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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유예한 문재인 정부:
장시간 노동 ―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살인마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잔업, 특근에 시달리는 제조업 노동자들. 지난해 과로사는 457명에 달했다 ⓒ이윤선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하루 8시간 노동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그러나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에게 먼 나라 얘기다.

201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주 40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는 1042만 명에 이른다. 주 60시간 초과 노동자도 113만 명에 달했다.

2017년 한국 노동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24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265시간 더 많았다. 33일을 더 일한 꼴이다.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이 추가 소득을 얻으려고 자발적으로 야근 등 초과 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며 “주 100시간 일할 자유”를 외친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의 말은 최신 사례다.

그러나 주 60시간 초과 노동자의 47퍼센트는 임금을 최저임금 이하로 받았다. 시간당 임금이 낮을수록 주당 노동시간은 길어졌다.(2014년 기준, OECD 발표)

저임금이 장시간 노동을 낳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아도 기본급이 낮아서 잔업, 특근 등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으면 연봉 수준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자동차 생산직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돌연사

과로로 인한 질병으로는 뇌 또는 심장의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발생하는 뇌·심혈관계 질환이 대표적이다.

심각한 피로 누적과 수면 부족은 혈압과 심장박동의 고유한 리듬을 깨뜨리고 고혈압이나 동맥경화를 악화시킨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가 3달간 주 60시간 이상 일하면 만성 과로로 사망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은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48퍼센트 높인다.

한 해 1000명이 넘는 질병 산재 사망자 중 40~50퍼센트가 뇌심혈관계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지난해 그 수는 457명이었고, 2019년 1월부터 9월까지만 해도 무려 386명에 달했다.

2018년 산재로 판정된 뇌심혈관계 질환 발병자 수는 6300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과로 산재는 인정률이 30퍼센트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과로는 호르몬 분비에 이상을 일으켜 신진대사를 망가뜨리고 만성질환과 암, 유산, 기형아 출산의 위험을 높인다.

부조리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가 우울과 불안, 자살 충동 등을 유발한다는 사례와 연구 결과도 많다.

2015년 일본의 한 광고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격무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그는 “죽더라도 포기하지 말자”는 슬로건을 암송하게 만드는 회사에서, 1달에 100시간 넘는 추가 노동을 하고 때로는 53시간 연속 노동을 했다.

그리고 죽기 전 이렇게 썼다. “자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감정이 다 사라졌다. 매일 다음 날이 오는 게 무서워 잘 수 없다. 살기 위해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

2017년 8월 한국의 한 사회복지 공무원도 3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다가 끝내 자살을 택했다. 그도 이렇게 썼다. “나에게 휴식은 없구나. 일이 자꾸 쌓여만 가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

그 해에만 사회복지 공무원의 여섯 번째 자살이었다.

과로 지옥으로 불리는 우체국에서는 2008~2017년 사이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29명, 암으로 55명, 근무 중 교통사고로 25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23명이 자살했다.

2017년 9월, 한 집배 노동자가 유서를 남겼다.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

근면성실은 전 세계 모든 사장들이 외치는 노동자의 ‘미덕’이다. 나태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계발서들의 흔해 빠진 주제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워커홀릭’을 찬양한다.

그러나 오늘날 과로사가 만연한 현실은 그런 ‘미덕’을 우직하게 따른 결과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부조리한지 드러내 준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는 근면성실하게 노동할수록 삶의 의욕을 잃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몸과 마음이 병든다.

실업과 과로, 동전의 앞뒷면

또 다른 모순도 있다.

세계로봇연맹에 따르면 한국은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투입되는 로봇의 수가 531대로, 세계 평균인 69대에 비해 월등히 많다.

그러나 발전한 기술과 기계는 인간이 더 적은 시간 노동하면서도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가능성을 현실화하기는커녕 실업과 장시간 노동을 낳고 있다.

자본가는 기술이 좋아지는 만큼 필요 인력을 적게 계산하거나 업무 속도를 높여 노동자가 전보다 더 많이, 빠르게 일하게끔 만든다.

고용돼 있는 노동자가 과로에 빠지는만큼, 자본가의 눈에 ‘불필요한’ 인력들은 실업자가 돼 빈곤에 빠진다. 그리고 이런 실업자층의 존재는 고용돼 있는 노동자에게 또다시 노동 조건 하락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은 열악한 일자리 수용이냐 아님 ‘백수’냐의 갈림길에서 고통받는다. 경험을 명분으로 공짜 노동과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인턴 일자리에라도 응할 수밖에 없다.

직업계고 학생들도 희생양이 된다. 2011년 기아자동차에서 현장실습생이 주말 특근과 야간 노동에 투입되다 뇌출혈로 사망했고, 2017년에도 현장실습생으로 콜센터에서 일하던 17세 여학생이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한 마디를 남기고 자살했다.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제를 유예하고 탄력근로제 확대로 최대 6개월 동안 64시간 노동을 허용하려 한다. 정부 스스로 고시한 만성 과로 기준을 공문구로 만들고 과로사를 합법화하겠다는 것과 같다.

문재인 정부가 입발린 거짓말로 노동개악을 강행하는 동안, 지금 이 시각에도 노동자들은 쏟아지는 업무에 파묻혀 언제 돌연사할지 모를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