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포함] 서울대 청소 노동자 휴게실 실태:
에어컨도 창문도 쉴 곳도 없는 ‘휴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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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서울대 청소 노동자가 폭염에 에어컨과 창문도 없는 휴게실에서 자다가 사망한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공분이 일고 있다.
거대한 캠퍼스 부지와 막대한 재정을 자랑하는 서울대에서 청소 노동자는 더위를 피할 곳도 없었다. 에어컨 바람 하나에도 불평등이 스며들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비극이다.
서울대 청소 노동자들은 지난해 간접고용에서 직접고용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노동환경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때와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사망한 노동자를 처음 발견한 청소 노동자는 자신은 휴게실이 너무 갑갑해서 잘 누워 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름철 장마 때 여기가 습기가 져서 바닥에 물이 맺히고 곰팡이가 펴요. 공기가 나쁘니까 숨쉬는 게 다르죠. 그러니 학생들 없을 때 학생 휴게실에서 잠깐 앉아 있는 게 다죠. [고인은] 그날 학생 휴게실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휴게실로 들어가면서 ‘덥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8월 16일 노동자가 사망한 제2공학관 청소 노동자 휴게실은 오래된 선풍기만 덩그러니 벽을 지키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선선한 날이었는데도 휴게실 안은 습도가 70퍼센트(실내 온도 29℃)가 넘었다. 실내 온도가 24℃ 이상일 때 적정 습도인 40퍼센트를 훌쩍 넘겼다.
찜통 같은 휴게실의 문을 열어둘 수도 없었다. 휴게실 바로 앞에 대형 강의실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휴게실 옆은 청소 도구 창고인데 화학 약품과 기름 걸레가 쌓여 있다. 문을 열자마자 휘발성 기름 냄새가 머리를 띵하게 만든다. 휴게실과 맞닿아 있는 벽에는 구멍도 뚫려 있다.
노동자를 창고에 처박아 둘 비품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이런 장소를 내줬을까.
사망한 노동자를 처음 발견한 청소 노동자는 그동안 학교 당국에게 휴게실 개선을 요구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전부터 계속 [학교에게] 옮겨달라고 했는데 말로만 옮겨 준다 했지 뭉그적뭉그적 대다가 사건 터지니까 임시로 학생들 있는 방으로 옮겨 줬지만, 이제 곧 학생들 오면 또 내줘야지. 그러면 우리는 공중에 뜨는 거야... 늘 서로 핑계 대더라고. 관리과는 단과대학에 핑계 대고, 단과대학은 관리과 때문에 안 된다고 하고...”
사실 서울대 다른 건물 청소 노동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본지가 취재한 건물 청소 노동자들은 수년째 휴게실 개선을 요구했지만 학교 당국이 무시해 왔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법학도서관 휴게실은 창문과 에어컨이 없었다. 뻥 뚫린 천장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기계 설비들은 이 공간이 원래 그저 ‘통로’였다는 걸 짐작케 했다. 실제로 휴게실 안쪽은 어두침침한 기계실이 있었다.
소음도 큰 문제다. 기계가 울리는 소리와 위층 카페 소리가 계속 났다.
한 청소 노동자는 “여기서 있으라니까 그냥 꾸역꾸역 있었다”고 말했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습해서 문을 열어 놓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러면 온갖 벌레, 심지어 쥐까지 들어온다. 방충망 좀 설치해 달라고 오래전부터 요구했지만 학교 당국은 겨우 한 달 전에야 설치해 줬다.
이 노동자는 청소 도구가 있는 높은 단에 올라가기 위해 얼기설기 만든 불안한 ‘계단’을 보여 주며 “이런 사소한 것도 몇년째 안 들어준다”고 한탄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서울대 당국의 우선순위에 없다.
근대법학교육 백주년기념관 청소 노동자 휴게실은 숨을 턱 막히게 할 정도로 황당한 구조였다. 겨우 1미터쯤 되는 계단 바로 밑 공간이었다. 매일 그 계단을 지나다니는 학생들조차 발밑에 청소 노동자가 있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문을 열자마자 오리걸음으로 쭈구려서 들어야가 했다.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다. 휴게실에서 늘상 허리를 구부리고 다녀야 한다. 청소 일은 허리가 많이 아픈데 정작 휴게실에 오면 허리가 더 아프다.
이곳도 에어컨은 없었다. 창문이 있지만 너무 지면과 가까운 곳이라 오히려 뜨겁게 달궈진 바닥의 더운 열기가 들어온다.
서울대 규장각은 주요 고문헌을 보관하는 중요 건물이다. 온도와 습도 등을 조절하는 기계 설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다.
이끼가 껴 있는 어둡고 축축한 계단을 계속 내려가다 보면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기계실이 나온다. 옆사람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웅’하는 큰 소리가 계속 귓전을 때린다.
이 기계를 관리하는 노동자는 24시간 근무 내내 이 소음을 들어야 한다. 휴게실은 따로 없다. 겨우 몸만 누울 수 있는 침대가 전부다. 사실상 굉음을 내는 기계 옆에서 자야 한다.
쉴 수 없는 곳에서 쉬는 노동자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
서울대 당국은 청소 노동자를 보기 싫은 짐짝처럼 어딘가에 밀어 넣고 싶은 존재로 대하고 있다. “다른 거 필요 없고 총장이 여기서 10분만 있어 보라고 해”라는 한 노동자의 말이 시리다.
서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해 9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가 서울 내 대학과 빌딩 23곳의 293개 휴게실을 실태조사한 결과, 많은 경우 지하(58군데)나 계단 밑(50군데)에 있었고, 냉방 시설이 없어서 올 여름 폭염을 선풍기로만 견뎌야 했던 곳도 69군데나 됐다.
노동부는 휴게실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했지만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강제성 있는 권고를 내리지도 않는 일이 많다.
청소 노동자 사망 후에야 서울대 당국은 휴게실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은 게 없다.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방안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여론이 잠잠해진 후 또다시 없던 일처럼 뭉개기 십상이다.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는 일의 반복인 것이다.
이에 서울대 학생들과 서울일반노조 서울대시설분회 노동자들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대대적 서명운동을 벌이고 기자회견, 항의 행동 등 서울대 당국을 압박할 활동들을 해 나갈 계획이다. [서명 운동 바로가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즉각적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