 민주당은 ‘장벽은 괜찮고 액수가 문제였냐’는 조롱을 면치 못하게 됐다.

국경장벽 건설 예산 합의가 불발돼 지난해 12월 22일 연방정부 셧다운이 시작될 때만 해도, 민주당 소속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장벽 안 짓는다는 거 못 믿는 사람 있어요?” 하며 능청을 떨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경 통제 강화 자체에는 단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

셧다운이 이어지면서 진정 고통받았던 것은 노동자·서민들이었다. 연방정부 공무원 약 80만 명이 셧다운 기간 동안 잠정 해고 상태에 있거나 무급으로 일해야 했다. 도로 보수, 재난 구호, 병원, 학교, 보육시설 같은 핵심 공공서비스들이 셧다운의 타격을 입었다.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셧다운(정부 폐쇄) 중단을 요구하며 행동에 나서다 ⓒ출처 Geoff Livingston

미국 노동자들이 항의에 나섰다. 교통안전국(TSA) 노동자들이 병가 투쟁에 나서 항공기 운항에 차질을 빚었다. 이들의 저항으로 마이애미국제공항 터미널이 일시 폐쇄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곳곳을 달궜던 교사 파업이 로스앤젤레스에서 크게 벌어진 것도 저항 분위기를 조성했다. 로스앤젤레스통합교육구(LAUSD) 소속 교사 3만 3000명이 파업에 나서고 대중적 연대가 이어져, 로스앤젤레스가 한때 거의 마비되기까지 했다.

셧다운으로 경제성장률 전망이 악화하고 대규모·고수익 연방정부 사업 대금 지급이 미뤄지면서 자본가들도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결국 1월 25일, 셧다운 35일 만에 트럼프는 셧다운 종료를 선언하고 예산안 서명 마감 기한을 2월 15일까지로 연장해야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포기했다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월 5일 의회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출처 백악관

트럼프는 이 쟁점을 인종차별적 지지층을 결집할 수단으로 이용한다. 트럼프는 대선이 실시되는 2020년쯤에는 장벽을 완성해, ‘멕시코계 이주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다’는 불만에 찬 우파적 하층 중간계급과 일부 노동자들의 표를 다시 모으려 한다. 그것을 위해 대통령의 권능을 한껏 활용하는 것도 불사하려 든다.

트럼프는 이미 1월 초에 “어떻게든 장벽을 지을 것”이라며 국가비상사태 선포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당시 미국 국방부는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장벽을 건설하는 시나리오의 현실성을 검토했다.

사실 미국 정치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의제를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관철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도 이주민 수천 명을 추방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던 바 있다. 낸시 펠로시는 당시 오바마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충심으로 지지했다.

베네수엘라·이란 등 ‘안보 위협국’에 제재를 가할 목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26번이나 된다.

“트럼프가 대통령인 것이 국가비상사태”

결국 트럼프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총 80억 달러(한화로 약 9조 원)를 장벽 건설에 사용하겠다고 나섰다. 지금도 가혹한 국경 통제 정책에 고통받는 이민자들이 직접 타격을 입을 것이다. 최근 두 달 동안에 중미 이민자 3명이 미국의 국경 구금시설에서 사망했다. 그중 둘은 일고여덟 살배기 아이였다.

민주당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2월 18일 대부분이 민주당 소속인 주지사 16명이 트럼프를 고소했다.

그러나 이 ‘저항’은 요식행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소송이 몇 년을 끈 끝에 대법원까지 올라가도 패소 가능성이 큰데,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의회 입법으로 ‘저항’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한다 해도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얼마든지 되돌려 보낼 수 있다. 어찌어찌 상·하원 모두가 일치단결한다 해도 트럼프가 거부권을 행사해 버리면 그만이다. 우파에 맞서려면 민주당에 투표하라는 말이 공허해지는 대목이다.

진정 필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이다.

그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2월 18일 워싱턴DC·뉴욕·애틀랜타·시애틀 등 48개 도시에서 최소 5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대통령의 날’ 휴일이기도 했던 이날, 사람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인 것이 국가비상사태”라며 트럼프 정부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 저항도 이어질 듯하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에 미국 노동자 50만 명 이상이 파업에 참가해, 3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에도 노동자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고무적이게도, 지난해 교사 파업 물결을 일으킨 웨스트버지니아주 교사들이 2월 19일 아침에 파업에 돌입해 반나절 만에 교육 민영화 법안을 철회시키는 승리를 거뒀다.

같은 날, 미국 공식정치에 “사회주의”를 입성케 했던 버니 샌더스가 2020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놀랍게도 샌더스 출마 선언 직후 미국의 모든 주에서 3만 8000명이 27달러(한화로 약 3만 원) 소액 후원금을 보내, 3시간 30분만에 1차 모금 목표 100만 달러를 달성했다. 미국 대중 사이에 ‘민주적 사회주의’를 향한 열망이 건재함을 보여 준 것이다.

트럼프는 잔혹하고 강력하지만 전능하지는 않다. 그를 좌절시킬 대중 저항이 거리와 일터에서 이어지길 바란다. 이를 위해 미국의 사회주의 좌파가 할 일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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