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 대책으로 집값 하락할까?:
주택난 해결에 턱없이 부족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
〈노동자 연대〉 구독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던 전 청와대 대변인 김의겸이 얼마 전 총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부동산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고 꼬리 자르기 한 것일 테다.
그런다고 민주당 정부가 서울 부동산 폭등의 책임을 피해 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값은 43퍼센트 상승했다. 상위 1퍼센트가 지난 2년여간 부동산으로 이득을 본 돈이 1인당 49억 원에 달한다(경실련). 평범한 노동자들은 평생을 일해도 못 모을 돈을 부자들은 앉은 자리에서 그냥 벌어들인 것이다.
그러니 집 없는 사람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불평등이 쟁점이 될 것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평등 심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 등 자산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단 30명이 주택 1만 1000채를 가지고 있다. 10살 아이가 주택 19채를 소유한 경우도 있다.
반면 청년 셋 중 하나는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를 전전해야 한다. 서울의 청년 단독 가구 중 37퍼센트는 소득의 30퍼센트를 임대료로 내고 있다. ‘흙수저’의 비애인 것이다.
경기가 악화하고 실업 문제가 심해지면서 이주노동자 8명이 방 두 칸에 모여 살거나, 5인 가족이 10평도 안 되는 원룸에서 사는 등의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집값 상승의 원인
민주당 인사들은 흔히 집값 상승을 박근혜 정부의 정책 탓으로 돌린다. 물론 서울의 아파트 값 상승은 2016년경부터 시작됐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경기 부양을 이유로 금리를 최저 수준으로 낮추고 온갖 부동산 규제 완화를 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집값 상승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도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도 과거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노동자와 서민들의 주택난 해결보다 기업들을 위한 경제 성장 부양에 우선순위를 둬 왔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2퍼센트에 겨우 턱걸이했다. 이는 1997년 IMF 외환 위기와 2009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지난해 상장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직전 해에 견줘 40퍼센트가 줄었다.
이처럼 기업의 이윤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 경기를 부양하려고 금리를 역대 최저(1.25퍼센트)로 낮췄다. 이에 따라 이윤율이 낮아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예금 등으로 존재하는 부동자금이 1000조 원에 달한다. 이런 돈들이 부동산과 주식 등으로 흘러들어 거품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부동산 규제는 뒷북이거나 솜방망이로 진행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18차례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지만 집값 상승을 막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 발표한 12·16 대책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언론들이 “역대급”이라고 부르는 이번 대책도 별 효과가 없었던 지난 정책들의 연장선에 있다.
12·16 대책의 핵심 내용은 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규제하는 것이다. 15억 원이 넘는 아파트의 경우 담보 대출을 금지하고, 9억 원이 넘는 고가 주택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기존 40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인하하는 것이 골자이다.
그러나 앞서 “역대급”이라던 2018년 9·13 대책도 과거보다 대출 규제를 강화했지만(투기과열지구 내 2주택자 주택담보대출 금지 등) 금세 효과 없음이 드러났다. 몇 개월 간 조정기간을 거치고서 부동산 가격은 다시 가파르게 올랐다. 시중에 유동성이 많은 상황이라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되면 대출 규제를 해도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16 대책에 종합부동산세 강화가 포함돼 있지만 여전히 미약하다. 12·16 대책에서 종부세율은 기존보다 0.1~0.3퍼센트 인상됐다. 2018년 9·13 대책 때의 인상폭(0.2~0.7퍼센트)보다 낮은 수준이다.
9·13 대책이 나왔을 때도 자유한국당과 우파들은 “세금 폭탄”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9·13 대책이 반영된 2019년 종부세 평균 세액을 보면, 전체 종부세 과세 대상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시세 기준 17억 6000만 원 이하 1주택 소유자는 종부세 부담이 연평균 33만 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여전히 세금 계산의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는 정부의 말과 다르게 턱없이 낮다. 경실련에 따르면 서울 집값의 기준이 되는 25개 아파트 표준지의 2020년 공시지가는 시세의 33퍼센트에 불과하다. 고가빌딩의 공시지가도 시세의 37퍼센트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법인이나 주택임대사업자의 부동산 소유에 막대한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서울에서는 다주택자 소유 주택 80만 채 중 47만 채가 임대주택으로 등록돼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반면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한 건설투자는 신속하게 확대하고 있다. 올해 예산안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지난해에 견줘 18퍼센트나 늘어 23조 원에 달한다.
이런 돈이 양질의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쓰인다면 서민 주택난은 금세 해결될 것이다. 이미 반환되는 용산미군기지 터에 대규모 공공임대주택을 짓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기업의 이윤을 보조해 주는 방향이기 때문에 이런 실질적인 개선책은 실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세금으로 기업들에게는 돈벌이를 보장하는 민자사업 방식(민영화)으로 공공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철도 건설, 서울의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 등이 다 그렇다. 그러면 결국 공공요금이 인상돼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이다. 부패 문제도 커질 것이다.
결국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대규모 투자 계획들이 부동산 가격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집값을 들썩이게 할 개발 정책들도 연신 발표되고 있다. 수서역세권 개발, 여의도 26배 면적의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등.
이처럼 실물 경제가 침체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친기업적 경기부양 정책을 지속해 온 것이 부동산 가격 급등의 주요 배경이다. ‘빚 내서 집 사자’는 분위기 속에 가계부채 시한폭탄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총선 부동산 정책
친시장 민주당·한국당, 친서민 정의당·민중당
자유한국당은 더욱 노골적인 친시장 정책을 주장한다. 자유한국당은 “시장중심 자율경제”로 부동산을 안정화시키겠다며 규제를 완화하고 종부세를 인하하겠다고 한다.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내리겠다고도 한다. 그러나 집이 투기 수단이 된 상황에서 비싼 민간분양 중심의 아파트 공급은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민주당은 정부가 기존에 밝힌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을 냈다. 청년·신혼부부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대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청년·신혼부부가 아닌 무주택자에 대한 대책이 없을 뿐 아니라, 현재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이 취지에 걸맞지 않게 너무 비싼데도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은 전혀 없다.
시민단체인 주거권네트워크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총선공약이 “20대 총선에 비해 후퇴했다” 하고 평했다. 자본가에 기반한 두 주류 양당이 경제 악화 속에 더욱 친시장적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택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시장 원리가 아니라 노동자·서민들의 필요를 우선해야 한다. 정의당·민중당과 같은 진보정당들은 노동자·서민의 입장에서 더 나은 개혁 방안들을 내놓았다.
정의당은 전월세를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인상하지 못하게 하는 전월세상한제와, 전세 계약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고 2회 계약 연장을 보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제시했다. 또 공공택지의 민간 매각을 중단하고 정부가 직접 공영 건설해 건축비를 낮추고,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 등을 도입해 장기공공임대주택과 “반의 반 값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정의당 공약에는 다주택자와 기업들의 종부세 인상 계획도 포함돼 있다. 다만 이 계획을 따르더라도 여전히 보유세 실제 세율은 OECD 평균(0.33퍼센트)에 못 미치는 0.28퍼센트이다. 더욱 과감하게 부자 증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중당은 불로소득 환수법을 만들어 30억 원을 초과하는 상속·증여를 금지하겠다고 했다. 양도소득상한제를 통해 주택 구매 이후 3억 원이 넘는 양도차익에는 90퍼센트 세율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불평등을 심화시켜 온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맞서 진보정당들이 더 많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윤 논리에 맞서는 계급 투쟁이 전진할 때 노동자·서민을 위한 개혁 정책들이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