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개혁 배신으로 역사적 참패 당한 모랄레스의 사회주의운동당(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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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에서 2005년 처음 집권해 두 차례의 쿠데타 시도에도 살아남았던 사회주의운동당(MAS)이 지난달 선거에서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MAS의 공식 대선 후보는 겨우 3.2퍼센트를 득표해 6위를 했다. MAS는 상원 의석을 모조리 잃었고, 하원 의석 130석 중 단 두 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로써 볼리비아는 신자유주의 우파 정당들이 통치하게 됐다. 10월 19일로 예정된 대선 결선 투표에서는 중도 우파 로드리고 파스와 극우 호르헤 키로가가 경합할 것이다.
MAS의 주역이었던 에보 모랄레스는 2005년 선주민계로서 볼리비아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인구 다수가 선주민계이지만 지배계급은 백인 일색인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의 집권은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줬다.
모랄레스는 물·가스 민영화에 맞선 1999년·2003년·2005년 대규모 항쟁의 여파로 권좌에 올랐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세력들이 잇달아 집권한 “핑크 물결”의 일부였다.
집권한 모랄레스는 선주민을 위한 몇 가지 개혁 조처를 시행했고, 볼리비아를 여러 선주민 집단의 법적 권리가 신장된 “다민족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모랄레스는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지배계급과 타협하고자 했다. 모랄레스는 사회 운동을 달래 동원 해제시키는 동시에 볼리비아 자본주의 수호에 힘썼다.
2019년에 이르러 모랄레스의 인기는 식었고, 그가 부지하려던 균형이 깨졌음이 분명해졌다. 권력자들과 극우는 기회가 왔다고 보고 미국 트럼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로 지아니네 아녜스를 수반으로 하는 극우 정부가 들어서, 단 며칠 만에 항의 시위대 수십 명을 살해했다. 볼리비아 극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수”를 외치며 MAS 사무실을 불태우고 선주민들을 거리에서 공개 처형했다. 모랄레스 14년 집권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인종차별적 복수였다.
하지만 그런 대규모 테러에도 쿠데타 정부는 너무나 인기가 없어서 1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2020년 재집권한 MAS는 “정치 보복은 없다”고 선언하며 쿠데타 세력 숙정을 거부했다. 금융가 출신인 중도 좌파 대통령 루이스 아르세는 MAS가 은행과 제국주의자들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그들을 안심시키는 데에 주력했다.
당시 볼리비아의 경제 상황이 바뀌고 있었다. 그전까지 MAS 정부는 에너지 가격 폭등에 기대 거둔 막대한 천연가스 수출 수익을 이용해 자본가-노동자 사이에 균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가스 수출 수익이 급감하면서 볼리비아 경제의 주도권은 세계경제에서 점차 중요해진 리튬 수출을 주도하는 민간 자본가들로 넘어갔다.
MAS 정부는 볼리비아 자본주의의 이익을 도모하며 신자유주의 조처를 잇달아 시행했다. 민간 자본가들의 수출 가격 책정을 자유화하고 국내 소비가 상한선 규제를 철폐했다. 물가가 상승하고 서민 생계비 곤란이 심해졌다.
그런 규제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던 쿠데타 세력과 자본가들은 사기가 올라 MAS를 맹공격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변화와 정치적 지형 변동 속에서 MAS도 분열했다. 하지만 이는 좌우 분열이 아니었다. 모랄레스는 아르세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잇따른 정쟁 속에 모랄레스를 상대로 성추문이 제기되기도 했다(모랄레스 지지자들은 이를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성추문이 패인은 아니다. 진정한 패인은 MAS가 부패하고 개혁을 배신한 정당으로 여겨지며 인기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 틈을 타 2024년 6월 육군사령관 후안 호세 수니가가 모랄레스의 대선 4선 출마 시도에 반대하며 쿠데타를 기도했다. 쿠데타는 미수에 그쳤지만, MAS 역시 타격을 입었다.
한때 희망으로 비쳤던 MAS는 환멸의 대상이 됐고, 신물이 난 사람들은 우파에 투표하거나 아예 투표에서 이탈했다. 무효표가 19.2퍼센트로 전례 없이 높았다.
10월 19일 결선 투표에서 누가 승리하든 볼리비아 사회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특히 쿠데타를 공공연히 지지하는 극우 후보 키로가가 당선하면, 볼리비아 극우는 피의 복수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파스 역시 선거에서는 짐짓 극우와 거리를 뒀지만 볼리비아 지배계급을 더 이롭게 할 강경 신자유주의 공약들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볼리비아 대중이 바라는 진정한 사회 변화를 이룰 힘은 대중 자신에게, 특히 광산과 공장 노동자들에 있다. 돌아올 우익 정부의 공격에 맞서려면 대중 저항의 힘이 되살아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