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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붙잡고 쓰러지는 IT 노동자들:
특별연장근로 확대는 살인적 ‘공짜 야근’ 늘리기

"제발 집에 좀 보내 달라"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즐겁게 해야 할 IT·게임산업의 이면에는 과로에 시들어 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1월 31일 정부가 특별연장근로 인가 확대 시행을 강행했다.

대형 재난 등 특수한 상황만이 아니라 마감 임박, 공사 기간 지연, 대량 리콜 등 ‘경영상 필요’에 의해서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다는 게 골자다.

과로와 야간 노동에 심신이 병들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공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IT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주 52시간제 무력화에 대한 큰 불만이 나오고 있다.

컴퓨터 앞 ‘노가다’

마감에 쫓겨 떠밀리듯 하는 초과 노동은 IT 노동자들에게 익숙한 고통이다. “주 52시간제 이전에는 일상이 특별연장근로”였다고 말할 정도다.

IT 노동자들은 새해나 어린이날, 휴가 시즌이나 이벤트 기간 또는 신제품 출시, 게임이나 프로그램 업데이트 등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 전후로 집중적으로 초장시간 노동을 한다.

회사가 고객사로부터 마감 기한이 말도 안 되게 촉박한 계약을 따 오기 때문인데, ‘날짜부터 박아 놓고 노동자를 쑤셔 넣는 식’이다.

이 시기에는 집에도 못 가고 회사에서 주 70~100시간 노동을 연달아 하는 일이 벌어진다. 게임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노동자를 “갈아 넣어 ‘으드득’ 소리가 난다”는 의미에서 ‘크런치 모드’라고 한다.

“주 52시간제 도입 전까지는 주당 100시간 일하는 것도 다반사였죠. 수당도 없었고요. 짧으면 1~2주부터 길게는 두세 달까지 그렇게 일했습니다.”(S게임업체 노동자)

“주 70~80시간으로 두세 달 일하고 일주일 쉰 뒤 다시 크런치 모드에 돌입한 적도 있어요.”(N게임업체 노동자)

어처구니 없게도 IT 업계에서는 밥 먹듯이 야근을 해도 수당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포괄임금제 때문이다.

공짜 야근

포괄임금제는 연봉 계약을 할 때 수당을 미리 포함시킨다는 개념인데, 실제로는 무제한 초과 노동을 공짜로 시킬 수 있는 제도다.

2013년 한 조사에 따르면 초과근로수당을 전혀 지급받지 못한다는 IT 노동자가 약 77퍼센트에 달했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에는 70퍼센트가 시간외근로수당을 못 받았습니다. 지난해부터 수당을 받는데 임금이 30~40퍼센트 인상된 경우도 있었습니다.”(곽창용 한국마이크로소프트노동조합 사무국장)

아예 퇴근 시간을 기록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부당하게 못 받은 연장근로수당을 받으려고 싸우고 있어요. 연장근로 사실을 본인이 직접 증명해야 하는데, PC 로그 기록을 열어서 확인해 봤더니 최근 3개월 기록까지만 남도록 설정돼 있더라고요.”(안종철 한국오라클노동조합 위원장)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 IT 업계 일부에서 노조가 생긴 뒤 포괄임금제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규모가 작고 노조가 없는 다수 사업장에서는 포괄임금제가 강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제 시행 유예와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준 확대로 주 52시간제가 무력화되면 살인적인 ‘공짜 야근’이 더 심각해질 것이다.

현행법상 특별연장근로 신청 시 “노동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지만 무노조·취약노조 사업장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개인이 회사와 상대하면 사인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해요.”(S게임업체 노동자)

이렇게 노조가 없거나 취약한 곳에서 조건이 공격받기 시작하면 노조가 있는 곳들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기존 단협에 명확한 제어 규정이 없는 경우 사용자들이 그 틈을 파고들거나, 특별연장근로가 시행된 타 업체의 사례를 들먹이며 노동자들을 압박하기가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규제하라

고부가가치 산업인 IT 회사들이 막대한 이윤을 얻는 동안 노동자들은 건강과 목숨을 위협받았다.

2016년 넷마블에서는 1명이 자살하고 2명이 심혈관계 질환으로 돌연사하는 죽음의 행렬이 일어났다. 당시 넷마블에서는 일주일에 3회 이상 야근한다는 응답이 48퍼센트에 달했다.

수면 부족과 업무 스트레스는 우울과 불안, 자살 충동도 일으키는데, 게임 노동자의 자살 시도 경험은 50명 당 1명 꼴로 전체 국민 평균보다 5배 높다(2012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설문조사 결과).

그런데도 대통령 직속 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장병규는 “기업들이 기로에 서 있는데 주 52시간제가 개인의 일할 자유를 빼앗는다”며 핏대를 세웠다.

그러나 IT 기업주와 정부가 말하는 자유란 “제발 집에 좀 보내 달라”고 절규하는 노동자들을 붙잡아 놓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착취할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외면하고 자본가들의 이윤 보장에만 혈안이 돼 있는 문재인 정부는 ‘노동 존중’ 운운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