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관제권 분리 시도:
철도 통합은커녕 민영화 길로 가려는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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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감사원이 ‘철도안전 관리실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감사원이 가장 강조한 것은 “국가 철도 관제 업무*의 독립성 확보”다. 즉, 철도공사로부터 관제업무를 분리하라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부도 이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철도공사가 관제 업무를 맡아서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가령, 철도공사가 열차 지연을 국토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열차 정시율 수치를 높이려고 열차 지연 시간과 사유를 임의로 변경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 SRT(수서고속철도)보다 늦게 도착한 KTX를 먼저 보내는 등 자사에 유리하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는 박근혜 정부 시절 민영화 된 SR(수서고속철도 운영사)과의 경쟁체제가 놓여 있다. 그런데 감사원은 이런 문제는 짚지 않고, 오히려 관제권 분리를 제시했다. 이는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중앙 관제센터는 전국에서 수많은 열차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니터링하고 운행 상황을 통제하고 열차 정보를 전달하는 중추 신경이다. 관제사들은 각 역의 현장 관제원들, 그리고 기관사·수송원·역무원·신호전기원·유지보수 노동자들과 정확하고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관제권 분리는 이런 통합된 업무 수행, 정확하고 신속한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철도는 열차의 운전과 정비, 선로를 비롯한 철도 시설의 건설과 유지·보수, 이들을 안전하게 연결해 줄 신호 등이 하나의 체계 속에 있어야 한다. 철도의 여러 기능은 쪼개면 쪼갤수록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철도 노동자들과 승객의 안전이 위협 받는다.
선로 보수 노동자들에게 정확한 열차 운행 정보가 전달됐더라면,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이 책임 떠넘기기 하느라 고장 난 신호기가 방치되지 않았더라면, 사상 사고와 탈선 사고와 같은 비극들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제3의 기관이 관제 업무를 맡는 것은 철도 민영화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명박, 박근혜 모두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관제권 분리를 시도했었다.
감사원이 지적한 철도공사와 SR의 경쟁 상황이 벌어진 이유도 수서KTX 민영화 때문이다. 민영화 이후 정부는 수익성과 실적 위주의 경영 평가를 시행하며 철도공사와 SR을 경쟁시키고 있다.
내팽개친 철도 통합 공약
문재인 정부는 철도노조와 철도 민영화 반대 운동의 압력으로 지난 대선 때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하겠다고 약속했고, “경쟁 체제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철도 민영화 정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런데 국토부는 철도공사와 SR의 통합을 검토하던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 평가 연구용역’을 올해 초 중단시켜 버렸다.
오히려 지난 4월에는 철도 관제 업무를 주관할 제3의 기관인 (가칭) ‘철도안전기술원’ 설립에 관해 전문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국토부가 발주한 ‘철도현장 안전관리시스템 개선방안 연구’에는 ‘사업자 간 경쟁’을 전제로 하는 철도 관제 업무 분리를 포함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2015~2020)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 계획은 철도공사를 지주회사로 하고 그 밑에 여러 자회사를 두는 방식을 포함한다. 즉, 철도공사의 자회사들을 분할 매각해 민영화를 더 쉽게 하려는 계획이다.
결국 정부는 철도 상하통합(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 통합)을 추진하기는커녕 철도공사에서 관제 업무를 분리해, 철도공사를 경쟁하는 여러 철도 회사 중에 하나로 만들고 철도 민영화 과정을 한층 더 진척시키려고 한다.
경제 위기 심화 속에서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공약을 내팽개치고, ‘규제 혁신’을 외치며 친기업 정책을 강화해 온 정부가 ‘철도 통합’ 공약도 나몰라라 하며 철도 민영화의 길을 닦으려고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철도 민영화 시도를 좌절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