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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리해고 맞서 싸우는 성진씨에스 정영희 분회장:
“정부는 ‘일자리 창출’ 운운말고 있는 일자리나 제대로 지키세요”

지난해 노동조합을 결성한 성진씨에스 여성 노동자들은 1년 넘게 정리해고와 위장폐업에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동자들은 줄기차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계속 수수방관하고 있다. 발산역 부근 원청 코오롱글로텍 앞에서 조합원들과 팻말 시위를 하고 있는 금속노조 성진씨에스 정영희 분회장(사진)을 만났다.

Q: 성진씨에스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이었나요?

자동차 시트를 제작하는 현대·기아차 4차 하청업체예요. 바로 위에 있는 원청은 코오롱글로텍이에요. 소나타, 그랜저, 모하비에 들어가는 가죽 시트를 만들었습니다. 가죽을 재단해서 봉제하고 시트 완성품을 만드는 일이라 기술을 익히는 데 1년 정도 걸립니다.

노동자들은 전부 50, 60대 중년 여성들이고, 대개 10~20년 정도 근무한 분들이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분들도 많았죠. 9년 전에는 130명이 일했고, 7년 전에 가산디지털단지로 이사오면서 인원을 감축해서 83명 정도 일했습니다.

청와대 앞 1인 시위 중인 성진씨에스 정영희 분회장 ⓒ제공 성진씨에스분회

Q: 작업이 고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가죽을 직접 나르고 팽팽하게 당기는 작업을 합니다. 엄청 힘이 들어가죠. 그래서 대부분 손가락 마디가 휘어지고, 관절염을 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끼리는 ‘하루 벌어 하루 병원 간다’고 할 정도였죠.

그리고 서서 일해요. 개별로 작업하는 게 아니라 [생산] 라인으로 공정이 돌아가요. 이 라인에 따라 기계를 움직이려면 왼쪽에 체중을 싣고 오른발로 까딱까딱 기계를 밟아 가면서 일을 해야 해요. 몸이 왼쪽으로 비틀어져서 오래 일하면 왼쪽 팔이나 다리를 못 쓰기도 해요. 오른발은 족저근막염을 앓는 경우가 많아요.

가죽 봉제 바늘은 송곳만한 큰 바늘이에요. 기계에서 가죽을 쓱 빼다가 큰 바늘이 손가락에 박히기도 해요. 원래는 바늘 나사를 풀어서 그대로 병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라인이 멈추니까 관리자들이 그 자리에서 바늘을 뽑아버려요. 다친 노동자는 병원에서 치료받고 바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해야 했죠.

Q: 임금과 노동 조건은 어땠습니까?

20년 일해도 최저임금보다 2만~3만 원 더 받는 정도였어요. 회사가 몇 년 동안 온갖 수당(상여금, 학자금, 교통수당, 간식비 등)을 깎았어요. 그래서 실제로는 최저임금도 안 됐죠. 반면 1인당 생산량은 2배로 늘어나 노동강도가 장난 아니었어요. 우리는 고개도 못 들고 서로 발등만 보고 일했습니다.

1년에 두 번 명절 상여금 10만 원을 줬는데, 사장이 조회시간에 ‘떡값 받고 싶냐?’ 하고 물어보고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하게 했어요. 유치원생 다루듯 말이죠. 그리고 업무량 다 채우는 사람만 주겠다며 야근을 강요했어요.

비용 절감한다고 화장실 용역비도 삭감했어요. 그리고 우리한테 쉬는 시간에 청소를 하라는 거예요. 쉬는 시간은 고작 10분이에요. 회사는 라인에 차질을 준다며 쉬는 시간 외에 화장실도 못 가게 했어요. 그런데 그 10분 동안 [노동자] 2명이 80명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청소해야 해요. 화장실 청소하다 3분이라도 늦으면 관리자들이 막 소리 질러요.

점심 식사도 너무 열악했습니다. 1인당 식대 비용이 1600원 정도였는데, 맨날 콩나물만 나왔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 먹고는 못 버텨요. 제발 고기 반찬 좀 달라 했더니, 마지못해 한 달에 한 번 제육볶음 같은 것을 줬습니다.

Q: 지난해 사측이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어떤 공격을 했습니까?

지난해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사장은 회사가 어렵다며 점심 식대 8만 원을 삭감하고, 유급휴무인 연차를 무급으로 처리한다는 거예요. 이런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안에 서명하라고 엄청 닦달했습니다. 최저임금 받으며 죽어라 일만 했는데, 너무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난해 1월 노조를 만들고 투쟁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Q: 그 후 사측이 정리해고하고 폐업을 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47명이 노조에 가입하자 눈치를 챈 사장이 ‘취업규칙 변경 없었던 것으로 할 테니, 노조를 만들지 말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았어요. 그동안 너무 몰라서 순진하게 당하기만 했는데, 노조를 만들면서 우리 권리를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우리가 노조를 포기하지 않자 회사는 원청에서 ‘물량을 주지 않는다’, ‘회사가 너무 어렵다’고 하더니 지난해 3월 전원 정리해고를 통보했어요. 우리는 싸웠고,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복직은커녕 5월에 폐업해 버렸어요.

Q: 회사가 의도적으로 폐업하고 물량을 빼돌렸다고 들었습니다.

20년 동안 물량이 줄어든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한 달 만에 물량이 줄어 회사 문을 닫겠다니 말이 안 되죠. 폐업 전에 원청인 코오롱글로텍 직원들이 우리 일하는 장면을 다 동영상으로 찍어 갔어요. 현재는 코오롱글로텍의 다른 하청업체가 우리 일을 하고 있어요. 코오롱글로텍도 물량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시인했어요. 명백한 위장 폐업이었던 거예요.

원청인 코오롱글로텍 본사 앞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성진씨에스 여성 노동자들 ⓒ전주현

Q: 정부에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나요?

원청이 다 그렇듯 코오롱글로텍은 자신들과 상관 없다며 나 몰라라 했어요. 그러니 우리 같은 하청 노동자가 호소할 곳은 정부나 정당밖에 없었죠.

그런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는 사장이 사업을 안 하겠다는 데 어쩔 수 없다며 내버려 뒀어요. 우리는 여성가족부, 민주당에 찾아가서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했어요.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신영프레시젼 노조와 함께 금천구청에도 사태 해결을 촉구했어요. 구청장이 민주당 소속이에요. 그런데 형식적 면담만 할 뿐 제대로 해준 게 없어요. 여가부와 정부도 모른 척했어요.

문재인은 ‘일자리 창출’ 운운하지 말고, 있는 일자리나 제대로 지키라고 말하고 싶어요.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이나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입에도 올리지 말아야 해요.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 차별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세요. 우리는 죽기 살기로 일만 했는데 정리해고 당하고 길거리로 쫓겨났어요. 우리가 피눈물 흘릴 때 문재인 정부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Q: 지난해 민주당이 국정감사에서 다루겠다고 약속하고 안 지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레이테크코리아, 신영프레시젼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민주당사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더니, 9월에 민주당이 각 사업장마다 국회의원을 배치했어요. 10월 국정감사에서 다뤄주겠다고 약속도 했고요.

저와 조합원들은 엄청 기대했죠. 국정감사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왜 투쟁하는지 알려지면 뭔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민주당이 배신을 때린 겁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만 고려한 거예요.

저는 배신감에 치가 떨리고 너무 분해서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을 펑펑 쏟아냈어요. 민주당에 달려가서 끝장을 보고 싶었어요.

Q: 최근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개악, 탄력근로제 확대 등 노동개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정부, 미친 것 아닙니까? 탄력근로제 확대는, 우리가 당했던 것처럼 사장 맘대로 연장근무 시키던 것을 법제화해 주겠다는 거예요. 이런 악랄한 사장이 있으면 정부가 막고 규제해야지 법으로 보장해 주다니, 문재인 정말 바닥을 치는 것 같아요. 노동자들이 더 거세게 싸워야 해요.

Q: 지금 투쟁 상황은 어떤가요?

코오롱클로텍이나 정부나 계속 방관하고 있어요. 정치인들도 선거가 다가오니 듣는 시늉만하고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어요.

그럼에도 현재 19명의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계속 투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노조’ 활동을 무서워했어요. 피켓 들고 있는 것도 쭈뼛쭈뼛 거리며 수줍어했죠. 그런데 이제는 투사가 다 됐습니다. 당당하게 구호도 외치고, 마이크 잡고 우리 이야기 잘합니다.

1년 동안 매일 청와대, 코오롱글로텍, 금천구청 앞에서 피켓팅과 집회를 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칼바람 맞고 여름에는 무더위, 장마와 씨름했죠.

늦은 나이에 노조 활동 시작하면서 세상이 가진 자들에게만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동법에 있는 권리가 저절로 보장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거저 좋아지는 것은 없구나, 이렇게 싸워야 얻을 수 있구나’라고 배우게 됐죠.

지금 당장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 후손들, 청년들은 이런 환경에서 일하면 안 되잖아요. 인간다운 노동을 하고, 우리 권리를 찾으려면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 필요해요. 그런 마음으로 끝까지 싸워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