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취재] 예멘 난민, 인도적 체류 이후:
세계 1위 조선 기업에서 골병 나는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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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한 난민 쉼터에서 예멘 난민을 만났다. 이곳에서 난민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A는 지난해 5월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이다. 20대 후반의 A는 일곱 남매 중 둘째이고, 남자 형제들 중에는 첫째다. 전쟁으로 경제가 붕괴돼 가족 중 누구라도 예멘을 벗어나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렇게 A는 홀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말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들 대부분에게 인도적 체류 지위를 부여했다. ‘전쟁 난민’은 난민이 아니라며 난민 지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 A도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았다. 출도 제한이 풀려 반년 만에 육지로 나올 수 있게 됐다.
제주도에서는 건설 작업장에서 5개월간 일했다. 철골 구조 위에서 작업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육지에서 친구 소개로 간 곳은 영암의 한 조선소였다.
지난해 현대삼호중공업 관련 업체들은 제주도에 가서 설명회를 하며 노동자를 모집했다.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의 이 조선소에는 현재 예멘 난민 130명가량이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는 열심히 일해 가족들에게 부족하나마 생계비를 보내 줄 수 있을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A는 한 달 반 만에 일을 그만둬야만 했다. 눈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측은 자기들이 필요해서 노동자들을 데려왔지만 대우는 형편없었다.
초과근무 103시간
A는 현대삼호중공업의 한 하청업체에 고용돼 일했다. 이 조선소는 수십 곳의 하청업체로 쪼개져 있다.
A가 한 일은 배를 단장하는 일이었다. 한편에서 배의 녹을 닦아 내면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 도료를 칠한다. A는 도료를 섞는 일을 했다.
일은 오전 7시 30분에 시작했다. 하루 12시간 노동은 기본이었다. 어떤 때는 새벽 2시까지 일했다. 쉬는 날은 일요일 하루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A가 한 초과 근무만 103시간에 달한다. 사측은 주 40시간제는 고사하고, 주 52시간 상한제도 완전히 무시하고서 잔업, 특근 꽉꽉 채워 기계처럼 일을 시킨 것이다.
기본급은 월 최저임금인 175만 원이었다. 여느 다른 작업장들처럼, 기본급이 낮으니 노동자들은 초과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A는 일한 지 한 달 반이 됐을 때 눈에 이상이 생겼다. 갑자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그만 두고 나와야 했다고 한다.
보안경과 방독마스크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A가 일하던 사진을 보고는 사측이 제공한 보안경은 방독마스크와 같이 쓰면 틈이 벌어져 보호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료에는 발암 물질이 들어 있어 꼭 보호 장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A만의 일이 아니다. 예멘 난민 B도 배에 도료를 칠하는 일을 하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호흡 장애가 왔다. 의사는 비흡연자인 B에게 담배를 많이 피우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거기서 더는 일하지 말라고 했다 한다. B도 한 달 만에 일을 그만 뒀다.
A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예멘] 친구들이 혼이 빠져서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다른 갈 곳이 없으니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처럼 예멘 난민들은 번 돈의 대부분을 예멘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다. 그래야 가족들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굶어 죽느냐 마느냐가 자신들 손에 달려 있다 보니 힘들어도 꾹 참고 일하는 것이다.
A의 사례는 한국에 사는 난민들의 처지를 보여 준다.
정부와 난민 반대 세력들은 난민과 이주민들을 ‘일자리 도둑’이라고 비난한다. 이들은 난민과 이주민들이 가장 밑바닥에서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건 말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의 조선 기업이다. 조선소는 산재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기업주들은 갈 곳 없는 난민들의 처지를 이용해 난민들을 가장 위험한 노동으로 내몰고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난민들의 노동으로 배는 멀끔하게 단장하지만, 노동자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골병이 난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현대중공업에게 대우조선을 매각해 초대형 조선소를 만들려고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려 한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공격받는 한편에서 난민·이주 노동자들도 극한 조건으로 내몰리고 있다.
난민들이 안전하게,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