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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모랄레스 망명:
쿠데타에 맞선 대중 저항을 위한 교훈

볼리비아 자본가 세력들과 미국 제국주의가 결탁해 쿠데타를 벌여 에보 모랄레스를 축출했다. 그러나 앤디 브라운은 상황이 그보다는 복잡하고, 모랄레스가 노동 대중에게서 지지를 잃은 데는 그 자신의 정치적 목표 탓도 있고 이를 기회삼아 우파가 쿠데타를 벌일 수 있었다는 것을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모랄레스 정부의 공과 과를 온전히 알아야 우익에 제대로 맞설 수 있다 ⓒ출처 Eneas De Troya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었던 에보 모랄레스는 현재 멕시코에 망명 중이다. 볼리비아 군 장성들과 경찰들, 우파 정치인들이 모랄레스를 축출했다. 이들은 모랄레스가 10월 대선에서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며 모랄레스 퇴진 운동을 벌였다.

이것은 쿠데타다. 주로 볼리비아 동부에 기반을 둔 반동적 대자본가들, 미주기구(OAS)*, 트럼프 정부가 쿠데타를 지원했다. 트럼프 정부는 라틴아메리카 우파를 지원하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다시금 공고히 하는 데에 혈안이 돼 있다.

미국이 모랄레스 축출 과정에 개입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은 이 문제에서 어떠한 혼란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자라면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 간섭할 때마다 그랬듯 이번 미국의 간섭에도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부를 수탈하고 라틴아메리카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이윤을 얻으려는 다국적 기업들에도 반대해야 한다.

볼리비아 자본주의

그러나 일각에서 간과하는, 중요하고 분명하게 덧붙여야 할 점도 있다. 제국주의자들의 영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우리는 볼리비아에도 강력한 지배계급이 존재하고 (제국주의자들과 긴밀히 연결됐지만) 그들 고유의 중요한 자본주의적 이해관계가 이번에 작동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그 핵심에는 볼리비아 동부의 반달 모양 저지대 ‘메디아 루나[반달]’에 — 개중에도 특히 산타 크루즈시(市)에 — 기반을 둔 자본가들이 있다. 그들의 이윤은 주로 대두 재배와 소 목축에 기반한 농·축산업, 석유·마약에서 나온다. 이들은 모랄레스 집권기 내내 정부에 격렬히 반대해 왔는데, 볼리비아에서 분리 독립하겠다고 협박하고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우익 깡패 집단을 이용해 좌파적 원주민 운동 단체와 시위를 공격하기 일쑤였다.

이는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볼리비아인 다수인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극심한 인종차별도 깔려 있다. 라틴아메리카 많은 나라들에서 인종과 계급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라틴아메리카 지배계급은 대체로 노동계급보다 백인 비중이 훨씬 높고, 이들의 계급 정치에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자리잡고 있다. 볼리비아에서는 스페인 식민 점령 초기부터 원주민들에 대한 체계적 차별이 존재했고 독립 후 건설된 볼리비아공화국에도 이런 차별이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이에 맞서, 볼리비아 노동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원주민 정체성을 착취와 차별에 맞선 저항의 핵심 요소라고 여긴다.

2005년에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한 것, 모랄레스 정부가 볼리비아를 다인종 국가로 선언한 것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까닭이다. 볼리비아 지배계급이 모랄레스를 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백인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확고히 하고, 주민 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을 ‘제 분수에 맞는’ 지위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더 말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 자본가들이 모랄레스에 반대하는 것과 별개로, 몇몇 노동계급·원주민 부문도 모랄레스에 반대해 [싸워] 왔다. 볼리비아 노총(COB), 광원노조, 원주민 운동 연대체인 볼리비아원주민협회(CIDOB), ‘무헤레스 크레안도[창조하는 여성들]’ 같은 영향력 있는 여성 단체 등이 모랄레스와 충돌해 왔다.

노동계급 사이에서 모랄레스에 대한 열광적 분위기와 정치적 지지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바로 이 때문에 우파에게 기회가 생겼고, 또 모랄레스가 망명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우리는 이런 진실을 직시해야 하고 모랄레스 자신과 여당 사회주의운동당(MAS)뿐 아니라 2000년 이래 라틴아메리카를 휩쓸었던 좌파적 정부들(소위 ‘핑크 물결’)의 행적을 비판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무비판적 지지

전 세계 많은 좌파들이 모랄레스 정부를 21세기 사회주의의 혁명적 모범이라고 주장하며 무비판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모랄레스 정부는 그런 모범 사례가 아니었다. 모랄레스 정부는 개혁주의 정부였으며 근본적으로는 경제 위기 시기에 다른 모든 나라 정부들과 똑같은 경제적 압력을 받고 똑같은 계급적 선택을 했다.

2000년 코차밤바주(州) 물 사유화를 취소시킨 운동, 원주민들의 코카 재배권과 경작권을 지키기 위한 운동, 천연가스를 다국적기업의 손에 넘기는 것을 중단시키고 국유화를 요구한 운동, 2003년·2005년 두 차례나 정부를 퇴진시킨 투쟁 등 일련의 사회운동들이 있었다. 그런 운동들은 분명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뿐 아니라 볼리비아 자본주의 국가 자체에도 도전했다. 대단히 멋지고, 광범한 조직을 거느렸고, 전투적이고, 무장봉기의 요소도 띤 투쟁들이었다. 볼리비아 대중은 민중의회를 수립해 행동을 조율하며 국가 구조를 무시했고, 국가는 대중운동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모랄레스는 코차밤바의 코카 재배농들의 지도자로서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지만, 비교적 초기부터 모랄레스의 관심사는 자신의 사회주의운동당(MAS)을 통해 선거에 도전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2005년 항쟁 당시 모랄레스는 주로 기존 질서와 항쟁 사이의 조정자 구실을 했다. 모랄레스는 종교계와 함께 일련의 합의안을 제시했는데, 이 안은 겉으로 보기엔 대중의 요구를 반영한 듯했지만 실제로는 볼리비아의 자본주의 국가를 안정시키고 대중운동의 힘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모랄레스의 측근이자 이데올로그였던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는 [반자본주의·사회주의가 아니라] “안데스 식 자본주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리네라는 대중운동의 요구와 국내외 자본 사이의 중재자 구실을 할 정부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2005년에] 대중운동으로 정부가 붕괴한 후 대선 실시 방안이 제기되자, 모랄레스와 사회주의운동당은 이에 열렬히 호응했다. 그리고 대중운동이 혁명적 요구들에 근거한 대중적 권력 기관 건설이 아니라 의회제와 자본주의 국가를 도로 지향하도록 방향을 바꾸게 했다.

2005년 12월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가르시아 리네라가 부통령에 당선했다. 모랄레스 정부는 “사회운동들의 정부”를 자처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모랄레스 정부는 사회운동들의 영향을 반영하긴 했지만, 사회운동의 대표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배제됐다. 사회운동의 핵심 요구였던 제헌의회 역시 의원 자격을 정치 정당 소속으로 제한함으로써 사회운동 대표들의 참여를 크게 제약했다. 대중운동의 유명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은 국가 기구에 편입돼 대중에 기반한 활동에서 멀어졌으며, 운동의 독자성과 역동성이 줄었다.

모랄레스 정부와 볼리비아 동부 자본가들 사이의 지난한 전투는 2006~2009년까지 이어졌다. 결국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일련의 경제적·정치적 합의가 맺어졌다. 심지어 그 합의 중 일부는 노동자·원주민들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기도 했다. 당시의 합의들이 이제 모랄레스에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모랄레스를 국부(國父)로 추앙하는 추종자 집단 “에보이스모”가 성장하기도 했다. 모랄레스 개인 숭배는 그가 아래로부터의 능동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데서 멀어지고 3선 연임 제한을 거슬러 대선에 도전할 길을 열어 줬다. 3선 개헌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는데도 모랄레스는 이를 무시했다. 모랄레스 집권의 뿌리가 됐던 [사회운동의] 직접·참여 민주주의에서 한 발 더 멀어진 것이다.

이것이 10월 대선[모랄레스의 4선 도전]을 둘러싼 논란의 배경이다. 우파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부정 행위가 저질러졌다고 믿었다. 당시 개표가 중간에 수상쩍게 지연됐다가 한참 후 결선 투표가 필요 없을 만큼 모랄레스가 이겼다고 발표한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모랄레스는 국내외 자본의 권력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지 않았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와 다국적 기업들 사이의 교역 조건을 재협상했는데, 관세와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고 정부 통제를 늘렸지만 [민간 기업을] 국유화하지는 않았고 자산 몰수는 당연히 없었다. 집권 초기에 모랄레스 정부는 다른 ‘핑크 물결’ 정부들처럼 원자재 호황에 기대어 경제 성장률을 올리고 복지에 막대한 재정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성과는 컸고 많은 사람들에 이로운 것이었지만,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라틴아메리카를 타격한 이후 상황이 변했다. 계급적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서, 모랄레스 정부는 볼리비아 도시·농촌의 노동자들이 [경제 위기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결정했다. 모랄레스 정부는 경제의 ‘볼리비아화(化)’를 도모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군의 신흥 자본가들이 저임금 노동력에 기대 자신들 고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곤 했다.

성장 모델

볼리비아[경제]의 성장 모델은 여전히 농산물 가공업과 석유·천연가스·광물의 채광·수출에 기대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 다각화 시도는 어렵고, 이윤이 아닌 필요 중심의 생산을 지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성장 모델은 외국의 투자와 외채를 재원으로 삼고 있다. 환경 측면에서 이는 재앙적인데, [모랄레스 정부 시절] 볼리비아 내 아마존 우림을 530만 헥타르나 불태워 축산업을 위한 목초지를 만들고 수출용 농업 부지를 만든 것이 그 생생한 증거다. 이에 원주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어, 자신의 땅에서 쫓겨났고 이에 저항하자 탄압을 받았다. 개중 가장 놀라운 사례는 2011년에 [코차밤바 북부의 원주민 거주 구역이자 아마존 우림 지역에 있는] 이시보로 세쿠레 국립공원(TIPNIS) 지역에서 브라질 자본을 재원으로 한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개발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모랄레스 정부를 비판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쿠데타에 맞서, 그리고 쿠데타의 배후 세력이자 [새로 들어설] 우파 정부 하에서 득을 볼 부자들과 권력자들에 맞서 아래로부터 단결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볼리비아 수도 인근 원주민 도시 엘 알토 일대의 지역빈민 운동(FEJUVE)을 비롯한 몇몇 사회운동 세력들은 대중을 동원해 쿠데타에 맞서 단호하게 싸우고 있다. 이들이 전부 모랄레스나 그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 데도 말이다.

볼리비아의 사회운동이 대중을 동원할 능력은 약해졌고 개중에는 모랄레스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공격하고 지도자를 수감하는 등 탄압에 시달렸던 경우도 있다. 볼리비아의 사회운동은 2000년대 초 당시보다 취약해졌지만 저항을 조직할 잠재력이 여전히 크다. 모랄레스 정부 하에서 유엔 주재 대사를 지냈지만 지금은 모랄레스 반대파로서 좌파적 원주민 운동을 하는 파블로 솔론 로메로는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는 과거의 실수에서 배워 이전과는 다른 운동을 재건해야 합니다. 자치와 자기 조직화를 도모할 수 있는 사회운동과 새로운 주체 세력을 뿌리부터 재건해야 합니다.”

상황이 복잡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우파에 맞서는 데서도, 향후 전투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