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직위원회,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도움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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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정부는 ‘공무직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공표했다. 4월 중에 공무직위원회가 가동될 예정이다.
공무직위원회는 중앙행정기관, 광역지방자체단체, 시도교육청에 속한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체계적인 인사 및 노무 관리 등”을 위해 만든 노동부 산하 기구이다. 인력 운용의 방향, 임금과 처우, 인사와 노무 관리 등 핵심적인 노동조건 문제를 다루게 된다.
노동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유관 행정부처 차관 등 15인으로 구성돼 2023년 3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위원회 산하에는 ‘공무직발전협의회’를 두어서 노동계와 사용자, 전문가 등의 참여 문을 열어 뒀다. 그런데 공무직발전협의회는 결정 권한이 없는 사실상 자문기구에 불과하다.
공무직위원회가 다루는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가 무려 38만 2000여 명에 이르므로, 그 논의는 노동자들의 조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이 대거 늘었다. 기간제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적잖은 수가 새로 늘었다.(무기계약직 31만 3000명, 기간제 16만 9000명)
물론 실제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이보다 훨씬 많다. 자회사, 파견용역, 민간위탁 등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전체 규모는 10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무엇보다 공무직위원회가 노동자들의 조건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내용이 중요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정부의 태도를 보면 노동자들이 바라는 차별 해소나 처우 개선 방향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2020년 업무보고 내용 가운데 공무직위원회에서 “직무 능력 중심 임금 체계 확산” 방안 추진을 포함했다. 정부가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에 도입한 직무급제인 ‘표준임금체계’를 모델로 삼아 추진하려는 듯하다.
그런데 널리 알려진 대로, 표준임금체계는 저임금과 차별을 고착화하는 직무급제이다. 이는 그간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요구해 온 근속과 호봉 인정, 승진 체계 마련, 수당 차별 해소 등 조건 개선과는 정반대여서 적잖은 비판을 샀다.
정부는 공무직이라는 직제를 부여해 처우와 인사 관리 규정을 만들되, 정규직에 한참 못 미치는 처우를 제공하면서 ‘차별이 아닌 합당한 대우’라고 정당화하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출발부터 위험한
지난해 하반기 공무직위원회에 대한 얘기가 흘러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노동운동 내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하순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학교비정규직 농성장을 방문했을 때, 노동자들은 정규직 대비 80퍼센트 임금 보장을 요구했다. 유은혜는 이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해 일부의 기대를 샀다.
민주노총은 공무직위원회 구성이 지난해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공동 파업의 성과라고 평가한 바도 있다.
그러나 막상 공무직위원회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런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정부는 민주노총이 제기한 핵심적인 수정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권리 보장을 명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단칼에 이를 묵살해 버렸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 제외된 민간위탁을 포함해 자회사,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우와 조건을 함께 논의하자는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원회 산하 공무직발전협의회에는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등 여러 노동조합이 참여할 예정이지만, 실질적인 노정협의 기구로 위상을 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부를 당했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사용자인데도 정작 노조들과 임금과 처우, 노동조건에 대한 제대로 된 교섭을 할 의사는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적잖은 노동자들 사이에 공무직위원회에 대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도 생기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도 ‘공무직위원회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권리 보장 기구가 돼야 한다’고 재차 촉구하는 입장을 내놨다.
물론, 주요 노조 지도자들이 기대를 접은 것은 아닌 듯하다. 민주노총은 “[공무직위원회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와 차별철폐, 처우개선 등이 실질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등 여러 노조 지도자들은 공무직위원회에 적극 개입할 계획이다.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투쟁을 병행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정부가 공무직위원회를 통해 추진하고자 하는 방향은 위험성이 커 보인다. 정부가 무기계약직 전반에 직무급제 임금체계 도입 추진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공무직위원회에서 실질적인 처우 개선 방안들이 결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정부는 노조들과 진지한 협의를 하기보다는 협의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노조들이 판을 깨고 투쟁에 나서기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공무직위원회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고 투쟁 태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과 차별 해소 및 처우 개선을 성취하려면 무엇보다 투쟁 조직에 힘을 쏟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자칫 공무직위원회 참가에 힘을 쏟다 투쟁의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