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연금 개악 반대 대파업 :
1995년 이후 최대 규모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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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임금·연금·노동자 생활 수준에 대한 공격이 몇 년 동안 이어진 끝에, 1995년의 거대한 노동자 투쟁 물결 이후 최대 규모의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 찰리 킴버는 우리 모두가 이 투쟁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전한다. (이 기사는 본지 웹사이트에 실린 12월 6일자 파업 소식 기사를 이후 상황을 반영해 킴버가 개정·증보한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연금 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이 분출하면서, 12월 5일 대규모 파업이 프랑스를 휩쓸었다.
철도 등 몇몇 부문 노동자들은 5일 이후에도 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 기사를 쓰는 12월 9일 현재 대규모 공동 파업과 시위가 프랑스를 수놓고 있다.
노동자들의 이번 대규모 행동은 지속적인 파상 파업으로 우파 정부의 연금 공격을 꺾었던 1995년 이래로 가장 중요한 저항이 될 것이다. 파업 첫날인 12월 5일 시위의 규모는 1995년 투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보다도 더 컸다.
진보 성향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최신호의 표제는 이랬다. “절반 지난 마크롱 임기: 반란을 두려워 하다”
연금 문제가 [투쟁에서] 중심에 놓여 있지만 이 파업은 사회 전반에 퍼진 훨씬 더 광범한 고통을 대표하는 초점 구실을 하고 있다.
파업 효과가 매우 크다. 파업 첫 주 떼제베(TGV) 고속 열차와 시외 열차의 약 90퍼센트가 운행이 취소됐다. 파리에서는 16개 지하철 노선 중 5개 노선만 운영됐는데, 그조차도 평소에 비하면 운행률이 크게 줄어든 상태로 운영됐다.
프랑스 북부 도시 릴의 교통은 대부분 마비됐다. 지하철 노선 2개 중 1개는 완전히 운행이 중단됐으며, 수많은 버스 운행이 취소됐고, 노면전차(트램)는 30분마다 1대씩만 운행됐다.
에어프랑스는 항공 관제사들의 파업으로 국내선과 근거리 국제선의 30퍼센트가 취소됐다고 발표했다. 이지젯 항공사 또한 큰 타격을 입었다.
초등 교사 70퍼센트, 중등 교사 60퍼센트가량이 파업에 참가했다.
에펠탑도 문을 닫았다.
노란 조끼 운동 시위대의 동참
파리에서 행진하던 철도 기관사 피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저항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다려 왔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전 파업들은 파업하는 시늉만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은 매우 훌륭합니다.
“사람들은 ‘다 함께’라고 외치며 행진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현실화할지를 이번 파업에서 얼핏 볼 수 있습니다.
“저는 20년 전 국영 철도공사(SNCF)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50세에도 은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의] 계속된 공격에 직면했습니다.
“처음엔 정년을 52.5세로 연장하고, 연금은 줄였습니다. 그리곤 또다시 정년을 57.5세로 연장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우리를 지금보다 더 오랫동안 부려 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파업에 참가한]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연금 개악은 우리에겐 매우 커다란 타격입니다. 매달 수백 유로[수십만 원]의 연금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는 여기서 40년 넘게 일했습니다.
“갈수록 조건은 악화되고, 우리 중 상당수에게는 최저임금에 불과한 임금을 받으며, 70세가 넘어서야 학생들 앞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어요?”
수많은 도시의 병원 노동자들도 파업에 들어갔다. 또한 20개 지역의 우체국 노동자들도 노동조건 변화 문제로 국영 우체국에 맞서 파업에 돌입했다.
민간 기업의 많은 부문 노동자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트럭 운전수, 대형마트 노동자들, 식당 체인과 식품업체 노동자들 등이 파업했다. 12월 5일에만 시위가 250건 넘게 벌어졌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은 전국적으로 150만 명이 행진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내무부도 시위 참가자가 80만 명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파리에서는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경찰 6000명이 배치됐으며, 파리·낭트·보르도·렌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했다.
파리에서 경찰은 파업 중인 소방관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소방관들이 시위 진압 경찰에 맞서 싸웠다.
지난 1년 동안 마크롱에 맞서 싸운 노란 조끼 운동 시위대가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행동에 함께했다.
삶은 팍팍하고, 공공 서비스는 쇠락하고 있다는 생각이 광범하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11월 여론조사를 보면, 프랑스인 89퍼센트가 이 나라는 “사회적 위기”를 겪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부문의 파업 노동자들과 시위 참가자들을 한데 모으고, 투쟁이 승리하기도 전에 노조 지도부가 투쟁의 섟을 꺾는 시도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파업으로 끝나지 않고 노동자 투쟁이 이어지다
파업이 단지 12월 5일 하루로 끝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여러 부문의 노동자들은 매일 모여 파업 지속 여부를 투표로 결정한다. [이 기사를 편집하는 11일 현재] 철도 노동자들은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파업 첫날인 12월 5일] 뷰슈뒤론 지역 라메드 정유공장의 노동총동맹 조합원들은 최소한 12월 9일까지 파업을 지속하겠다고 선언했다.
툴루즈에서는 대학과 초·중등 교사 300명이 집회에서 최소한 12월 10일까지 파업을 지속하는 것을 가결했다. 노동자들은 연금 개악 철회뿐 아니라, 파업 기간 임금 보전을 요구했으며, 매주 열리는 노란 조끼 시위 참가를 결의했다.
12월 5일 철도 노동자들은 파리 북역에 모여 다음 행동을 결정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 파리 제8대학 학생들, 낭트 지역의 노란 조끼 시위대 일부도 투쟁에 연대해 그 자리에 동참했다. 이들은 파업을 이어가기로 투표했으며, 파업위원회를 선출했다.
[12월 5일] 항구 도시 르아브르에서 노동자 200명 규모의 집회가 열려 수많은 부문의 파업 노동자들이 한데 모였다. [극좌파 단체인] ‘레볼루시옹 페르마농[연속혁명]’ 웹사이트를 보면 교육 노동자, 항만 노동자, 금속 산업과 석유 화학 노동자, 공공 서비스를 담당하는 여러 부문 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그리고 노란 조끼 운동 시위대 일부와 학생들이 참가했다. 노동총동맹, 연대·단결·민주노조, 프랑스 중등 교원 노조(FSU), ‘노동자의 힘(FO)’ 조합원들과 프랑스대학생연합(UNEF)뿐 아니라, 많은 미조직 노동자들도 집회에 참가했다.
이 집회에서는 투표를 통해 [적어도] 주말까지 파업을 지속하며 도로를 봉쇄하기로 결정했다. [현장조합원들이] 파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런 집회가 모든 곳에 필요하다.
이는 현장조합원들의 주도력을 키우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
[파리 인근 도시] 르부르제에서 열린 파업 집회에 참가한 철도 노동자 한 명은 이렇게 발언했다. “파업에서 관중이 되지 말고, 주인공이 되자.”
1995년 투쟁처럼, 그때보다 더 잘 싸우자
1995년 프랑스 노동자들은 우파 총리 알랭 쥐페의 대대적인 연금·복지 삭감 공격에 맞섰다.
10월 10일 인상적인 공공부문 하루 파업이 벌어졌고, 약 50만 명이 거리를 휩쓸었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투쟁을 이어가기를 주저했다.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하루 멋지게 싸웠지만,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위가 새롭게 벌어지고, 10월 10일과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개악에 맞선] 노동자 시위도 계속됐다.
결국 노동조합 지도부는 압력에 밀려 11월 24일 더 많은 파업과 시위를 벌여야 했다. 호응이 엄청났다. 80만 명이 행진에 나섰을 뿐 아니라, 특히 심각한 공격을 받던 철도 부문은 활동가들이 탄탄하게 조직돼 있었고 전면 파업을 조직했다.
며칠 후 철도 파업은 파리 시내버스·지하철로 확산됐고, 이후 우편·가스·전기·통신 부문 소수노조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각 부문의 파업 노동자들은 매일 대중 집회를 열어 투쟁이 지속되게 했으며, 파업 노동자들은 부문을 뛰어넘어 지역 단위 집회로 모이기 시작했다.
12월 초 정부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학생들에게 대폭 양보했는데, 이는 오히려 저항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우편·가스·전기·통신 파업이 확대됐다.
12월 7일 프랑스 전역에서 130만 명이 행진을 벌였다. 수많은 도시들에서 1936년 대파업 이래로 최대 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동안 내내 철도·버스·지하철·우체국 등에서 무기한 파업이 지속됐다. 정부는 먼저 철도 노동자들에게 양보했으며, 이후 다른 부문에까지 양보를 거듭하다, 결국 개악안의 핵심 요소를 다 철회했다.
파업이 계속됐다면 총리가 퇴진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지도부는 파업을 중단했다. 노동자들은 승리를 거뒀지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었다.
승리를 이끈 비결은 노동자들의 연대 파업과 일부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을 요구하며 활동한 것이다.
마크롱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부딪친 이유
프랑스는 연금 제도가 영국보다 훨씬 좋다. 일부 노동자들은 62세에도 은퇴할 수 있고, 연금의 소득 보장 비율도 영국보다 높다. 이런 제도의 효과 중 하나는 프랑스의 노인 빈곤율이 영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철도 노동자와 같은 몇몇 부문은 투쟁으로 더 좋은 조건을 따내기도 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지하에서 일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다른 부문 노동자들보다 정년이 빠르다.
집권 정부들마다 연금 제도를 야금야금 악화시켰지만, 근본적 개악을 단행하지는 못했다.
마크롱은 다른 신자유주의자들이 실패한 연금 개악을 성공시키려 벼르고 있다. 마크롱의 계획에 따르면 연금을 전액 수령하기 위해선 모든 노동자들이 최소 64세까지 일을 해야 한다.
마크롱은 [직종별 차이가 있는] 특별 연금 제도를 모두 폐지하고, 모든 노동자들에 적용되는 단일 연금 제도를 만들려 한다. 사람들은 [입사부터 퇴직까지의] 총 노동시간에 따라 “점수”가 집계된다[소위 ‘점수제 연금 개악’]. 하지만 그 점수의 가치는 차후에 바뀔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연금은 삭감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대부분의 민간 부문에서 연금 지급액 산정 기준으로 임금이 가장 높은 25년이 쓰인다. 공공부문은 퇴직 전 마지막 몇 해의 임금이 기준이다. 그런데 마크롱은 입사부터 퇴사까지 받은 임금의 전체 평균을 기준으로 연금 지급액을 산정하도록 개악하려 한다. 이렇게 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은 더 오래 하지만 연금은 더 적게 받게 된다.
파시스트들이 투쟁에 악영향을 미치려 한다
마린 르펜이 이끄는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옛 국민전선)은 파업은 지지하지만 노동조합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민연합은 거리 시위대를 일부라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이에 노동조합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노동총동맹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들을 인종차별로 분열시키는 극우는 이곳에 발 붙일 수 없다.
“프랑스가 직면한 문제는 이주민 때문이 아니다. 부의 [불평등한] 분배 때문이다.
“우리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체류 자격에 무관하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근본적 해방의 원칙에 입각해 주장한다. 이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신장되도록 할 것이다.”
이처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대중 운동이 활발한 상황에도 필요할 것이다. 최근 마크롱과 그의 지지자들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 이슬람 혐오 조장을 강화했다.
11월에 마크롱은 극우 잡지에 인터뷰를 했다. 그 잡지는 “로마인[‘집시’]에 대한 차별, 혐오, 폭력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을 만큼 인종차별적이다.
여기서 마크롱은 자신이 이주민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이렇게 말했다. “내 목표는 프랑스에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